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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come to California

미국인들이 속으로 짜증낸다는 말버릇 하나

by 이방인 씨 2013. 11. 14.

보편적으로 미국인들이 (캘리포니안들이) 참 상냥합니다.
지난 글에 썼듯이 속으로는 어떨지 몰라도 겉으로는 제가 만나 본 어느 나라의 사람들보다 친절하고 매너좋고 잘 웃습니다.
그런데 그 매너가 아무데서나 다 통하는 건 아닌 모양이예요.
대학 시절 경제학과 교수님이 미국의 의류 브랜드 GAP이 영국에 진출했다가 실패를 맛 본 이유가 미국식으로 훈련받은 점원들 때문이라고 하신 적이 있답니다.
미국의 점원들처럼 고객들에게 온갖 호들갑을 떨며 방긋방긋 웃으며 인사를 하고, 오늘 기분을 묻고, 도와줄 건 없느냐고 계속 묻게 교육을 시켜놨더니 매장을 찾은 영국인들이 아주 질색을 했다더군요.
영국인들은 그것을 이렇게 불렀대요.

"American fake friendliness." 미국식 가짜 친절함

한마디로 영국인들은 미국인들이 '가식 떤다'고 느꼈던 거죠.
냉소적이라는(?) 영국인들은 가식이라고 느꼈을지 몰라도 여기서 살아 보니 그건 가식이라기보다는 그저 미국인들의 성향이었을 뿐입니다.
미국인들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겉으로 티를 내는 것이야말로 매너없고 미성숙한 행동이라고 생각하더라구요.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quote중에 이런 말이 있어요.

If you don't have anything nice to say, don't say anything at all.
상냥한 말을 못할바에야  아예 아무 말도 하지 마라.


그래서 차라리 입 꾹 닫고 벙어리로 사는 미국인이 그렇게 많다나 뭐라나~

제가 자주 언급했던 미국인들의 근거없는 자신감도 어쩌면 이런 문화에서 기인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못하는 사람에게도 무조건 잘한다 잘한다, 안 예쁜 사람에게도 무조건 예쁘다 예쁘다, 상냥하게 말하는 통에 진실을 보는 시력은 나빠져만 갑니다.
사람 상대하면서 상처받는 일이 적어서 좋지만 외국에서 '미국인들은 한심하다'는 오명을 듣는 원인이 되는 건지도요. 

상대를 불쾌하게 하는 언사에 민감한 미국인들의 말버릇이 하나 있는데 바로 이겁니다.

"No offense but,"  기분 나쁘라고 하는 소리는 아닌데,

아마 미드나 미국 영화를 자주 보시는 분이라면 반드시 들어본 적이 있을 겁니다.
offense는 '공격'이라는 뜻의 단어죠?
No offense라고 하면 '당신을 기분 나쁘게 하려는 의도가 아닙니다.'라는 말로 상대가 듣기 언짢을 수도 있을 말을 하고 싶을 때 미리 밝혀두는 거죠.
예를 들면 이런 식으로요.

No offense but you don't look good in white. 기분 나쁘라고 하는 소리는 아닌데 넌 하얀색은 잘 안 어울려.

친절한 말을 못할 바에야 아예 입을 다무는 게 좋다지만 사람 좋은데도 한계가 있지 어떻게 1년 365일 상냥한 말만 하고 살 수 있겠어요.
누구에게나 느낀대로 내뱉어야 직성이 풀리는 순간들이 있기 마련이죠.
그럴 때 조금 미안해서 혹은 싸우기 싫어서 앞에 붙이는 말이 바로 No offense인 셈입니다.
그래서 정말 듣는 사람이 기분 안 나빠하냐구요?
이거 한 번 보세요.

 

누군가 "기분 나쁘라고 하는 말은 아닌데..." 하고 말을 시작하면,

벌.써. 거.기.서. 기.분. 나.빠.
흥

 

No Offense의 의미

약 5% - 무례를 범할 의도는 아닙니다.
나머지 95% - 지금부터 당신을 모욕할 텐데 화내진 마세요~

 

누군가 "기분 나쁘라고 하는 소리는 아닌데"라고 말할 때,

기분 나쁠 확률 100%

 

No offense에 대해 이렇게 다양한 우스개 자료가 있는 걸 보면 이 말을 들을 때 미국인들이 속으로 얼마나 짜증을 내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짜증나서 어떻게 하냐구요?
이렇게 대답하죠.

No offense taken. 기분 나쁘지 않아.

샤방

거짓말이죠.
이미 기분 다 상했는 걸요.

 

하지만 보편적 미국인들의 매너로는 이런 상황에서 정색하고 기분 상했다고 맞받아치지 않습니다.
상대가 "기분 나쁘라고 하는 말 아니니까 오해말고 들어."하고 미리 말했는데 거기서 화를 내버리면 모양새 이~상하거든요.
심각하게 불쾌한 상황이 아니라면 대부분은 "No offense taken." 하고 넘어갑니다.
상대방이 No offense라는 치사하고 속보이는 단서를 달고 기분 나쁜 소리를 했음에도 그냥 넘어가는 미국인들을 보면 '주입식으로 교육받은 가짜 친절함'이라 할지라도 이 정도면 인정해 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답니다.

 

 

이런 미국에서 독설로 유명한 두 영국인이 인기를 얻은 적이 있습니다.
American Idol의 사이먼 코웰과 Hell's kitchen의 고든 램지는 둘이 서로 배틀하면 한 명은 고혈압으로 쓰러지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독설계의 양대산맥인데 미국에서 큰 성공을 거뒀죠.
물론 쇼 자체가 워낙 재밌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제 생각에 그들을 통해 속이 뻥 뚤리는 대리만족을 느낀 미국인들도 꽤 있었을 것 같아요.
그들은 영국인이었으니 스타가 됐지만 아마 미국인 진행자가 그런 수준까지 독설을 했다면 미국인들은 좋아하기보다는 비난을 했을지도 몰라요.

미국생활 초기에는 미국인들의 호들갑스러운 상냥함과 영혼없는 칭찬이 우습기도 하고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이제는 '현실직시 따위가 다 무에냐~ 상처받는 일 없이 마음 편히 착각 속에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이방인 씨가 되어버렸습니다.
대신 미국 밖으로는 못 나가겠지요......... 영.원.히.


그래서 여러분과 저는 만날 수가 없는 거예요. 흑흑흑~

 

만날 수 없는 그대여~ 부디 행복한 하루!


이 글은 모든 미국인을 일반화할 수 없음을 알려 드립니다. 미국인들의 성향은 지역별로도 차이가 심하고 개개인이 모두 다를 테니까요. 제가 살고 있는 캘리포니아는 미국 내에서도 워낙 느긋하고 포용력 강한 사람들로 유명합니다. 지난 번 미국 주(state)별 사람들의 성향 테스트를 보시면 참고가 되실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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