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한국인들이 민족 최고의 자랑거리로 한글을 꼽는데 주저함이 없을 것입니다. 특히나 외국어를 공부해 본 사람이라면 한글의 우수성을 가르쳐주지 않아도 저절로 느끼게 되죠.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외국어 대한 동경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겁니다. 특히 서구문화권의 언어에 말이죠. 언제부터인지 한국 대중가요에는 영어가사가 빠지지 않고, (미국 음악계의 영향을 받지 않는 장르의 노래에도!) 같은 뜻의 말이라도 프랑스어나 이탈리아어로 하면 왠.지. 더 고급스럽게 들린다고도 하구요. 이러한 세태를 두고 '문화사대주의'라거나 유치한 허영심이라 비판하는 목소리도 심심찮게 들리죠? 물론 그러한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도 분명 있겠으나, 저의 사견으로는, 이국적으로 들리는 언어 자체에 대한 환상도 있을 것 같습니다. 어디서든 English please~ 를 외쳐 외국인들로부터 '거만하다'는 쓴소리를 자주 듣는 미국인들조차 외국어에 대한 판타지가 있으니까요.
첫번째 - 맛있을 것 같은 이름을 지어 보자! 하겐다즈
고급 아이스크림의 대명사 하겐다즈, 제가 한국에 있을 때 이 브랜드의 이름만 듣고 독일이나 북유럽에서 온 아이스크림이라고 생각했었어요.
유러피안 언어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저 땡땡들을 한 번 보십시오!
그러~나!
알고 보니 하겐다즈는 100% 순수 미국 브랜드였습니다! 1961년 미국 뉴욕의 Bronx에서 바닐라, 초콜렛, 커피 단 세 가지 맛의 아이스크림을 파는 업체로 첫 선을 보였죠.
아니 그런데 왜 이름이 하겐다즈야?
하.겐.다.즈.를 듣고 누가 뉴욕의 브롱스를 떠올리겠냐구?!
그렇죠. 바로 그겁니다. 창업주인 Reuben Mattus (유대계)는 사람들이 하겐다즈라는 이름을 듣고 덴마크를 연상하길 원했다고 합니다. 당시 덴마크의 유제품이 맛있다는 인식이 있었고 미국에서 덴마크의 이미지가 좋았기 때문이라네요. 나중에 창업주의 딸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밝히길, Mattus가 부엌 의자에 앉아서 몇 시간 동안 계~속 뜻도 없는 엉터리 단어들을 발음하면서 세상에 둘도 없는 독특한 이름을 만들어내려고 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결국 하겐다즈라는, 아무 의미 없지만 어쨌든 북유럽을 떠올리게 하는 단어가 탄생했습니다.
두번째 - 멋있는 이름을 붙여 보자! 위너슈니첼
독일 음식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슈니첼이라는 이름을 들어보신 적이 있을 텐데요. 저도 아직 직접 먹어본 적은 없지만 슈니첼이란, 독일식 커틀릿 요리라고 합니다.
(commons.wikipedia.org)
도...돈까스다. 헤에~
독일에서는 독일 요리 취급을 받는다고 하지만 본래는 오스트리아 음식이라고 하네요. 그래서 가장 기본형 슈니첼은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이름을 따서 Wiener Schnitzel (비너 슈니첼)이라 부른다는군요. Wiener Schnitzel을 미국식으로 발음하면 위너슈니철이 되는데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유명한 핫도그 체인점의 이름이랍니다.
빨간 W 마크로 유명한 핫도그 프랜차이즈점입니다.
누가 들어도 독일어가 분명한 이 체인의 이름을 보고 순.진.한. 방인 씨는 () 당연히 독일에서 온 음식점이리라 생각했죠. 그런데 알고 보니 이 역시 1961년 캘리포니아 Wilmington에서 설립된 100% 순수 미국 업체였습니다. 독일 사람이 세운 회사도 아닌데다가 음식 또한 커틀릿이 아닌 핫도그인데 어째서 Wienerschnitzel이라는 이름이 붙은 걸까요? 사연을 알고 나면 빵 터집니다.
이 체인의 설립자는 John Galardi라는 남성이었는데 창업을 앞두고 지인들과 저녁식사를 하던 중, 지인의 아내가 요리책을 들여다 보고 있다가 지나가는 말로 한마디 던집니다.
"Wienerschnitzel 이라고 부르는 게 어때요?"
그 말이 무슨 뜻인지도 몰랐지만 엄.청.난. 발음에 놀란 John Galardi는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부인에게 이렇게 말했죠.
"도대체 누가 그런 이름으로 회사를 부르고 싶어하겠어?!"
하지만 며칠 뒤 그는 생각을 바꾸어 Wienerschnitzel이라는 이름을 쓰기로 결심하는데, 비지니스 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직접 밝힌 그 이유는 바로...?!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도 몰랐기 때문에 원래대로라면 Wiener Schnitzel (비엔나의 슈니첼)이라 써야 하지만 Wienerschnitzel이라는 한 단어가 되고 말았답니다. 냉정히 말하자면 핫도그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이름일 뿐만 아니라 쓰는 방법까지 틀린 거죠.
세번째 - 세련된 이름이 좋아!
세번째 일화는 제가 직접 겪은 일이랍니다. 한 5-6년 전인가, 취미로 공예품을 만드는 미국인 친구와 새로 만든 작품에 관해 이이기를 하고 있었죠. 친구가 만든 건 풍경(風磬)처럼 바람이 불면 흔들리는 나무 작품이었는데 무어라 이름 붙일지 고민하는 중이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바람'이라는 뜻의 이름을 짓고 싶은데 Wind는 너무 평범하고 촌스럽게 느껴진다는 거예요. 그러더니 갑자기 제게 '바람'이 한국어로 뭐냐고 물었죠.
"Wind는 한국어로 "Baram"이야."
하자 친구는 버람~ 바램~ 바람~ 몇 번 발음해 보더니 딱히 느낌이 오지는 않았는지 그럼 혹시 중국어로 바람이 뭔지 아느냐 다시 묻습니다. 모릅니다. 저는 중국어로 바람이 뭔지 몰라요. 하지만 그 친구는 중국어의 "ㅈ"도 모르는 미국인! 저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뻔.뻔.하.게. 말했습니다.
응! 중국어로 바람은 POONG이야. (바람 풍)
"풍"은 소리만 들어도 내키지 않았는지 마지막으로 친구는 일본어로 바람이 뭐냐고 물었습니다. 대학 다닐 때 교양과목으로 일본어를 수강했기 때문에 이 답은 알고 있었네요.
"일본어로는 카제 (Kaze)야."
Kaze라는 쉬운 발음이 입에 착 붙었는지 친구는 꽤 마음에 들어하더니 그걸로 정했다고 합니다. '바람'이 선택받지 못했다는 사실에 슬며시 실망감이 들기도 했지만 Wind 보다 훨씬 세련되게 들린다며 만족스러워하는 친구를 보며 웃었습니다. 이국적 분위기를 자아내는 언어에 혹하는 건 미국인들도 마찬가지구나 싶더라구요.
글을 써내려오다 보니 저의 어린 시절 추억도 하나 떠오르네요. 초등학교 5학년 때였나, 어디서 어떻게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카사블랑카"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카사블랑카는 모로코의 항만 도시로, 험프리 보가트와 잉그리드 버그만이 주연한 동명의 영화 덕분에 더 유명한 곳이죠. 당시의 저는 그게 도시 이름인 줄도 몰랐고, 그 영화를 본 적도 없었지만 그 말이 어찌나 신비롭게 들리던지요! 몇 날 며칠을 카사블랑카~ 카사블랑카~ 노래를 불렀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도 카사블랑카는 제가 좋아하는 단어 목록에 올라있지요.
여러분도 저처럼 특별히 좋아하는 외국어 단어가 있나요?
신나는 하루 유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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