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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come to California

미국인과 세계지리를 논할 때 곤란한 이유

by 이방인 씨 2014. 5. 29.

틀 전에 올린 영어 발음 실수에 관한 글 밑에 참으로 재미진 댓글들이 줄줄이 달렸습니다. 이제 보니 여러분들도 다 가슴 속에 '낭패의 그날'을 품고 살아오셨군요. 심심한 동병상련의 마음을 전합니다.

빵 터지는 많은 댓글들 중 '사우디 아라비아'의 미국식 발음을 처음 듣고 당황하셨다는 사연도 있었답니다. Saudi Arabia를 미국식 버터발음으로 말하면 sowdy a ray bee a  즉, '싸 (혹은 써, 쏘)우디 어뤠이비아'쯤 되는데 (앞의 Saudi는 미국인들도 다 자기들 편한 대로 발음합니다.) 한국식으로 사.우.디. 아.라.비.아.에 익숙해진 귀로 들으니 도통 알 수가 없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 댓글을 읽고 나니 저의 에피소드가 또 하나! 생각났어요.


영어실수담 봉인해제!


오늘 들려드릴 사연은 한 번 대화에 두 번 연속으로 굴욕을 맛봤던 일타이피! 더블콤보!! 랍니다. ☜ 이 사건!을 지금껏 잊고 있었던 게 신기하네요. 아마 제 의지로 기억에서 삭제해버린 게 분명합니다.

어느 날이었어요~ 대학 신입생이었던 방인 씨는 친구와 세계지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지요. 대화를 이어가다 아시아 지역도 화제에 올랐습니다. 아마 제가 아시아 출신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레 그런 흐름이 된 거겠죠. 평소 미국인들에게 세계지리 상식이 부족하다는 걸 알고 있던 저는 갑자기 궁금해져서 넌지시 물었습니다.

 
"아시아에 어떤 나라들이 있는지 조금 알아?"

 

 

미쿡인 특유의 천진난만함으로 무장한 친구는 곧바로 자신이 알고 있는 아시아 국가들을 읊기 시작했습니다. 한중일 3국과 필리핀, 타일랜드까지 말하고 나니 얼굴에서 해맑음이 서서히 사라집니다. 그리고는 마치 턱걸이 할 때 기운 다 빠졌는데 배치기로 억지로 하나 더 하는 것처럼 간신히 India까지 해내더군요. (갑자기 말하라고 하면 생각이 안 날 때가 있죠.)


"방금 네가 말한 인디아와 차이나 사이에 티벳 아래로 작은 나라가 하나 더 있어. 잘 생각해 봐~"


그러나... 인디아와 차이나가 어디에 어떤 모양으로 자리하고 있는지 모르는 친구가 전혀 감을 못 잡길래 결국 제가 알려주었습니다.


"인디아 위쪽으로, 티벳 아래쪽으로 네팔이라는 나라가 있어."

"뭐라고?"

"네팔이 있다고."

"뭐라고?"

"하아~ 네팔이라는 나라가 있다고!"

"그게 뭐야? 어떻게 쓰는데?"

"자, N E P A L"

"~~~~!  [nəpɔ́:l] 말하는 거구나?"


그렇습니다. 네팔의 미국식 발음은... 늬펄~ 이었던 것입니다!


아. 이.런. 늬.펄.

 

순식간에 제 얼굴에서 유전이 터졌습니다. 너무 당황해서 식은 땀이 턱까지 흐르려는 찰나! 방인 씨는 이 민망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얕은 수를 생각해냈습니다.

 

실패했다! 그렇다면 타개책은???

아무렇지 않은 척 화제를 돌리면 된다!

 

곧바로 실행에 옮긴 방인 씨!

"그... 그래... 거... 거기! 내가 말한 나라가 거기야! 거기 히말라야로 유명하잖아~"

"뭐가 유명하다고?"

"히말라야."

"뭐라고?"

"히말라야 말이야. 세계의 지붕! 에베레스트, K2 이런 거 있잖니~이~!"

"오오~~~~ the [hìməléiəz] 말이야?"


그렇습니다. 히말라야의 영어식 표현은 "히말라야 산맥"이라는 뜻의
the Himalayas 더 히멀레이어즈 였던 것입니다!


어~후~ 이쯤되니 방인 씨 얼굴의 유전은 써우디 어뤠이비아의 석유부자들이 탐낼 정도가 되었습니다. 빨리 이 자리를 벗어나야겠다는 생각 뿐이지요.

"그...그래! 거...거기 높은 산들...   되~게 추운 곳이지!"


뭐, 이렇게 대충 이야기를 마치고 속으로 생각했죠.


네팔을 네팔이라 부르지 못하고, 히말라야를 히말라야라고 부르지 못하다니...
말이나 말 걸 그랬지!


이리하여 웅변은 은이요, 침묵은 금이라는 진리를 몸소 깨우친 방인 씨는 다시는 미쿡인 앞에서 세계지리 아는 척을 하지 않았다는 후문입니다. 서로가 알고 있는 발음이 달라 소통이 되지 않을 때 양쪽 다 난감하더라구요. 그럴 때는 과감히 혀를 버리고 펜을 들어 필담을 나누면 됩니다. 
운치 있고 좋잖아요~

여러분 신나는 하루 유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