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불현듯 또 하나 생각났지 뭡니까...
이민 초기 영어 굴욕담이 말이죠.
그나마 이젠 떠오르는 에피소드가 몇 개 없어서 그렇지 깊은 기억 속으로 들어가 보면 아마 화수분처럼 끊임없이 솟아나지 않을까 합니다.
자, 당신은 서서히 최면에 빠집니다.
하나 둘 셋! 하면 그 날로 돌아가는 겁니다~
하나~ 두울~
으으으~ Me No Speak English~
하나, 둘까지 셌는데 벌써 빠지다니?!
노...놀라운 정신력이군!
이민 와서 학교를 다니게 된 지 얼마되지 않은 어느 화창한 오후였어요. 미국인 친구와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잡스러운 수다를 떨고 있었죠. 무슨 이야기를 하다 그랬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대화 중에 저는 갑자기 이 채소에 대해 말하고 싶어졌어요!
네, 아스파라거스 말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왜 하필 아스파라거스를 입에 담았는지 십 수년 전의 제 자신의 콧구멍에 아스파라거스를 꽂는 형벌을 내리고 싶네요. 하지만 어쨌든 그 당시 저의 방정맞은 입은 이 저주 받은 단어를 내뱉고야 말았습니다.
" ~ ~ ~ 그런데 아스파라거스 말이지, ~ ~ ~"
듣고 있던 친구가 갑자기 되묻습니다.
"뭐라고?"
"아스파라거스 말이야."
"뭐라고?"
"아스파라거스!"
"그게... 뭔데?"
아... 왔다, 왔다. 그 순간이 왔다. 나 또 액센트 틀렸구나...!
영어는 모음과 액센트에 민감한 언어라 그런지 미국인들은 우리 생각에는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을 것 같은 발음을 전~혀 알아듣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오래전에 제가 슷퍼게리 (스파게티) 때문에 진땀 뺀 사연도 소개해 드린 적이 있죠? 저는 그때와 마찬가지로 아스파라거스도 이.미. 꼬부랑 말인데 그걸 또 미국식으로 잔뜩 혀를 꼬아 말해야 한다는 걸 몰랐던 겁니다. 도통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는 친구를 보고 저는 결국 단어 말하기를 포기하고 아스파라거스의 생김새를 묘사하기 시작합니다.
"왜 그거 있잖아. 초록색 vegetable인데...
몸은 길~쭉하니 날씬하고, 얼쑤~
줄기는 마치 대나무의 형상이요, 허이~
끄트머리는 붓처럼 오무라들었고, 지화자~
영어를 못하면 음유시인이 됩니다.
여기까지 설명하자 친구는 드디어 알아챘습니다.
"오오~~ [ə|spӕrəgəs] 말이구나?!"
그래 이 융통성 없는 청각세포의 소유자 미쿡인아,
시방 그걸 한나절 읊고 있었다...
그리하여 눈물로 배우게 된 아스파라거스의 미국식 발음은...
어스페러거스
였습니다. 그 이후로 어스페러거스는 입에도 대지 않는 이방인 씨, 미국에 온 뒤로 편식은 나날이 심해져갔답니다.
여러분은 맛있는 음식 골고루 먹는 신나는 하루 유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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