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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come to California

교포 1.5세가 본 재미교포들의 한국어 습관

by 이방인 씨 2013. 10. 7.

저는 간혹 방문객들께 이런 의외의(?) 칭찬을 듣곤 합니다.

이방인 씨는 미국에서 십 년 넘게 사신 것 치고는 한국말을 잘하시네요.

저는 미국에서 태어난 2세가 아닌 이민 1.5세라 어디까지나 한국어가 모국어이기 때문에 잊을 리가 없죠. 
하지만 세월이 많이 지난 후 저의 한국어를 잘 살펴보니 잊지는 않았지만 확실히 무뎌져 있긴 하더라구요.
한국어법에는 없는 요상한(?) 말들이 튀어나오는 걸 보면 말이죠.

오늘은 제가 그동안 미국에서 살면서 많이 접한 재미교포 1세, 1.5세, 그리고 2세의 한국어 습관을 정리해 볼까 합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경험에 의존하여 가볍게 쓰는 글이니 절대적 기준이 될 수 없고 일반화할 수도 없다는 사실을 미리 밝히면서 시작합니다.

 

교포 1세

1세들은 이미 성인이 된 후에야 이민 온 사람들을 말하죠.
한국에서부터 영어를 능숙하게 말하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미국에서 아무리 오래 살아도 평생 한국 액센트를 가지게 될 확률이 높습니다.
60대 초반에 이민 오신 제 조부모님, 30대에 오신 삼촌과 이모, 그리고 40대 후반에 오신 저희 부모님이 모두 이민 1세대시죠.
이런 분들은 물론 영어보다 한국어가 훨~씬 편한 분들입니다.
다만, 한국어를 하면서도 문장 중간 중간에 영어 단어가 들어간다는 특징이 있긴 하죠.
그런데 제 생각에 이 점은 요즘 한국인들도 똑같은 것 같아요.
TV를 보면 한국에 계신 분들이 한국말을 할 때도 한 문장에 영어 단어가 한 두번은 들어가는 것 같더라구요.
"케어한다" "픽업한다" "테이크 아웃한다" 등등 이런 언어습관은 교포 1세 분들이나 한국에 계신 분들이나 비슷한 것 같습니다.
말할 때 영어단어를 섞어 쓴다는 점을 제외하면 1세 분들의 한국어는 흠 잡을 데 없이 자연스럽습니다.


교포 1.5세

저처럼 한국에서 태어났으나 성인이 되기 전에 이민 온 사람들을 1.5세라고 하죠.
저랑 흥할 인간이 집에서 한국어를 쓰는 걸 들으면 1.5세들의 습관을 알 수 있습니다.
우선 발음은 완벽합니다.
발음은 완벽한데... 다음의 두 가지가 조금 어설픕니다.

1. 동사는 카오스야~!

영어의 동사를 한국어에 대입시킬 때가 있습니다.
오늘이 일요일이라 집에서 치킨을 먹었는데 제가 흥할 인간에게 음료수를 먹겠냐고 이렇게 물었습니다.

"콜원해?"

보통 이럴 때는 한국어로 "콜라 마실래?"가 자연스럽잖아요.
그런데 영어로는 You want some? 하고 묻기 때문에 그걸 그대로 한국어로 하는 바람에 콜라 원해? 같은 어색한 문장이 되버린 거죠.

또 자주 혼용하는 동사는 get, got입니다.
얼마전에 어머니께 제 지인에 관해서 말을 하다가 이런 문장이 나왔습니다.

" ~~ 그래서 그 사람은 꽤 멋진 아버지를 가졌는데 ~~"

이것도 되게 웃기죠?
"그 사람의 아버지는 꽤 멋진 분이야." 아니면 "그 사람에겐 꽤 멋진 아버지가 계신데." 라고 말했어야 하는데 got을 그대로 옮겨서 "가졌는데"라고 말해버린 거예요.

이렇게 미국인들이 거의 대부분의 문장에 사용하는 일반동사인 get, want, have 등등의 동사를 한국어로 그대로 직역해서 써버리는 실수를 할 때가 종종 있답니다.


2. 미국에서 배운 말

이 부분이 가장 취약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에 와서야 배운 말은 한국어로 하기 힘들거든요.
1.5세들은 대학도, 직장도 미국에서 처음 들어가게 되니까 한국에서 미처 배울 기회가 없었던 것들이 꽤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전공이나 직종에 관련된 말들은 영어로 처음 접하게 되니까 그것만 알게 되는 거예요.
중학교 때 이민 온 1.5세 요리사하고 대화해 본 적이 있는데 그 사람은 나무랄데없이 훌륭한 한국어를 구사했는데 유독 소고기 부위는 한국어를 전혀 모르고 영어만 쓰더라구요.
제가 어쩔 수 없이 속으로 빵 터졌다는 건 비밀입니다.

 

교포 2세

2세들이야 뭐 여러분들도 잘 알고 계실 것 같은데요.
한국 TV나 영화에서 묘사하는 어눌한 한국말을 하는 교포들은 분명 2세겠죠.
1.5세와 가장 다른 점은 역시 한국어의 발음이 부정확하다는 것입니다.

제가 미국에 온 첫 해, 고등학교에서 깨알 같은 웃음을 터트린 일이 있었습니다.
학교에는 저보다 어린 한국 학생이 몇 명 있었는데 그 중 미국에서 태어난 2세 여자 아이가 있었죠.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아이라서 저를 언니라고 부르며 한국어로 대화를 했었는데 하루는 복도에서 마주치자 제게 이렇게 묻더군요.

"언니, 어리 가?"

통역하면 이 말은 "언니, 어디 가?" 입니다.
D 발음을 약하게 해서 때로는 "ㄹ" 처럼 소리나는 미국 영어에 익숙한 아이였기 때문에 "어디" 하는 강한 발음 대신 "어리" 하고 나왔던 거예요.

또 다른 2세 아이는 (사실 이건 그 아이만의 문제였을지도 모르겠지만) "재떨이"의 발음을 그~렇게 어려워하더라구요.
재뜨리, 재떨리, 뭐 다 나오는데 재.떨.이.만 죽어도 안 나오더라구요.

발음 뿐만 아니라 동사를 혼용하는 건 1.5세보다 훨~씬 심해서 웃음 터지는 순간도 많죠.
여기서 태어난 제 사촌동생이 중학생 때였나, 몸이 아프다는 얘기를 들어서 괜찮냐고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이

"누나, 나 감기 가졌어."

감기 걸렸다는 뜻의 "I have a cold."를 그야말로 직역한 거죠.
"아버지를 가졌다"고 말한 저는 양반 아닙니까?
하지만 어쨌든 둘 다 소유욕이 대단하네요.
무소유를 깨치는 길은 멀게만 보입니다.


깊이 들어가자면 수십가지 특징은 더 쓸 수 있겠지만 오늘은 여기서 마칩니다.
여러분, 씩씩하게 월요일 시작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