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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come to California

미국 우체국, 지금 날 우롱하는 거야?! -.-^

by 이방인 씨 2013. 10. 12.

한 열흘 전 쯤 저희집 현관문 틈에 꽂혀있는 살구색 쪽지 한 장을 발견했어요.

우체국에서 배달을 왔었는데 수취인이 없어서 그냥 갔다는 안내 쪽지였죠.

 

한국에서 온 소포였는데 가만히 들여다보니, 아하~ 얼마전에 제게 작은 소포를 하나 보내셨다는 독자 분이 계셨습니다.
그런 소중한 소포가 왔는데 하필이면 집에 아무도 없었을 게 뭐람...

우체국에 찾으러 가야겠거니 하고 안내 쪽지를 다시 보니 재배달해 주겠다는 문구가 보입니다!

여기 분명히 Redeliver하겠다고 명시되어 있잖아요?

 

우체국 사이트에 들어가서 온라인으로 재배달 신청을 하면 원하는 날짜와 시간에 맞춰 다시 배달해 주는 Redelivery 서비스가 있더라구요.

 

배달 받을 주소와 수취인 이름, 재배달을 원하는 날짜와 함께
살구색 쪽지에 적힌 아이템 넘버를 입력하면 신청이 완료됩니다.

 

시키는대로 다 쓰고 마지막 클릭을 했더니 신청접수가 되는 대신 빨간 에러 메세지가 떴습니다.

Redelivery item already returned to sender
아이템은 이미 반송되었습니다.

 !!!!!!!!!!!!!!!!!!!!!!!!!!!!!!!!!!!!!!!!!!!!!!!!!!!!!!!!!!!!!!!! 

아니 이게 무슨 공포스러운 일이란 말입니까.
내 소중한 독자 분께서 보내주신 소포가 제 멋대로 반송되었다니!

집배원 님을 딱 한 번 놓친 것 뿐인데 반송을 해??
게다가 사전에 아무 말도 없이??
그것도 한국에서 온 국제우편을?!!
이것들이 미치지 않고서야...

 

너무 황당해서 남겨놓고 간 안내쪽지를 다시 살펴보았지만 역시나 반송하겠다는 Final Notice(최후통첩)가 아니었습니다.
화가 나서 당장 우체국에 전화를 했죠.

"Final Notice도 안 주고 반송을 하다니 이게 말이 되는 일입니까?!"

하고 따지니까 우체국 직원이 이런 대답을,

"반송되지 않았습니다. 우체국에 있으니까 찾으러 오세요."

"근데 왜 온라인 재배달 신청은 접수가 안되고 자꾸만 반송되었다고 나오는 거예요?"

"글쎄요. 암튼 우체국으로 찾으러 오세요."

"우체국에 있으면 재배달 해 주신다고 여기 쪽지에 써 있는데 재배달 신청하고 싶은데요."

"찾으러 오셔야 돼요." 뚝-

분명히 Redelivery 서비스라는 것이 있고 재배달을 신청하면 해 주는 것이 법이거늘, 왜 우체국으로 찾으러 가야만 하는지 묻기도 전에 직원은 전화를 끊어버렸습니다.


네~ 뭐, 우체국에 소포 찾으러 가는 일, 크게 어렵지 않지요.
그 우체국이 우리 동네에 있기만 하다면요.

우리 동네에도 우체국이 두 개나 있는데 어째서 이 소포가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옆 동네 우체국에 있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만 어쨌든 저는 소중한 소포를 찾기 위하여 작은 모험을 떠났습니다.
그까짓 게 무슨 모험씩이나 되냐고 하실 지 몰라도 저는 세상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서 폭풍눈물을 흘릴 방향치이자 길치거든요.
워낙 길을 잃고 미아가 된 적이 많기 때문에 초행길이라면 긴장해서 평소에 안 하던 운전실수까지 간혹 저지르기 때문에 주저했답니다.

어쨌든 찾으러 가기로 마음을 먹고 미리 길을 좀 살펴보니 저희집에서 차로 24분 거리라고 나오더라구요.
차분히 운전한 끝에 길을 잘 찾아서 미국 국기가 걸린 관공서 건물을 보고 당연히 우체국일 것이라 생각해서 들어갔습니다.
일단 들어가고 봤는데 어쩐지 직원들 옷차림이 우체국이 아닌 것 같아 "저.. 여기 우체국인줄 알았는데..."까지 말했는데 왠 남자 직원이 "No, 이 건물 아니예요. 한 1분만 더 내려가면 우체통들 잔뜩 세워져 있는 건물이 우체국이예요."

 

정녕 나란 녀석은 삽질의 한계치를 모르는구나.
만약 각각의 인간에게 한 평생 배당된 양의 낯팔림이 있다면
나는 아마 다음 생과 그 다음 생의 것까지 미리 당겨 쓰는 모양이지?

 

후다닥 밖에 나와서 다시 차를 몰아 길 아래로 내려가며 살피니 제가 뒷 문으로 들어갔던 건물 정면 한 켠에 이렇게 적혀 있더라구요.

STATE OF CALIFORNIA CONSUMER AFFAIRS (캘리포니아주 소비자원)

거기서 내 소포 내놓으라고 했었다간 Security에 끌려나왔을지도 모르겠어요.
이렇게 무사히(?) 우체국에 도착해서 살구색 쪽지를 들이밀자 파란색 우체국 제복을 입은 여직원이 "잠시만 기다리세요." 하더니 소포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저는 너무 궁금해서 참을 수 없었던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런데요, 분명 재배달 서비스가 있고, 온라인이나 전화로 신청하면 된다고 했는데 왜 저는 찾으러 와야만 했었나요?"

여직원에게 제가 온라인으로도 신청접수에 실패했고 전화로도 거부당했다고 말하자 자신은 잘 모르겠다고 하고 말더라구요.
어차피 전화를 받은 사람이 그 여직원도 아닌데 무슨 죄가 있겠나 싶어 저도 거기까지만 하고 나왔습니다.
하지만 진실을 알고 싶어지긴 하네요.
온라인 접수 실패야 에러였을 수도 있지만 전화를 그냥 그렇게 끊어버린 건...

과연 해당 우체국에서는 재배달 서비스를 할 용의가 있었던 건지 말입니다.

옆 동네 우체국에 다녀와 보니 동네 우체국도 다 운에 따라 걸리는 건가 싶었습니다.
저희 동네 우체국은 지난번 포스트에 썼다시피 직원들이 너무 친절해서 손님들 버릇이 나빠지거든요.

뜻하지 않게 왕복 1시간 쯤 걸려 옆 동네에 다녀오긴 했지만 집에 돌아와서 소포를 뜯어보고 참 행복했답니다.
소포 안의 무엇이 저를 행복하게 했는지는 내일 알려드릴게요.

여러분, 반짝반짝 빛나는 토요일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