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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come to California

코로나 때문에 수면 위로 떠오른 미국의 인종차별을 경험하다

by 이방인 씨 2020. 4. 28.

로나 때문에 안해도 되는 고생을 한 이야기, 바로 지난 글에 전해드렸는데요. 오늘은 더 심각하고 슬픈 글이랍니다. 한국보다 미국에서 더 오래 살았는데 이런 일은 또 처음 겪네요.


지난 주 화요일에 저희집 차고 문에 누군가의 발자국과 함께 길쭉한 흠집이 나 있는 걸 발견했어요. 시커먼 발자국을 보고 누가 차고를 걷어찼나 싶었는데, 그 위에는 금속성 물체로 긁은 듯한 스크래치가 있길래 도무지 어찌된 일인지 모르겠더라구요. 어떻게 무슨 실수를 하면 이런 흠집이 나나 싶었는데 이미 벌어진 일, 누군지 알아낼 길도 없어서 속은 상하지만 그냥 넘어가는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도 영~ 찝찝한 마음이 가시질 않아서 차고 앞에 작은 카메라라도 설치해야할까 싶어 이것저것 알아보는 중이었죠. 


그런데 며칠 뒤 금요일에 친구가 주말을 맞아 저희집을 방문할 일이 있었어요. 그 친구도 아시아인인데, 미국에서 나고 자란 2세입니다. 친구가 저희집에 거의 도착했을 무렵 저희집 차고 앞에서 농구공을 가지고 노는 백인 남자 아이 2명을 발견했대요. 눈으로 보기에는 아마 큰 아이가 중학생, 작은 아이가 초등학생 쯤으로 보이더랍니다. 친구가 저희집 차고 안으로 들어오려고 아이들이 비키기를 기다렸는데, 아이들은 친구를 빤~히 쳐다만 보고 차고 앞에서 비켜주질 않더랍니다. 그래서 기다리던 친구가 차 창문을 내리고 


"얘들아, 나 이 집으로 들어가야되니 잠시 비켜줄래?"


했더니 아이들이 대뜸 이런 말을 하더래요.


"You fxxxing Chinese. Go back to fxxxing China. You brought Corona to us."

XX 중국인아, XX 중국으로 돌아가. 니네가 코로나를 가져왔지!


친구가 너무 놀라고 화가 나서, 차에서 내려 아이들에게 다가가 말했답니다.


"I am not Chinese. And even if I was, you should not say such things."

난 중국인이 아냐. 그리고 만약 그렇다고 해도 그런 말은 하면 안돼.


어른이 차에서 내려 그렇게 말을 하는데도 아이는 전혀 놀라거나 겁먹은 기색이 없이 또 말하더랍니다.


"Can you even see and drive with those eyes?"

너 그 눈으로 보고 운전할 수는 있냐?


눈이 작은 아시안들을 비하하는 말이죠. 화가 머리 끝까지 난 친구는 아이들에게 "부모님 어디 계시냐"며 집이 어딘지 물었습니다. 그제서야 조금 사태가 심각함을 알았는지 아이들은 뛰어서 두 집 건너인 자기네 집으로 도망가더라는군요. 아이들이 가버리고 친구가 제 집 차고로 들어와 차고 문을 닫았는데 그 때 갑자기 집 안에 있던 제게도 들릴만큼 크게 텅~ 텅~하는 소리가 들리더라구요. 깜짝 놀란 제가 밖으로 나가 보니 아이들이 황급히 도망가고 있고, 친구는 어딘가에 전화를 하고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친구가 차고로 들어와 문을 닫은 뒤, 그 아이들이 다시 돌아와 제 집 차고문을 향해 농구공을 던진 겁니다. 그래서 집 안에 있던 제게도 농구공이 부딪히는 텅텅 소리가 들린 것이었죠. 친구는 이미 폭발 직전이라 경찰에 전화를 하고 있었구요. 그리고 약 4분 후 2명의 경찰관이 제 집 문을 두드렸습니다. 저희는 나가서 상황 설명을 했죠. 이야기를 다 듣고 경찰이 이제 어떻게 해주길 원하냐길래, 저희는 중학생과 초등학생을 상대로 법적 시시비비를 가릴 것인지 고민해야했습니다. 잠시 고민하던 저희는 경찰에게 그 집에 찾아가 그 아이들의 부모에게 단단히 주의를 주고 한번 더 이런 일이 발생할 시 경찰에 정식으로 수사요청을 하고 변호사 선임해 인종차별 소송까지 할 거라고 반드시 전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리고는 저희 집 창문에 둘이 딱 붙어서 경찰이 정말로 그 집에 가는지 숨죽여 지켜보고 있었지요. 두 집 건넌 집이라 잘 보이진 않아도 그 집 앞에서 세워진 경찰차랑 소리는 들을 수 있었답니다. 몇 분 쯤 이야기하더니 경찰들은 떠났습니다. 


저랑 친구는 그 부모가 이제라도 저희집에 찾아와 사과를 하겠지 하며 내심 기다렸는데 전~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하기야... 그 정도를 아는 제대로 된 부모였다면 아이를 저렇게 키우지도 않았겠지요. 친구랑 둘이 저녁 내내 이야기를 하며 속상한 마음을 달래다가 이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아이가 태어날 때 인종차별주의자로 태어날리도 없고,
 지 혼자 크면서 인종차별주의자로 자랄리도 없으니, 

십중팔구 부모가 인종차별주의자겠지.
뭘 기대하겠나.


그리고 저는 화요일부터 미뤄두었던 security 카메라를 주문했답니다. 카메라가 설치되어있다는 경고 싸인과 함께 말이죠. 이번주내로 배달된다니 저는 아마 카메라 설치하고 싸인 부착하느라 끙끙거리게 될 것 같습니다.




참, 코로나 때문에 요즘 별 일을 다 겪네요. 간혹 미국 백인들이 "이제 이 나라에 더 이상 인종차별은 없다"고 지멋대로 떠드는데, 코로나 덕에 확실히 알게 되었죠. 인종차별주의자들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조용히 숨어지내며 기회만 엿보고 있다는 걸요.


여러분, 건강한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