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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come to California

코로나탓 요즘 미국인들 농담: "집에 화장지는 있고?"

by 이방인 씨 2020. 3. 18.

즘 캘리포니아에서는 사람과 만나고 헤어질 때마다 우스개로 하는 인사가 있습니다.


그래, 집에 화장지는 있고?


뉴스를 보신 분들도 있겠지만, 저는 이번 난리로 알게 되었습니다. 


미국인들은 유사시에 화장지부터 챙긴다는 사실을요. 



며칠전 직장에서 동료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다 빵 터졌습니다.


이방인: 요즘 쌀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야. 우린 아시안이니까 쌀을 엄청 많이 먹잖아. 어머니가 평소처럼 마트가서 대용량 쌀을 사려고 했는데 진열대가 텅 비었더래. 마트를 세 군데나 돌았는데도 못 사셨다네.


미국인 동료1: 쌀만 없는 게 아니라 화장지도 없다구! 주말에 마트갔는데 하나도 못 구했다니까.


이방인: 나 너무 궁금한 게 있는데, 미국인들은 왜 그렇게 화장지를 사는 거야?


미국인 동료2: 나도 몰라. 그냥 남들이 사니까 나도 사야될 것 같은데.


이방인: 그래.. 아시안들은 쌀을 사들였고, 미국인들은 화장지를 사들였구나. 


제가 심각한 어투로 여기까지 말하자 듣고 있던 미국인 동료 1,2,3이 다 빵 터지더라구요.


미국인 동료 1: 그래, 우린 우선순위가 다르구나.


이방인: 아이, 근데 정말 쌀 없어서 큰일 났네. 아니 우리 도시에 쌀 소비인구 많지 않아서 안심하고 있었는데.


미국인 동료 3: 왜 그들만 쌀을 샀을 거라 생각하는 거야? 나도 지난 주에 쌀 50파운드 짜리 사다놨는데.


이방인: 네가 왜? 쌀 안 먹잖아.


미국인 동료 3: 지금은 평상시가 아니잖아. 쌀만큼 효율적인 비상식량이 없지. 마른 곡식이라 상할 염려도 적고, 보관할 때는 부피가 적지만 음식을 하면 많이 불어나니까. 아시안만 산 게 아니라 우리도 많이들 샀을 걸.


이방인: 그래, 그랬구나.. 평상시엔 고기와 감자만 먹느라 쌀은 거들떠보지 않던 네 녀석들이 이제 쌀마저 먹어버리겠다해서 쌀이 주식인 우리가 쌀을 못 구하였구나. 


미국인 동료 3: 미국에 온 걸 다시 한 번 환영한다.


제 농담을 받아치는 미국인 동료의 넉살에 모두가 한 번 더 빵 터졌습니다.


평소 쌀을 주식으로 하는 인구가 많지 않은 곳이라 마트마다 쌀이 품절되었을 때, 조금 황당했는데 의문이 풀렸네요. 누구할 것 없이 비상식량으로 보관하기 좋은 쌀을 많이들 샀더라구요. 그래서 저는 지금 먹다 남은 쌀 반 봉지가 전부랍니다. 뭐,, 2.2kg 짜리는 아직도 파는 것 같으니 그거라도 사려구요. 


그런데 여러분,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미국인들이 화장지에 집착하는 이유 말입니다. 저는 느~어~무~ 궁금했어요. 아니 도대체 화장지가 정말 그토록 중요한 비상물품이란 말인가? 마트에서 화장지 서로 사려다 싸움났다는 미국인이 한 둘이 아니예요. 제 바로 옆에 앉아 근무하는 남자 직원의 부인도 지난 주에 마트에서 다른 여성과 한바탕했다더라구요. 화장지를 사재기하는 여성이 있어서 딱 한 묶음만 양보하라고 했는데 매몰차게 거절해서 말싸움이 붙었다네요. 아니, 대체 화장지가 뭐길래? 미국인들은 비상시에 식량 떨어지면 화장지라도 씹어먹는건가?? 미국에서 20년을 살았지만, 도무지 알 수가 없어서 미국인 친구들한테 대놓고 물어봤어요.


아니, 왜 그렇게 화장지에 목숨거는건데?


했더니 다들 발뺌합니다.


"아니, 난 화장지 사들이지 않았는데?"

"우리도 그냥 평상시에 사는 만큼 샀는데?"

"난 집에 화장지 별로 없는데?"


훗, 이 녀석들, 뻥치고 있네.
마트마다 품절 품목이 다 말해주고 있구만. 


아마 솔직히 인정하기엔 자기들도 어딘지 모르게 창피했나 봅니다. 미국인들에게 캐물으며 돌아다녀보니 그냥 딱히 이유는 없는 것 같아요. 그냥 남들이 사들인다는 뉴스가 자꾸 나오니, 불안감에 자기도 사는 거죠. 화장지 전쟁 사태가 심화되면서 여기저기서 사회학자들이며 심리학자들이 이유를 분석한 기사도 나오는데 다들 비슷합니다. 비상시에 누군가 화장지를 많이 사는 걸 보면 자기도 따라 사고 싶어진다고 하네요. 그런 사재기 행위를 통해 불안감을 완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요. 아마 사태 초반에 화장지를 사재기한 일부 사람들이 이 행위를 부추긴 거라고도 볼 수 있겠죠. 하기야 화장지 뿐만 아니라 모든 사재기가 그렇죠. 남들이 하도 사니까 나중에 내가 정말 필요할 때 물건이 없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불안한 마음에 같이 사재기에 동참하게 되는 거잖아요. 저도 처음 1-2주간은 사재기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빵 터져서 웃기만 했는데 이젠 저도 슬슬 불안해지기도 하네요. 


그런데 참...
얻어걸리는 운이라는 것이 말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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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코로나바이러스 시작도 전, 한 5개월 전 쯤, 클릭 실수로 아마존에서 화장지를 어마무지하게 구매한 적이 있어요. 아마존에서 24개 묶음을 샀는데, 24개 묶음이라고 쓴 제목 뒤에 3팩이라고 쓴 걸 못 보고 그냥 샀거든요. 참 이상하죠.. 24개 묶음 3팩이면 가격이 이상하게 비싸다는 것을 눈치챘어야 할 텐데 어찌 된 일인지 그냥 샀나봐요 제가. 당시 핫딜이었을까요...? (남일인냥 말하죠? ^^) 그래서 전 혼자 사는 집에 화장지가 무려 72롤이나 생겨버린 거예요! 당시에 배달된 화장지 산더미를 보고 기가 막히기도 하고 속으로 혼자 "야이~ 이건 낯 팔려서 어디다 말도 못하겠다." 했는데 이야기가 이렇게 전개될 줄이야...!


덕분에 저희 집에 쌀은 없지만 화장지는 빵빵하게 구비되어 있답니다. 저야말로 유사시에 화장지 뜯어먹게 될런지도요...


여러분 오늘도 건강한 하루 유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