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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come to California

재미교포 형제가 싫어도 영어 이름 써야만 했던 이유

by 이방인 씨 2012. 9. 3.

오늘은 재미교포들도 각기 다른 의견을 가진 이슈를 다뤄볼까 합니다.
바로 영어이름에 관한 이야기죠.

본국에 계시는 많은 분들은 재미교포하면 다 제임스 킴, 제니 팍 같은 영어 이름을 쓰고 있다고 생각하실 수 있는데요.
물론 영어 이름을 쓰는 경우가 많지만 한국이름을 그대로 고수하고 있는 교포들도 있답니다.
또한 영어 이름이 대다수인 2세들 중에도 한글 이름을 쓰고 있는 사람들이 드물지만 있구요.
여기서 태어난 제 사촌동생 2명은 모두 순수 한글 이름으로 지었고 영어 이름은 아예 없습니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한자 이름보다 오히려 순수 한글 이름이 더 발음이 편한 덕분이죠. ^-^

또한 이미 한글 이름이 있는 교포 1.5세들 역시 발음이 힘들지 않으면 그대로 쓰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부득이하게 영어 이름으로 바꾸는 것이 더 나은 몇몇 경우가 있으니 다음과 같습니다.

1. 미국인이 발음하기 어려운 이름을 가진 경우

이건 정말 생각보다 문제가 많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 그 학교에 겨우 5명 남짓 있었던 한국 학생들 중에 한 남학생의 이름에 '철' 자가 들어갔었어요.
선생님이나 아이들이 이름 제대로 부르는 걸 못 봤습니다.
한국 여자 이름에 흔하게 쓰이는 "현" 이나 "은" 혹은 "혜" 도 자주 어리버리하게 발음됩니다.
선생님이 출석을 부를 때나 친구들이 이름을 부를 때 매번 자기 이름을 엉성하게 말한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리고 앞으로 계속 만나게 되는 대부분의 미국인들 역시 그럴 확률이 높은 것이 문제구요.
미국인들은 난처하고, 듣고 있는 이름의 주인도 괴롭습니다.
이런 경우 영어 이름을 쓰는 것이 나은 선택이라고 할 수 있죠.

2. 영어의 부정적 단어와 비슷한 발음의 한국 이름을 가진 경우

그리 흔하진 않지만 좋지 않은 뜻을 가진 영어 단어와 비슷한 한국 이름들도 있습니다.
널리 알려진 예가 바로 한국계 여성 코미디언인 마가렛 조입니다.
그녀는 미국에서 태어난 교포 2세지만 아버지가 "모란" 이라는 예쁜 한국 이름을 지어 주셨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는 모란이라고 하면 꽃 이름이니까 여자 아이 이름으로는 참 좋지만 미국에서는 Moron 이라는 단어와 발음이 비슷한 것이 문제였죠.
이 Moron 이라는 단어는 영어로 '바보 천지, 멍청이' 라는 뜻이거든요. ^^;;
마가렛 조가 나중에 말하길, 어릴 때 동네 아이들에게 놀림 꽤나 받았다고 합니다.

또 제가 만난 교포 1.5세 여자친구는 한국 이름이 너무나 예쁜 "햇살" 이었는데요.
자기 이름을 너무 좋아해서 미국에 와서도 그대로 쓰려고 했는데, 그 이름은 영어의 Hassle 이라는 단어와 비슷했죠.
Hassle 은 '귀찮은 상황'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답니다. ^^;;
미국인들이 정확하게 햇.살. 이렇게 또박또박 해주면 문제가 없겠지만, 본의 아니게 Hassle 을 연상시키는 발음이 되버리니 아무래도 바꾸는 게 나았겠죠?

3. 형제가 돌림자를 쓰는 경우

이건 제가 목격한 사례중에 가장 웃기니 한 번 들어보세요. ㅋㅋㅋ

한국 이름들을 영어로 표기할 때 대부분 이름 두 자를 하이픈으로 - 이렇게 나누어 쓰죠?
예를 들면 이름이 "김 성우" 라고 한다면 Sung-Woo Kim 이렇게 쓰잖아요.
그런데 미국으로 이민오게되면 공식 서류에 하이픈으로 나누어진 Sung 과 Woo 가 각각 first name 과 middle name 으로 처리됩니다
서양인들은 우리와 다르게 middle name 이라는 게 있다는 것 아시죠?
이들의 미들 네임은 풀 네임을 적을 때만 쓰고, 보통은 생략하거나 이니셜만 적습니다.
그러니까 "김 성우" 란 사람이 미국으로 이민을 오게 되면 그의 Full name 은 Sung Woo Kim 이지만 보통 쓸 때는 Sung Kim 혹은 Sung W. Kim 이 되는 것이죠.
원래 한국 이름의 첫 글자만 뚝 따서 쓰게 되는 셈이지만, 보통 별 문제 없이 익숙해지곤 합니다.

그런데 형제가 돌림자를 쓰는 경우는 예상치 못한 문제에 봉착하게 되죠. 
제가 아는 형제 두 분은 '상' 을 돌림자로 쓰고 있습니다.
형은 '박상O' 고, 동생은 '박상X' 가 되는거죠.
그러니 두 분 다 평상시 쓰는 영어 이름이 Sang Park 으로 완전히 똑같아 지는 겁니다!
두 분이 한 집에 사실 때는 집으로 날아오는 우편물에 전부 Sang Park 으로 써 있으니 어떤 게 누구한테 온 건지 뜯어봐야 알게되는 편지들도 있었구요.
또 모르는 사람에게 전화가 올 때는 이런 상황도 생겼었죠.

여보세요? Sang Park 과 통화하고 싶습니다.

어떤 Sang Park 을 원하시오?

....! 어떤 Sang Park 을 원하냐니 뭔 말이오??!

ㅋㅋㅋ 이런 경우도 이름을 영어로 바꾸는 게 여러명의 인생을 편하게 하는 길이겠죠?

이런 저런 이유들 때문에 한국 이름을 쓰고 싶어도 영어로 바꾸게 되는 교포들이 있답니다.
보통은 시민권을 취득할 때 정식으로 영어 이름으로 바꾸게 되죠.
이 교포 형제가 버티다못해(?) 이름을 바꾼 사연, 재밌게 보셨나요?
유쾌한 한 주 시작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