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시간에 늘 인터넷으로 한국 포털 사이트를 둘러보시는 저희 어머니가 얼마전에 살짝 웃으시면서 저한테 기사의 한 대목을 읽어 주셨어요.
코미디언 송은이씨가 미국을 여행할 때 맥주를 사려는데 점원이 신분증 제시를 요구했다며 어려 보여서 그런가 보다 싶어 흐뭇했다는 내용이더라구요.
저희 어머니가 웃으신 이유는... 미국에 처음 오셨을 때 어머니도 송은이씨와 똑같은 흐뭇~한 짐작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ㅎㅎㅎ
그 당시 저희 어머니는 이미 40대 후반이셨는데 마켓에서 술을 살 때 점원이 ID를 보여달라고 했었죠.
어머니는 황당해 하시는 와중에도....
아니, 내가 그렇게 심하게 어려 보일리가 없는데~~??
하시며 은~근히 기분 좋아하셨답니다.
오~ 그러나 저희 어머니의 기분 좋은 착각(?)이 금새 깨져버렸 듯, 송은이씨의 쾌거! 역시 그저 미국의 평범한 주류 판매법에 지나지 않을 확률이 높습니다.
작년에 환갑을 맞이하신 저희 어머니도 아직도 신분증 없이는 술을 살 수가 없거든요.
외모가 어려 보이든 말든, 실제 나이가 60이든 70이든 판매하는 쪽에서는 무조건 안전하게 신분증 확인을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송은이씨는 아담한 체구에 귀여운 얼굴이시니까 정말 어리게 봤을 수도 있겠지만요. ^^)
누가 봐도 성인을 넘어서 이미 노년에 들어섰다고 생각되는 사람에게까지 신분증을 요구하는 미국의 점원들을 보면 '이 나라의 법 적용에 융통성이라고는 없구나.' 하고 또 한번 느낄 수 밖에 없답니다.
특히 술과 담배 판매에 있어서는 절대 허점을 보이지 않는 점원들을 저도 많이 겪었었죠.
첫번째 - 엄마만 취했네~
제가 살고 있는 캘리포니아주의 법적 음주허용 나이는 21세입니다.
만으로 꽉 채운 21세니까 한국 나이로 하면 22세나 23세는 되어야 술을 마실 수 있는 것이죠.
그런데 저는 유전적으로 알콜 분해 능력이 떨어지는 체질이라 21살이 넘어서도 술을 마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다보니 평소에 신분증 제시해가며 술을 사거나 마실 일도 없었는데요.
어느 날은 오랜만에 뵙는 삼촌께서 어머니와 저에게 밥을 사 주시겠다며 칵테일 바가 함께 있는 식당으로 데려가셨습니다.
집에서 가깝기도 했고, 운전도 삼촌이 하셨기 때문에 저는 아무것도 들지 않은 채로 그냥 따라 나섰습니다.
밥을 먹는 와중에 칵테일 바가 눈에 들어오니 애주가이신 저희 삼촌은 술 생각이 나신 모양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애주가분들이 그러하시 듯 저랑 어머니께 술을 권하기 시작하셨죠.
칵테일 한잔을 거절하면 삼촌 기분이 상하실 것 같아 제가 마가리따를 한잔 시켰는데 바텐더가 저를 보며 이렇게 물었습니다.
Do you have ID, sweetie? 신분증 있어요, sweetie?
앗, 이 sweetie는 오늘 가방을 안 가져와서 신분증이 없구만요~ 그래도 계속 sweetie라고 불러 주세요~ ㅋㅋㅋ
옆에서 저희 삼촌은 얘는 21살이 넘기도 했고, 또 가족 보호자가 옆에 둘이나 있으니 괜찮다고 한잔 주라고 하셨지만 그 바텐더는 칼 같았습니다.
I'm Sorry. No ID, No can do. We'll get into trouble. 미안합니다. 하지만 ID 없으면 방법이 없어요. 나중에 우리가 처벌받게 되거든요.
법이 워낙 엄격하다 보니 신분증 확인 없이 알콜을 판매하면 엄청난 벌금을 물 수도 있고, 주류판매 면허 정지에다가 심하면 가게 문을 닫게 될 수도 있기 때문에 판매자들은 조심 또 조심할 수 밖에 없습니다.
결국 삼촌을 혼자 술 드시게 할 수 없었던 저희 어머니가 대신 술을 드셨고, 저 대신 취하셔서 기분 좋~게 집에 돌아오셨답니다. ㅋㅋㅋ
두번째 - 빡빡하시네요~
이건 저희 아버지와 겪었던 일입니다.
몇 년 전 주말 연휴에 친척들이 저희집에 모였던 적이 있습니다.
밤 늦게까지 이야기하다 보니 맥주가 떨어져서 아버지와 제가 집 근처 마켓에 맥주를 사러 갔었죠.
그런데 저희 아버지는 전형적인 무뚝뚝한 가부장 스타일이시라 제가 물건을 다 살 때까지 우두커니 마켓 한 쪽에 서 계시다가 짐만 받으려고 하셨어요. ^^;;
어쨌든 기다리다 제 계산 차례가 되어 맥주를 스캔하자 점원이 당연히 ID를 요구합니다.
아차차! 그런데 평소에 워낙 술을 안 사다 보니까 습관이 안 되서 이 놈의 ID를 또! 안 가져 온 겁니다.
매우 다행스럽게도 아버지가 근처에 서 계셨기 때문에 아버지를 계산대로 불러서 ID를 보여 드리고 제가 돈을 건넸죠.
그랬는데 점원이 말합니다.
제시한 ID의 주인에게서만 돈을 받을 수 있어요. 아가씨 아버지가 나한테 돈을 건네 줘야 해요.
그렇게까지 까다롭게?!!
그래서 결국 제가 들고 있던 지폐를 바로 옆에 서 계시던 아버지 손에 넘겨 드리고, 아버지가 다시 바로 코 앞의 점원에게 돈을 건네신 후에야 맥주를 살 수 있었답니다.
뭐지? 이 신개념 지폐 돌리기는? 주류 구매의 2인 3각이라고나 할까??
앞서 어머니와 삼촌과 함께 간 식당에서는 나이가 의심스러워 보이는 제게만 ID를 요구했지만 대량 구매가 가능한 마켓에서는 훨씬 더 까다롭게 ID 검사를 한답니다.
세번째 - 이러다 ID랑 정분 나겠구만~
제가 저희집 흥할 인간을 구박하는 큰 이유가 하나 있는데 그건 바로 그가 끽연가이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랑 제가 쉬지 않고 잔소리를 헤대는 통에 지금은 하루에 5-6가치 정도로 줄였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하루에 한갑 이상을 피우는 chain smoker였답니다.
그러니 담해 한 보루를 사도 얼마 못 가고 없어졌기 때문에 늘상 담배 사러 가는 게 일이었습니다.
다른 물건은 필요 없고 오로지 담배만 사러 가는 것이기 때문에 마켓보다 가까운 주유소에 딸린 편의점에 다녔는데요.
5-6년을 꾸준히 일주일에 한번씩은 무슨 일이 있어도! 담배를 사러 가니 그 편의점 직원과 농담 따먹기 하고 시시덕거릴 정도로 친해졌죠.
언젠가는 장마철에 비바람에 천둥 번개까지 치는 날인데도 담배를 사러 갔더니 점원이 이렇게 말했답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너만은 올 줄 알았어.
그것보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런 말을 들을 정도로 자주 가는 손님인데도 매번 ID검사를 한다는 겁니다.
흥할 인간이 담배 사러 갔다올 때마다 이런 불평을 해대는 실정이죠.
그 편의점 직원 분명히 내 ID속 사진이랑 번호 다 외웠을 거야. 그런데도 맨날 보여 달래. 아흐~ 귀찮아!
캘리포니아주에서 흡연은 18세부터 허용되지만 주류와 마찬가지로 엄격하게 신분증 검사를 합니다.
솔직히 말해 너무 하다 싶을 정도로 원칙을 따지는 업소도 많습니다.
저희 할아버지께서 올해 한국 나이로 여든 여섯이 되셨는데 한 4년전까지도 담배를 태우셨어요.
그 때도 이미 까만 머리카락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백발의 호호 할아버지이셨는데도 마켓에 담배를 사러 가시면 점원이 ID를 요구했다고 해요.
아무리 법이 지엄하다지만 할아버지도 매번 ID를 보여주시면서 실소를 금치 못하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 역시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려는 판매자들의 유비무환인 셈이기에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랍니다. ^^
조금 빡빡하다 싶기도 한 미국의 주류·담배 판매법의 적용 사례들, 어떻게 보셨나요?
여러분 건강하고 활기찬 월요일 시작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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