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Welcome to California

한국과 미국의 사뭇 다른 단체 훈련 체험담

by 이방인 씨 2013. 5. 7.

80년대 생인 저는 어릴 적 민방위 훈련의 추억을 아직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여러번 했겠지만 또렷이 회상할 수 있는 건 한번 뿐이네요.
어느 날 학원을 다녀 오는데 거리에서 갑자기 싸이렌 소리가 들리고 길을 가던 사람들이 모두 얼음이 되어 우두커니 서 있다가 싸이렌이 멈추자 땡! 하고 다시 걷기 시작하던 모습을 저 역시 쭈뼛쭈뼛 가만히 서서 눈만 굴리며 쳐다 보던 생각이 납니다.
그 시절에는 민방위 훈련을 할 때마다 이렇게 시간이 정지된 것 같은 광경을 볼 수 있었죠? ^^

민방위 훈련 만큼이나 강렬했던 또 하나의 기억은 바로 초등학교에서 실시하던 화생방 훈련입니다.
정말이지... 이건 지금 생각하면 배꼽 빠지게 웃을 수 밖에 없습니다.

'화생방' 이라는 건 화학적·생물학적·방사능 공격을 이야기 하는 거잖아요?
화생방 훈련이라는 건 그런 공격에 대비하는 훈련일테구요.

그런데.....

과연 초등학생들이 각자 집에서 가져 온 커다란 비닐 봉지나 쌀자루를 뒤집어 쓰고 운동장에 줄 지어 앉아 있는 것이 적의 화생방 공격을 얼만큼 막아낼 수 있을까요.
지금 돌이켜 보면 이건 전쟁 공격 대비 훈련이 아니라 초등학생들의 집단 행위예술에 가까웠달까요.
나름 진지하게 커다란 비닐 자루안에 온 몸을 쏙 넣어서 살아남으려고(?!) 했던 우리들은 어려서 그랬다고 쳐도 같이 운동장에 나와 그 광경을 지켜 보고 있어야 했던 선생님들은 어떻게 웃음을 꾹 참고 비닐 여미는 것을 도와주셨던 것인지... 역시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네요.
화생방 훈련 전날에는 늘 담임 선생님께서 얼굴만 가릴 수 있는 작은 비닐 봉지 말고 몸을 숨길 수 있는 커다란 걸로 가져오라고 주의사항을 주셨는데 과연 그 두 가지 비닐 방어복의 방어력 차이가 얼마나 나는 건지도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쩌면 이 훈련의 목적은 화생방 공격을 막아내는 것이 아니라 적군의 어이 상실을 유도하여 아예 공격의 의지를 꺾어버리는 데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제가 살던 시골에서만 이런 요절복통 화생방 훈련을 한 건가요?
혹시 여러분 중에 저랑 비슷한 화생방 훈련을 경험해 본 분들 계시면 꼭 댓글 달아 주세요!


한국에서 제가 겪었던 단체 훈련은 무섭고 긴장됐다기보다 즐거웠던 추억으로 남아있는데요.
미국에 왔더니 여기서도 학교에서 단체 훈련을 시키더군요.
다만 나라마다 환경과 사정이 다르니까 훈련의 종류가 달랐답니다.
제가 미국 학교에서 받았던 단체 훈련 두 가지는 이렇습니다.


첫번째 - 지진 대비 훈련

여러분~ 혹시 여러분 계신 곳에 지진이 난다면 딱 세가지만 기억하시면 됩니다.

 

Duck Cover Hold


바닥에 납작 몸을 숙이고 (Duck) 테이블이나 책상 밑으로 들어가 몸을 보호하고 (Cover) 그 밑에서 가만히 붙들고 있습니다. (Hold)
실내에서는 위에서 무언가 떨어지거나 건물이 무너질 위험이 있기 때문에 Hold하고 있다가 움직여도 좋다고 판단되면 신속히 건물 밖으로 나가야 합니다.

제가 고등학교 때 이 훈련을 하는데 이건 또 어찌나 웃기던지요...
지진의 위험이 많은 캘리포니아주의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해 오던 훈련이니까 능숙하게 별 일 아니라는 듯 선생님이 훈련을 시작하자 알아서 책상 밑으로 기어 들어가는데 지진이라고는 평생 모르고 살아온 한국 출신인 저는 '내가 엉금엉금 기어서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었거든요. ㅋㅋㅋ
책상 밑에 이 거대한 몸을 웅크리고 숨죽이고 있다가 학교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까지 마치면 훈련이 종료되는데요.
훈련할 때는 장난으로 실실 웃었지만 막상 나중에 제가 직접 지진을 겪었을 땐 살려고! 바둥거리며 훈련 받은 그대로 하고 있더라구요.
반복 훈련이 이래서 무서운 건가 싶었는데 그렇게 생각하면 저는 나중에 화생방전에 노출되면 훈련 받은대로 비닐 봉지 뒤집어 쓰고 있을지 모르겠어요. ㅋㅋㅋ


두번째 - 총기 난사 대비 훈련

참으로 미쿡스러운 훈련이죠?
이건 고등학교 때가 아니가 대학 시절 받은 훈련인데요.
교내 경찰관들과 함께 Active Shooting 탈출 연습을 했습니다.
역시 가장 중요한 건 잘~ 피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영웅을 좋아하는 미쿡이라도 현실과 영화는 다릅니다.
무조건 눈에 안 띄게 도망가는 것만이 살 길입니다.
제가 훈련을 받을 당시에는 그나마 교내 총기 난사 사건이 흔하지 않아서 최대한 자세를 낮추고 소리를 내지 말고 총소리가 멀어지거나 범인이 다른 곳에 있는 것이 확인되면 전속력으로 탈출하라는 훈련 내용만 있었는데 총기 난사 피해가 늘어난 요즘은 체계적으로 또 훈련법이 나왔더라구요.

요즘 훈련 요강에 따르면 총기 난사범이 나타났을 때도 역시 세가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Run Hide Fight

 탈출로가 있다면 도망가는 게 최고의 방법입니다.
탈출 방법에 대해 다른 사람들과 의견이 맞지 않는다면 굳이 단체 행동을 하려고 하지 말고
각자 자기 한 몸 챙겨 재빨리 도망가야 합니다.

 

 안전한 탈출로가 없다면 그 때부터는 숨소리도 내지 말고 숨어 있는 수 밖에 없습니다.
최대한 보호물이 많은 곳에 숨어 쥐 죽은 듯 있어야죠.
 

만약 도망도 못 갔는데 숨지도 못한 최악의 상황이라면...
그 땐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것이 마지막 수단입니다.
그야말로 생사를 건 결투 밖에 남은 길이 없는 거죠.


지진을 직접 겪었을 때는 훈련 받은대로 할 수 있었지만 총기 난사범을 맞닥드리게 되면 과연 저대로 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
훈련 내용을 써 먹을 일이 없기만을 바래야겠죠.

한국과는 사뭇 다른 미국의 단체 훈련, 어떻게 보셨나요?
안전하고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