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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직장생활

미국 직장의 회식문화

by 이방인 씨 2019. 12. 3.

일전에 한국에서 직장 생활하고 있는 친구와 카톡으로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아, 진짜 회식 때문에 짜증나 죽겠어. 이것만 없어도 회사생활 할만할 텐데.

친구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정기적인 회식을 기본으로 하는 회사에 다니고 있다고 하더군요. 간혹 즉흥 회식도 있다고 하는데 마침 저랑 대화하던 날 회식 통보를 받는 바람에 저런 말이 나오게 되었답니다.

한국식 회식 문화를 모르는 저로서는 당시 딱히 위로해줄 말이 없었는데, 미국 회사의 회식이라면 저도 몇 마디 할 수 있지요. 그래서 오늘은 제가 경험해 본 미국 회사 회식에 대해 써 볼까 합니다.

1. 회식을 뭐라고 부를까?

한국의 "회식"이라는 단어와 딱 들어맞는 표현은 아니지만, 대체할 수 있는 말이 여럿 있는데, 주로 "All-Staff Event" 혹은 간단하게 "Office Party"라는 말을 씁니다. "All-Staff"은 문자 그대로 모든 직원들이 다 모인다는 뜻으로, 전직원회의는 "All-Staff Meeting"이고 전직원을 대상으로 하는 행사는 "All-Staff Event"라고 합니다. 회식은 퇴근 후 모두가 모여 먹고 마시는 자리이니 All-Staff Party라고 불러도 무방합니다. 

2. 미국 회사의 대표적 회식은?

사실 미국 회사에서 외부 회식은 자주 있는 일은 아니랍니다. 음식을 한 가지씩 가져와 함께 즐기는 potluck이나 생일파티는 꽤 하지만 퇴근 후에 다 같이 모이는 일은 흔치 않습니다. 퇴근 후에는 다들 한시바삐 집으로 달려가고 싶으니까요! 그런 미국 회사의 빼놓을 수 없는 대표적 회식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크리스마스 회식이지요.

주로 이런 초대장을 이메일로 받습니다.

크리스마스를 뻑적지근하게 챙기는 미국인들답게 대부분의 회사에서 크리스마스 파티는 빠트릴 수 없는 회식이랍니다. 직원 수가 많은 회사에서는 대부분 큰 식당이나 회관을 빌려 파티를 하는데, 돈이 많은 회사는 성대한 호텔을 빌려 화려한 파티를 열기도 한답니다. 하지만 저는! 으리으리한 회사에 다니고 있지 아니한 까닭으로, 이번 크리스마스 회식은 다운타운의 평범한 파티장으로 가게 되었지요. 뭐, 가면 하는 건 다 비슷합니다. 먹을 사람은 먹고, 마실 사람은 마시고, 한 해 동안 있었던 일들을 돌아보고, 몇 가지 게임과 행운권 추첨을 하고 끝나죠. 

3. 한국 회식과 다른 점은?

제 생각에는 크게 두 가지가 다른 것 같아요.
첫째는, 대부분 일찍 끝난다는 점입니다. 한국은 회식을 하면 1차, 2차, 혹은 3차가 새벽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는데요. 미국 회사 회식은 대부분 2-3시간 정도입니다. 그것도 점심시간에 하거나, 퇴근 후라도 보통 9-10시 이전에 끝나는 편입니다. 제가 다니는 직장에서는 작년에는 점심시간을 활용하여 2시간 정도 회식을 했고, 올해는 저녁 4시부터 7시까지 크리스마스 회식이 예정되어 있는데, 파티장까지 가는 시간을 고려하여 퇴근 시간을 3시 반으로 정했답니다. 

두 번째는, 참여는 어디까지나 자발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입니다. 갈 사람은 가고 안 갈 사람은 안 가도 됩니다. 특히 올해처럼 7시까지 파티가 예정되어 있는 경우, 참석하지 않는 직원들이 더 많습니다. 직장 동료는 어디까지나 직장 동료일 뿐이라며 공과 사가 확실한 미국인들답게 퇴근 후에는 직장동료와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다는 직원들이 많거든요. 사실 이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안 그래도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직장에서 보내고 있는데, 퇴근 후에는 저만의 시간을 갖고 싶거든요. 이번에 파티 시간이 공지되었을 때 저는 단박에 "안 갑니다"라고 답했답니다. 

그런~데! 모두가 그렇게 느꼈는지 참석하지 않겠다는 직원이 너무 많아서 이대로는 파티의 운명이 위태롭다고 생각한 저희 부장님께서 제발 와달라고 읍소하신 바람에 저는 억. 지.로. 정말 울며 겨자 먹기로 가게 되었답니다. 부장님이 몇 번이나 부탁하셔서 마음이 약해지고만 저는 가겠노라 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 쓰지 않는 다른 동료들은 아는 척도 안 하더라고요. 정말 이럴 때는 그들의 굳은 심지가 부럽기만 합니다. 저도 그냥 집에 가고 싶다고요!

자고로 파티란 사적으로 해야 제 맛인데
회사 사람들과의 파티는 그저 근무의 연장일 뿐
아오~ 짜증!

당장 이번 주 목요일이 회식인데 벌써부터 짜증이 나려 합니다. 아, 왜 나는 부장님의 청을 끝끝내 거절하지 못했단 말인가!

이렇게 생각하니, 회식만 없으면 회사 다닐만하겠다던 친구의 말이 십분 이해됩니다. 저는 1년에 두세 번 있는 회식도 가기 싫은데 친구는 한 달에 한 번 씩, 일 년이면 12번의 회식을 해야 하다니요. 

한국이나 미국이나 상당수가 가기 싫다고 하는 모양인데, 회식은 대체 누구를 위해 하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