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미국 직장생활

미국인 직장동료왈, "너는 참 편하게 회사 다닌다."

by 이방인 씨 2020. 2. 5.

난 주에 직장 동료들 대여섯명과 함께 점심식사를 하는데 그 중 한 명이 저한테 이런 말을 하지 뭐예요.

"방인이 너는 진짜 직장 편하게 다닌다. 보스가 너한텐 친절하잖아."

음... 일단 이 말에는 거짓과 진실이 섞여 있습니다.

직장 편하게 다닌다 - 거짓
보스가 너한텐 친절하잖아 - 액면으로는 
진실

세상 모든 직장인들과 마찬가지로 저 역시 가슴에 사직서 한 장 쯤은 품고 회사에 다닙니다. 직장 스트레스로 밤에 악몽을 꾼 적도 두어번 있구요. 그런데 왜 미국 동료들 눈에는 제가 직장 편하게 다니는 것처럼 보였을까요?

첫번째 이유. 보스가 제게 ... 친절하긴 합니다.

맞습니다. 보스는 이 날 제가 함께 점심식사를 했던 미국인 동료들보다 제게 비교적 더 친절하긴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동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편애"는 아닙니다. 보스에게는 보스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습니다.

연장자 및 상급자 예우가 몸에 밴 저는 업무에 해가 되는 사안이 아니라면 .. 보스의 의견을 존중합니다. 어차피 큰 줄기의 결정은 보스가 하기에 의견충돌이 생길 수 있는 부분은 기껏해야 취향이나 스타일 차이에서 비롯됩니다. 요컨대 목적지 결정은 이미 보스가 했지만 그 목적지에 가는 여러가지 루트중 어느 것을 고르느냐의 문제란 것이죠. 보스가 원하는 루트 A와 제가 선택한 루트 B가 다르더라도 도착예정시간에 딱히 큰 차이가 없다다면, 저는 그냥 보스가 원하는 길로 가게 내버려둡니다. 어차피 목적지에 비슷한 시간에 도착하게 되는데 그냥 연장자가 원하시는대로 놔두면 불필요한 소모전을 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그런데 미국인들은 "언쟁에서 이긴다"라는 것에 집착하는 경우가 꽤 있어요. 자유로운 토론문화가 발달한 미국이지만, 이기고 진다는 일차원적인 결과론에서는 자유롭지 못한 탓인지 상대가 누구든지 이기려고 기를 쓰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특히 업무 회의 시간에 미국 동료들을 보고 있노라면, 자기 주장을 관철시키는데에만 몰두한 나머지 사소한 것에 집착하는 것 같다는 느낌도 듭니다. 꼭 자기가 원하는 루트로 목적지에 도달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거예요

이러면 자연히 보스와 충돌이 잦을 수 밖에 없죠. 예를 들어 도착예정시간이 겨우 3분 차이인데  3분 차이를 가지고 보스를 물고 늘어지는 거예요. 물론 이해는 합니다. 작은 차이라도 루트 B 더 효율적이라면 그리로 가면 좋겠죠. 그런데 이 3분이 정말 보스와 언쟁을 할 만한 가치가 있는 걸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판단했습니다만, 미국인 동료들에게는 "내 의견대로 한다"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이것이 그들이 말하는 "주체적인 삶"이거든요.

보스 입장에서는 사소한 일로 사사건건 대립하는 직원보다는 그냥 흘러가게 놔두는 직원이 편하겠죠. 그래서 언뜻 보기에 저희 보스는 제게 친절한 듯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보스는 어디까지나 보스죠. 속을 들여다보면 딱히 다를 것도 없답니다.


두번째 이유. 설령 보스가 친절하지 않다고 해도!

이걸 행운이라 여겨야 할지 모르겠지만, 사실 저는 보스가 제게 못되게 굴어도 크게 상처받지 않는답니다. 부하직원위에 군림하는 상사가 드물지 않은 한국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인 것 같아요.. 비단 회사 뿐만 아니라 어느 집단이라도 선배라는 이유로, 연장자라는 이유로, 상급자라는 이유로 아래사람을 비인격적으로 대하는 사람들을 만난 경험이 많기 때문에 상급자로부터 받는 스트레스는 어느 정도는 "기본값"으로 인식한달까요? 보스가 화풀이를 하거나 괜히 시비를 걸어도 '원래 직장생활이 그런거려니...' 하고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는 거죠. 

사실 저만 그런게 아니라 대부분 아시안계 직원들이 보스의 불친절함에 대한 방어력이 강하답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물어봐도 확실히 아시안계 직원들이 그런 면에서 터프하더라구요. 미국인 보스는 아무리 막 나가도 직원에게 목소리를 높이거나 험한 말은 잘 안하거든요. 기껏해야 한두마디 면박을 주거나 혹은 신경질적으로 대한다거나 하는 정도죠. 저는 한국에서 직장상사를 경험해 본 적은 없지만, 학교를 다니면서 이보다 훨~씬 심한 선생님들을 만난 적이 있어서 이쯤은 가볍게 넘길 수 있더라구요. 다른 아시안계 직원들도 다 비슷해서 우리끼리는 이런 말을 한답니다.

It's Asian Mentality
이건 아시안식 마음가짐 (정신력) 이지

그런 면에서는 미국인 동료의 말처럼, 제가 직장을 편하게 다니고 있는지도 모르겠네요. 미국인 동료들은 보스의 한마디 한마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특히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으면 그것에 대해 몇 날 며칠을 불평한답니다. 같은 보스 아래 있는 미국인 동료들이 툭하면 제게 하소연을 하는데, 참 난감해요. 처음에야 공감해주고 위로해주곤 했는데 허구헌날 같은 불평을 듣다 보니 저도 속으로 이런 생각이,

'원래 직장 상사라는 건 그런 게 아니겠니.
그리고 제발 너도 눈치 좀 있어라.
네가 별 거 아닌 일에도 네 말이 맞다고 박박 우길 때마다 보스가 짜증내는 걸 알면서 왜 그렇게 포기를 못하니...'


동료가 매일 같이 "난 이 회사에서 우울해. 난 내 능력을 알아주는 보스 밑에서 일하고 싶어. 집에 갈 때마다 슬퍼." 라며 우는 소리를 하면서도 매 회의시간마다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걸 보면 참... 경탄해야할지 경악해야할지 알 수가 없답니다. 악순환의 원인은 자신에게도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제게 "방인이 너는 편하게 회사다녀서 좋겠다" 라고 말할 때... 어쩐지 보스가 신경질내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는 느낌적 느낌이 머리를 스쳐지나갔지요. 

수동적인 삶을 권장하는 것 같아 쏙 마음에 드는 속담은 아니지만 옛말 틀린 것 없다고 하죠?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는 옛사람들의 지혜를 떠올려봅니다. 


여러분 즐거운 하루, 유후~

댓글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