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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come to California

미국에서 어른이 할로윈을 무사히 보내는 세 가지 방법

by 이방인 씨 2013. 10. 30.

요즘은 한국에서도 할로윈 파티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들었습니다만 제가 한국에 있을 때는 Halloween이란 영화에서나 보는 서양의 희한한 풍습이었습니다.
십 여년 전 8월 초에 이민을 와서 두 달을 조금 넘겼을 때 생애 첫 할로윈을 맞았는데 어린 사촌동생들을 데리고  Trick or Treat 을 처음 해 보았죠.
Trick or Treat이란 "사탕을 내놓지 않으면 짖궂게 장난칠 거야~"란 뜻으로 할로윈 때 꼬꼬마들이 코스츔을 입고 사탕 사냥(?)을 다니는 걸 말하죠?

 

(kids.britannica.com)

이렇게 깜찍하게 차려입은 아이들이 저마다 사탕을 얻을 바구니를 들고 옵니다.

 

그 당시 저는 이미 사탕을 얻으러 다닐 나이를 넘겼기 때문에 이모를 대신하여 아이들을 데리고 다녔을 뿐이지만 첫 해 한 번 해 보고 나가떨어졌습니다.
아유~ 지쳐요, 지쳐.

꼬꼬마들이야 놀 때는 피곤함을 모르기도 하고 사탕 바구니 무거워지는 재미에 멈출 줄 모르지만 아이들 데리고 다니려니까 저는 금세 지쳐버렸습니다.
그 후로는 Trick or Treat을 한 적은 없지만 집에 찾아오는 아이들에게 사탕을 주는 일은 매년 계속 되고 있죠.
그런데 사탕을 나눠주는 일도 한두번이나 즐겁지 매년 계속되면 시들해집니다.
아이들이 Trick or Treat~ 하고 외치면 놀라는 척이라도 조금 해 줘야 하고 무서운 분장을 한 아이가 있으면 겁 먹은 척 해 줘야 하고... 이런 일에 크게 재미를 못 느끼는 어른이라면 옷 차려입고 온 꼬꼬마들에겐 미안하지만 차라리 밖에 나가서 파티를 하고 노는 게 더 즐거운 일이 될 수도 있죠.
그래서 오늘 이 글의 제목은 할로윈을 즐기는 방법이 아니라 그냥 무사히 보내는 세 가지 방법입니다.

 

 첫번째 -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기 

할로윈 때 아이들이 많이 출몰하는 지역은 역시 수 백 가구 이상의 집들이 모여 있는 주택가입니다.
그리고 저희 가족이 바로 그런 곳에서 살고 있어서 아이들이 제법 많이 옵니다.
해가 질 무렵부터 아이들이 딩동거리기 시작하는데 많이 올 때는 한 스무번 정도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고 Wow~ 하며 연기를 시작해야 할 정도로 오더라구요.
저희집 흥할 인간이나 아버지는 할로윈인지 뭐시기인지에 관심도 없는 사람들이라 저나 어머니가 사탕을 나눠주었는데 두 번의 할로윈을 보내고 이미 귀차니즘이 목까지 차오른 저는 어머니께 다 떠넘겼어요!
아이들을 매우 좋아하시는 어머니는 처음에는 일도 아니라는 듯 '아이들 재밌으라고 한복을 입어볼까?' 하시며 열정적으로 하셨는데 그것도 한 3-4년이 지나자...

다음 방법으로 넘어갔습니다.


 두번째 - 사탕은 셀프로~ 

할로윈은 공휴일이 아니기 때문에 일하고 돌아와서 느긋하게 저녁을 보내고 싶은 어른들이 초인종이 울릴 때마다 일어서서 요란스럽게 사탕을 나눠주기 피곤할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사탕 바구니를 문 앞에 놓아두면 됩니다.

 

 

사탕이 가득 담긴 바구니를 현관 앞에 놔 두면 아이들이 초인종을 누르는 대신 알아서 사탕을 집어가거든요.
사탕을 직접 나눠주긴 번거롭지만 아이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을 때 쓸 수 있는 좋은 방법이죠.
이론적으로는 좋은 방법이나... 제 입버릇처럼 이 세계는 유토피아가 아니지 않습니까?
이 방법에는 씁쓸한 부작용이 따라옵니다.

제 욕심껏 사탕을 싹쓸이하는 아이들이 있더라구요.

직접 줄 때는 적어도 스무 번은 나눠줄 수 있는 양이었는데 바구니를 밖에 놔 두자 삽시간에 사탕이 동이 나더군요.
바구니를 밖에 놔 두었는데도 벨이 울리길래 문을 열어 봤더니 빈 바구니만 발견한 아이들이 저를 향해 무언의 레이저를 발사하고 있었습니다.


아놔~ 이 어른 정말 왜 이러실까? 할로윈 한두번 해 보나?


평소 아이들이 오던 시간 간격으로 봐서 초저녁 한 두 시간 사이에  그 정도로 많은 아이들이 왔다 갔을리 없으니 일찍 온 아이들이 아무도 안 보니까 뒷사람 생각 안 하고 사탕을 마구 집어간 거죠.
나중에 벨을 누른 아이들에게 줄 게 없어서 얼마나 미안했는지 모른답니다.
그래서 이 다음 방법을 쓸 수 밖에 없었죠.


 세번째 - 죽은 척 하기 

꼬꼬마들은 곰이 아니지만 죽은 척 하기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아까 2번 방법을 썼을 때 부작용으로 사탕이 일찍 동이 났다고 했죠?
그럴 때는 최종병기만이 남아있을 뿐입니다.
그 무시무시하다는...


랜.턴. 끄.기.
 
 

 

할로윈에는 대부분의 집에서 이런 랜턴을 밝혀둡니다.

 

(www.firsthdwallpapers.com)

할로윈의 상징인 Jack-O-Lantern이죠?

 

굳이 Jack-O-Lantern이 아니더라도 할로윈 랜턴을 많이 켜고 그것도 아니라면 하다못해 현관 문 앞 등이라도 켜 놓죠.
하지만 더 이상 나눠줄 사탕이 없거나 집에 아무도 없을 때는 랜턴을 꺼두면 됩니다.
Trick or Treat에도 상도덕이라는 게 있어서 그렇게 죽은 척하고 있으면 아이들이 신호를 알아듣고 그 집은 건너 뛰거든요.
저도 바구니를 밖에 놔 두었다가 사탕을 모두 잃고(?!) 서둘러 랜턴을 끄고 현관 등도 껐더니 옆집 초인종은 울려도 저희집에는 오지 않더라구요.
간혹 의욕이 넘쳐 깜깜한 집의 초인종도 누르는 아이들이 있기도 한데 그럴 때는 같이 따라온 어른이 다른 집으로 인도하기 때문에 사탕이 없다고 원망하는 아이들의 따가운 눈초리를 견뎌야 하는 사태는 막을 수 있답니다.

여기 날짜로 오늘이 29일이니까 저도 내일 모레면 또 한 번의 할로윈을 맞이하게 되겠군요.
올해는 저도 머리를 조금 써야겠어요.
일일히 나눠주기에는 아무래도 열정이 모자라니까 사탕을 적당량씩 배분해서 시간차로 바구니를 내놓아야 할까 봐요.
이번 할로윈도 그저 무사히만 넘기겠노라고 다짐하는 안.일.한. 어른으로 자란 이방인 씨랍니다.

여러분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