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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come to California

내가 만난 별별 미국 교수님들 열전

by 이방인 씨 2013. 8. 26.

러분, Goo~~~d morning? 삼라만상이 평안하여도 나만은 짜증나는 월요일 아침, 무사히 일어나셨습니까? 오늘은 제가 미국에서 겪었던 많은 교수님들 중, 유독 잊을 수 없는 몇몇 분들의 이야기를 털어놓을까 합니다. 전공 과목 외에도 이런 저런 교양 과목에 문화 강좌까지 오랜 기간 들었기 때문에 일일히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교수님들을 많났는데 그 중에서도 독특한 개성을 지니신 분들이 있었답니다.


첫번째 - 약간 천재지만 많이 이상해~


이 분은 물리학 교수님이셨는데요. 물리학 박사 학위에 더해 천문학, 수학 석사 학위까지 받으신 분입니다. 공부를 워낙 좋아하셔서 줄곧 공부만 하시다 비교적 늦은 나이에 교수가 되셨는데 강의하실 때 보면 학생들은 못 알아들어서 멍~ 때리고 있는데 본인은 너무 신나서 이 이론은 어떻고 저떻고, 이 실험이 대단한 게 어떻고 저떻고 흥분지수가 장난이 아니셨어요. 외골수로 학문에만 매진하는 분들이 그렇듯이 이 교수님도 겉모습 따위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으시고 오로지 연구와 강의에만 몰두하시는 순수한 학자의 표본 같으셨죠. 어르신이라고 할 만큼 연세가 많지도 않으셨는데 이미 머리카락과 수염은 백발이었고 사시사철을 초록색 하와이안 셔츠와 검은색 바지 한 벌로 보내시더라구요. 그 모습은 마치 이 사람을 연상시켰습니다.

 

SF 영화의 클래식 'Back to the future'를 보신 분들이라면 이 박사님을 잊을 수 없죠?
타임머신을 개발해 낸 괴짜 천재 박사님입니다.
저희 물리 교수님도 강의하실 때 말고 평상시에는 조금 어리바리하신 구석이 있었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실험 시간에...
교수님은 또 흥분 게이지를 꽈~악 채우신 상태로 열변을 토하시며 실험기구에 대해 설명을 하고 계셨죠. 오래된 제 기억으로 아마 질량에 관한 실험 도구인데 크기는 작았지만 무게가 꽤 나갔어요. 교수님이 여느 때처럼 초점없는 눈으로 듣고 있는 학생들을 향해 "이것 좀 보라구. 이건 정말 엄청나게 간단하면서도 놀라운 기계야!" 구조를 설명하시려던 찰나,

쿵~!

안돼

아아악~~~!!!!!


헉4
교수님, 괜..괜찮으세요???????????????


교수님은 너무 흥분한 상태로 실험기계를 한 손으로 구조를 설명하시다가 그만
기계를 본인의 오른쪽 발 앞꿈치에 정확히 낙하시키신 것입니다. 어디선가 얘기로 전해들었다면 웃었겠지만 직접 눈 앞에서 보니 전혀 웃을 일이 아니더라구요. 앞자리에 앉았던 아이들이 번개같이 튀어나가 괜찮으신지 살폈으나 교수님은 곧 폭발이 예정된 토마토처럼 붉은 얼굴로 땀을 줄줄 흘리셨답니다. 의식은 멀쩡하셨기 때문에 911까지 부르지는 않았지만 학과 사무실에 연락해서 바로 병원으로 모셨습니다. 결과는 오른쪽 발가락 3개가 조각나셔서 엄청난 기브스와 함께 돌아오셨죠. 그런데 어찌나 해맑은 분이신지 며칠 후 학생들에게 부상을 설명하시면서 또 이렇게...


오케이

아하하하하하하.
기계의 무게가 OO, 내
팔꿈치부터 발가락까지 거리는 OO이라고 치면
그 때 내
발가락에 가해졌던 충격의 정도는~ Blah Blah Blah~


헐

교수님... 입은 안 다치셔서 정말 기쁩니다. ㅠ_ㅠ

 

두번째 - 쿠키 몬스터


이 분은 핸드폰을 경멸하는 공예과 교수님이셨습니다. 진지한 이론 수업과는 달리 자율적 실기가 주를 이루던 공예 수업이라 학생들이 긴장감이 없어서 그랬는지 강의실에서 핸드폰을 켜놓고 있는 아이들이 있었어요. 교수님은 그걸 너무나 싫어하셔서 강의 첫 날 나눠주신 수업 안내문에 이런 규칙이 하나 써 있었습니다.

강의 시간에 누군가의 핸드폰이 울리면 나머지 학생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든 간에 손을 멈추고 핸드폰의 주인을 향해 한 목소리로 "Cookies~!" 라고 외친다. 핸드폰을 꺼놓지 않은 죄를 지은 그 학생은 벌로 다음 강의 시간에 모든 학생들이 먹을 수 있는 만큼의 쿠키를 가져 온다.

결과적으로 그 학기에 쿠키 많~이 얻어 먹었습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민망하고 미안해서 다음 시간에 곧바로 쿠키를 사 오거나 집에서 직접 구워 옵니다. (미국인들은 집에서도 자주 구워 먹으니까요.) 그런데 간혹 돈이 아까워서인지 뻔뻔하게 모르는 척 하고 입 닦는 학생들이 있는데 이 교수님은 절대로 그냥 넘어가지 않으셨습니다. 가져올 때까지 매 시간 이야기를 하셔서 결국은 받아내고야 마셨죠. 정작 본인은 잘 안 드셨던 걸로 봐서 쿠키를 좋아하셨다기보다는 클래스에서 핸드폰이 울리는 걸 아주 불쾌하게 여기신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도 얼굴을 붉히시거나 꾸짖으신다거나 하는 일은 없으셨고 항상 웃는 낯으로 쿠키를 가져올 때까지! 가.만.두.지. 않.으.셨.죠.

 

세번째 - 날 울리지 마


이 분은 예전에도 제 글에 한 번 등장하신 적이 있습니다.

2013/04/10 - [방인 씨 이야기/미국 이야기] - 교수님, 부항 좀 그만 뜨세요! 미국 교수님의 동양의학 사랑

넉넉한 몸집에, 손 끝만 대도 톡 터지는 눈물샘에, 정말 푸근한 옆집 아주머니 같은 좋은 분이셨는데요. 이런 분을 제가 울린 적이 있답니다.

시러

쯧쯧쯧... 수업 중에 또 까칠한 성격 나왔구만?

하시는 분들, 그런 거 아닙니다~

수업 마치고 나서 같은 강의를 듣는 학생들 두 세명과 교수님과 함께 군것질을 하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는데 갑자기 조~용해지는 겁니다. 왜 그런 때 있잖아요, 여럿이 함께 대화하다가 우연히 동시에 입을 다물어서 정적이 내리는 순간이요. 그 날도 그렇게 갑자기 침묵의 순간이 닥쳤길래 제가 농담을 했습니다.


헉

헉~! 가만히 있어 봐요. 여기 갑자기 쥐 죽은 듯 조용하죠?
한국에서는 이럴 때 귀신이 허공에서 우리를 쳐다보고 있다고 해요.


이런 말 한국에서는 종종 듣잖아요?
그런데 교수님은 머리털 나고 처음 들으셨나 봐요. 눈이 동그래지시더니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시더니  눈물을 몇 줄기 흘리시더니  급기야 냅킨으로 닦으셔야 할 정도

그러는 사이 저 역시, 눈이 동그래지더니 당황해서 그냥 실없는 우스개라고 속사포처럼 변명을 하더니 식은 땀이 한 방울 또르르 흐르더니 급기야 같이 냅킨으로 닦아야 할 정도

원래 강의 시간에도 작은 일에 감동해 한 번씩은 꼭 우셔서 Cry baby라는 별명이 있었지만 그 정도 이야기에 무서워 우실 줄은 꿈에도 몰랐답니다. 제가 너무 당황해서 연신 사과를 드렸더니 교수님은 원래 본인은 툭하면 운다고 괜찮다고 하셨죠. 말씀처럼 금세 안정을 되찾고 다시 과자를 잘 드시긴 하셨지만 저는 십년감수했답니다. 좀비나 뱀파이어처럼 적극적 액션을 취하는 존재들만 알고 있는 미국인들에게 허공에 떠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 귀신의 이야기는 당황스러웠을까요?


 

아아악~ 도대체 원하는 게 뭐야? 차라리 날 공격해!
왜 가만히 노려보고만 있는 거야?! 피가 마를 것 같다구!! 뭐든 하란 말이야~


교수님 울려버린, 안 먹히는 농담 차~암~ 잘하던 학생이었던 이방인 씨랍니다.

여러분, 씩씩한 월요일 유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