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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come to California

'죽이냐, 샐러드냐?' 한마디로 설명하는 현대 미국 문화

by 이방인 씨 2013. 8. 20.

미국을 수식하는 말에도 여러가지가 있지만 많은 분들이 이 말을 한 번쯤은 다 들어보셨을 것 같습니다.

인종전시장

그 만큼 다양한 인종이 모여들어 사는 곳이라는 뜻일 텐데 제가 살고 있는 캘리포니아에는 많이 사용되는 언어가 12가지, 소수가 쓰고 있는 언어를 다 모으면 122가지가 넘는다고 합니다.
캘리포니아 교육국의 통계에 따르면 공립 초중고에 다니는 학생들이 쓰는 언어만 해도 59가지라고 하니까요.

이쯤되면 다민족·다문화 국가의 절대지존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그래서 생겨난 사회·문화적 개념이 'Melting Pot' (멜팅 팟)입니다.
뭐든지 넣고 함께 녹여버리는 용광로를 melting pot이라고 하는데 전 세계에서 온 다양한 사람들이 한데 뒤섞여 살아가는 모습을 비유적으로 이른 말이죠.
이민으로 개국한 미국 땅에서는 이미 18세기부터 쓰였던 말이랍니다.

이 말이 쓰이던 1700년대 후반부터 1900년대 초반까지는 이민자라고 해도 거의 다 유러피안들이었습니다.
물론 유럽 각국이 다르긴 해도 다른 대륙에 비하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역사와 문화를 가지고 있었죠.
문화적 공통점을 지닌 유러피안 이민자들이 모여 '미국'이라는 신생국가에 둥지를 틀었으니 그들은 '미국인'이라는 공통의 정체성까지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이들의 문화를 모두 뒤섞어도 '융합'이 가능했고 한 가지 성질을 지닌 American Culture로 거듭날 수 있었던 거죠.

하지만 19세기, 20세기를 지나면서 미국의 melting pot은 점점 더 커졌고 내용물은 늘어만 갔습니다.
유럽 뿐만 아니라 지구촌 곳곳에서 사람들이 유입되었으니까요.
그리하여 90년대 후반부터 이 Melting Pot의 오류를 지적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www.cglearn.it)


각기 다른 수많은 재료를 넣고 끓이면
결국 모든 재료들이 녹아 하나의 물질이 된다는 주장이 Melting Pot이지만
현대 미국에는 도무지 들어맞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수많은 '다른 문화들'을 한 군데 모아놓는다고 해서 하나의 동일한 성질을 가진 (homogeneous) 문화로 재탄생될 수 없는 것 같단 말이죠.
실제 미국 사회의 모습을 봐도 중국인, 멕시칸, 아이리쉬, 러시안, 기타 등등 사람들이 한 가지 성질의 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건 말이 안되구요.

이렇듯 현실과의 괴리가 큰 Melting Pot을 대신하여 새로 등장한 정의가 Salad Bowl (샐러드 볼)입니다.
샐러드를 담는 커다랗고 둥근 그릇이라는 뜻이죠?
평소 여러분이 드시는 샐러드의 모습을 한 번 떠올려 보세요.
양상추, 토마토, 오이, 닭가슴살, 치즈, 양파, 등등 뭐 수십가지도 넣을 수 있겠죠?
그 재료들을 한 그릇에 넣고 아무리 뒤섞어도 양상추는 양상추 그대로, 토마토는 토마토 그대로, 또 다른 재료들도 그들의 본래의 모습을 유지합니다.
한 군데 모아 섞는다고 해서 재료들 고유의 모습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거죠.

그러나 재료들이 모두 원래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고 그 음식을 '양상추 + 토마토 + 오이 + 닭가슴살 + 치즈 + 양파' 라는 이름으로 부르지는 않습니다.
그것들을 다 모아 섞으면 '샐러드'라는 새로운 형태가 되니까요.
현대 미국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양한 문화가 '각기 다르되 공존'하고 있는 새로운 형태의 사회인 거죠.

 

(www.cglearn.it)

모든 것이 섞여 한 가지 색의 '죽'처럼 보였던 melting pot과는 달리
각양각색 재료들의 모습이 살아있죠?

다양한 문화가 섞인다고 해서 '한 가지의 전혀 다른 무언가' 혼합되는 게 아니랍니다.


Salad Bowl 정의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으면서 melting pot이라는 단어를 마지막으로 들어본 게 언제인지 기억도 잘 안 나네요.
더욱이 다수의 Californian들은 melting pot이니 salad bowl이니 따질 필요도 없이 '다양성'을 자연스레 받아들이기 때문에 이런 논의를 잘 하지도 않구요.

한 차례 폭풍을 불러 일으켰던 며칠 전 글 밑에 남겨주신 의견들을 보니 몇몇 분들은 (미국에서 유학했다는 분조차) 미국 사회의 특징을 전혀 이해하지 못 하고 계셨는데요.
이런 것이 지구상에서 가장 다문화·다민족 국가인 미국의 진짜 모습이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양함의 독특한 공존'이 현대 미국 문화 발전의 원동력이라는 사실도요.

여러분, 다채롭기에 더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