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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come to California

9/11 테러 추모지에서 미국 노부부의 눈물을 보다

by 이방인 씨 2013. 5. 20.

여러분~ 활기찬 월요일 아침 맞이하고 계신가요?
오늘은 어제 말씀드린대로 9/11 테러 희생자 추모지역 방문기입니다.


5월 12일 일요일 - 희망만은 영원한


올해 10주년을 맞은 9/11 월드 트레이드 센터 테러 사건, 모두 기억하고 계시겠죠?
힘 없이 무너져내렸던 월드 트레이드 센터도 이런 모습으로 부활했답니다.

 

아직 상단부 공사가 마무리된 것 같지는 않았지만 이 정도면 금방 끝나겠죠.

 

본래 WTC가 서 있던 곳에는 이제 추모 site가 조성되어 있는데 그 곳을 방문하기 전에 먼저 9/11 박물관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그 날 벌어진 사건의 순서대로 전시물이 자리잡고 있었는데 가장 먼제 제 눈에 들어온 건 WTC와 충돌한 비행기에 타고 있었던 Brian이라는 남성의 마지막 전화 내용입니다.
그의 아내 Jules에게 음성 메세지를 남긴 것이 그가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한 일이 되었네요.

 

 Jules, 나야.
음... 있지.. 나 지금 납치된 비행기 안에 타고 있어.
만약 일이 잘못 된다면......
상황이 별로 좋아보이지 않네.
내가 많이 사랑한다는 거 꼭 알아줘.
당신이 선량하게 살면서 행복한 시간들을 보내길 바래.
우리 부모님도 마찬가지고.
나중에 당신이 여기 오게 되면 (하늘나라) 그 때 만나.
정말 사랑해.
안녕, 여보.
당신에게 전화하게 되길 바래.

 

그나마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에게 마지막 메세지를 전할 수 있었던 Brian은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까요...
비행기 승객들은 벌어진 상황을 알고 있었지만 WTC 빌딩 안에서 평소와 다름 없는 일상을 보내고 있던 많은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도 모르고 순식간에 목숨을 잃었답니다.
사람들을 구하러 뛰어들었던 많은 소방관들과 경찰들도 같은 운명을 맞이했지요.

 

 사람들을 구조하기 위해 WTC안으로 들어갔던 소방관이 순직한 후
동료들이 그의 시신을 찾았을 때 그가 입고 있었던 소방복이 이런 형상을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보호복의 앞 뒤가 모두 찢어진 채였고 미국 소방관들이 쓰는 그 튼튼한 헬멧 역시 다 찌그러진 상태였대요.

 

 희생자들의 사진이 박물관 벽을 빼곡히 채우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진들이 있는지 다 찍을 수도 없었어요.
이 날 하루에 3천여명이 사망했다고 하니까요...

 

가만히 사진을 보고 있는데 어디선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옆을 돌아봤더니 백발의 미국인 노부부가 손을 잡고 울고 계시더라구요.
특히 할머님은 너무 슬프게 흐느끼고 계셨는데 그 소리를 듣고 젊은 사람들도 따라 눈물 지었죠.

 

눈물을 참지 못하는 방문객이 많아서인지 박물관 곳곳에는 티슈 상자가 여러개 구비되어 있었어요.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에는 이렇게 사람들이 보내왔다는 종이학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종이학 뿐만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이 보낸 응원의 메세지가 가득하더라구요.

 

박물관은 매우 작은 규모라서 얼마 지나지 않아 실제 사건이 일어났던 추모지역으로 향했습니다.
가는 길에 엄청나게 큰 목소리로 누군가가 Don't forget history. (역사를 잊지 마세요.) 라고 소리 치길래 그 쪽으로 가 보았더니 WTC 맞은 편 건물 벽에 이런 추모 작품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May We Never Forget 
우리가 영원히 잊지 않기를...

 

왠 할아버지 한 분이 벽판을 반질반질하게 닦으시면서 계속 소리를 치시는 거였어요.
본인은 테러 이후 수년간 하루도 빠짐 없이 이 판을 닦고 계신다네요.
역사를, 이 비극을 잊으면 안된다고 사람들에게 말하기 위해서요.

 

할아버님의 외침을 들으며 WTC가 서 있던 장소로 들어갔습니다.
들어가는 입구에서는 공항과 똑같은 수준의 Security Check을 거치는 것은 물론이고 무장한 경찰들도 몇몇 보입니다.

 

 

일단 그 근처에 다다르면 어디선가 쏴아- 하는 소리가 계속 들려오는데요.
엄청난 크기의 Pool이 2개나 있기 때문입니다.
원래 쌍둥이 빌딩이 있던 자리에 이제는 쌍둥이 Pool이 들어가 있더군요.
실제로는 굉장한 규모인데 사진에는 잘 찍히지 않네요.
Pool 주위의 사람들의 크기로 미루어 보면 얼마나 큰 지 알 수 있습니다.

 

 물이 두 번 낙하하는 구조였는데 깊은 땅 밑으로 흘러가는 물이 암담하게 느껴지기도 했어요.

 

이것이 건축 공사가 한창일 때 위에서 찍은 사진인데 이제 얼마나 큰 지 감이 오시나요?

 

제가 그 날 찍은 영상인데 잘 나오려나 모르겠습니다.

 

 Pool을 감싸고 있는 테두리에는 희생자들의 이름이 하나도 빠짐 없이 새겨져 있습니다.

 

(nbcnews.com)

어느 노신사가 아들의 이름이 새겨진 곳에 입 맞추는 모습입니다.

 

박물관과 추모지역을 보고 있노라면 어느샌가 마음이 저려오는 것을 느낄 수 있는데요.
제가 들고 갔던 가이드북은 9/11을 '뉴요커들의 트라우마' 라고 쓰고 있었지만 그 어떤 신념에서든 사람이 사람을 상대로 이런 짓을 할 수 있다는 건... 전 인류의 트라우마 아닐까요...
어딘지 꽉 막혀서 삼킬 수도, 뱉을 수도 없는 무언가가 가슴을 짓누르는 기분입니다.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물줄기를 보고 있었는데 어렴풋이 무언가 제 눈에 들어왔습니다.

 

오른쪽 귀퉁이에 제 눈을 사로잡은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시겠어요?

 

이제 아시겠나요?

무지개...!!

사진으로는 흐릿하지만 육안으로는 뚜렷하게 무지개가 보였답니다.

 

공기 중에 물이 흐를 때 무지개가 뜨는 것을 당연한 일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장소가 장소이니 만큼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집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특별할 것 없는 일이라 오히려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기도 하구요.
희망이 늘 우리 곁에 있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라 당연한 일인 듯 느껴져서요.
저 뿐만 아니라 그 곳을 찾은 사람들도 모두 같은 마음이었는지 잘 나오지도 않을 무지개 사진을 열심히 찍고 있었습니다. ^^

쌍둥이 Pool 말고도 사람들의 발걸음을 잡아두는 것이 하나 더 있었으니 이 한 그루의 나무입니다.

 

 Survivor Tree

'살아남은 나무' 라는 이름이 붙은 배나무입니다.
1970년대에 WTC 앞마당에 심었던 나무인데
9/11후 가지와 몸통은 다 날아가 버리고 8 피트 정도의 그루터기만 폐허 속에 남아 있었다고 합니다.
나무는 곧 뉴욕시 공원으로 옮겨져 극진한 보살핌 속에 30 피트의 높이로 다시 자라났고
2010년에는 몇 차례의 혹독한 스톰 속에서도 살아남았다고 해요.
2010년 12월 나무는 다시 WTC 앞마당으로 돌아왔고 9/11 상처 치유의 상징이 되었다네요.

 

나무 아래에 누군가 살며시 놓아둔 꽃다발도 보입니다.

 

짧은 여행 중에 들른 곳이라 금새 다시 발걸음을 재촉해야 했지만 방문하길 정말 잘한 것 같습니다.
제 인생에 대해서도 그렇고, 사람들과의 관계, 그리고 살면서 소중하게 여겨야 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 다시금 깊이 생각하게 해 주는 곳이었어요.

'인생은 고해'라 하면서도 사람은 저마다 희망으로 계속 살아가는 거겠죠.
인류도 마찬가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잊을만 하면 나타나 주는 무지개를 보며 계속 나아가겠죠??

여러분도 희망차게! 활기차게! 월요일을 시작하시길 빕니다.  파이팅

 

글을 쓰면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댓글이 달려서 적잖이 당황했습니다.
이 포스트는 제가 '미국 VS. 중동 국가' 를 염두에 두고 쓴 글이 아니라 뉴욕 여행기의 일부분입니다.
역사적 현장을 직접 가 보고 9/11이라는 비극 속에 스러진 사람들과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에 가슴 아팠을 뿐입니다.

그런데 어떤 분께서 '미국이 중동에서 저지른 짓을 생각하면 9/11으로 죽은 사람들을 동정하는 게 한심하다.' 고 글을 남겨주셨고 이에 동의하는 분들이 계신 것을 보고 솔직히 많이 놀랐습니다.
그 분들 말로는 미국이 중동에서 많은 사람들을 해쳤으니 9/11으로 미국인들이 죽은 것도 인과응보라서 슬플 것도 없다 하셨는데, 저는 이게 도대체 어떤 사상에서 나온 말인지 이해가 안 되네요.

미국이 중동에서 악행을 저지른 것은 그것대로, 9/11은 또 그것대로 슬프고 개탄스러운 일입니다.
미국이 나쁜 짓을 했다고 무고한 미국 시민들의 목숨으로 그 값을 치루게 하는 것이 정의구현입니까?

악행을 저질렀으면 비난을 받는 것이 당연한 일이니 어떻게 미국을 비난해도 지탄받아 마땅하죠.
다만 잘못한 일을 비난하셔야지 억울하게 희생된 사람들이나 그 유가족에게 '너희들도 이제 당할 때가 됐으니 죽을만 했다.' 하는 건 할 말 못 할 말 가릴 줄도 모르는 악담에 지나지 않습니다.

또한 제가 미국의 입장만 중요하게 여긴다고 말도 안되는 억측을 하시는 분이 계신데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이 글은 '미국과 국제 관계' 에 대한 글이 아닙니다.
예상치 못한 비극으로 가족과 친구를 잃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일 뿐입니다.

이라크 전쟁 통에 죽어간 무고한 이라크 시민들에게도 마찬가지 마음입니다.
국가끼리 싸울 때 결국 피 흘리는 것은 힘 없는 국민들 뿐인데 어느 희생이 억울하지 않고 어느 죽음이 슬프지 않겠습니까.
다만 이 글은 9/11 추모지역에 방문했던 이야기를 하고 있느니만큼 그 사건을 직접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에 집중해 썼을 뿐입니다.
물론 같은 곳을 방문하고 미국과 국제사회 문제에 대한 글도 쓸 수 있겠지만 이번 글의 본질은 어디까지나 '사람'에게 있다는 것을 말씀 드립니다.
제가 글에서 미국과 중동의 관계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고 화를 내신 분들이 계신데, 본인들의 원하는 내용을 쓰지 않았다고 글의 내용과 상관 없는 딴지를 거시니 황당할 따름이네요.

그 분들은 본인들의 사상에 심취해 어떤 글을 읽어도 그런 방향으로 해석하시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마는 이미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받은 사람들에게 악담하는 댓글을 보니 마음이 좋지 않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