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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come to California

한글 처음 본 미국인에게 쓰는 법을 가르쳤더니!

by 이방인 씨 2012. 8. 29.

어제 한국 뉴스를 볼 때만 해도 볼라벤 때문에 난리였는데, 아무쪼록 여러분들 모두 피해 없으시길 바라겠습니다. ^^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인 미국 아주머니는 제가 한 교양강의시간에 만난 분이랍니다.
어느날, 강의가 시작하기 전 시간이 너무 남아서 그 당시 한국에서 베스트 셀러라던 소설책을 꺼내서 읽고 있었습니다.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던 아주머니가 힐끔 보다가 난생 처음 본 독특한 활자들에 관심이 일었나봐요.
갑자기 옆 자리로 옮겨오더니, 그건 무슨 언어냐고 궁금해 하더군요.
이건 한국어라고 알려드렸더니 조금 자세히 봐도 되겠냐고 묻기에 책을 넘겨 드렸습니다.
아주머니가 뜻도 모르는 문자를 빤히 들여다보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규칙성이 정말 마음에 드네! (I like its regularity!)

호오~ 그 아주머니 제대로 보셨네요.  >.<
이 문자는 원래 과학적 규칙을 기본으로 창제된 문자라고 설명해드렸죠.
게다가 바로 그 규칙성 덕분에 읽고 쓰기가 아주 쉬워서 누구나 금방 배울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랬더니 아주머니 웃으시면서 말씀하시네요.

아닌 것 같은데? 꼭 기하학처럼 어려울 것 같아!

직선과 동그라미와 세모 네모꼴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한글이 기하학처럼 보인다는 말은 외국인들이 자주 하는 말이죠.

(이렇게 보니 정말 외국인들 눈에는 수학시간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죠? ^^)


저는 아주 금방 가르쳐드릴 수 있다고 말하고 종이를 꺼내들었습니다.
그 짧은 시간에 한국어를 가르칠 생각은 아니었고, 한글을 쓰는 규칙만 설명해드리려는 의도였죠.
자음, 모음을 따로 떼어 놓으니 본래 글자와 달라보였나봅니다.
책에 있는 글자와 다르다고 하기에 제 나름대로 그 분이 이해하실 수 있게 말씀드렸죠.

이 자음 모음들로 퍼즐을 한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각자 제 자리에 끼워넣으면 글자가 완성되는 거예요.

초성, 중성, 종성에 대한 설명을 시작으로 저의 속성 한글정복 강의가 이어졌습니다. ㅋㅋㅋ
아주머니가 가장 헷갈려 한 부분은 바로... 모음의 위치였답니다!
'ㅏ'  나  'ㅓ' 는 옆으로 붙이지만, 'ㅗ'  나  'ㅜ'  는 아래로 붙이잖아요.
그게 도저히 이해가 안 갔나봐요.
하긴, 알파벳을 기본으로 한 서양언어는 무조건 오른쪽 옆으로만 철자가 진행되잖아요.
그런데 한글은 옆으로도 붙이고, 아래로도 붙이고, 혹은 더 밑으로 받침도 붙이고 하니까 혼란스러웠나봐요.
그래서 또 한번 눈높이 교육을 실시했습니다. ㅋㅋㅋ

작대기가 가로로 붙은 ㅏㅑㅓㅕ 이런 것들은 다 옆으로 붙이고, 작대기가 세로로 붙은 ㅗ ㅛ ㅜ ㅠ 이런 건 밑으로 붙이면 돼요.

중성까지는 이렇게 저렇게 해결이 됐는데 종성은 난코스였습니다. ^^;;
'난'  이라는 글자를 놓고, 도대체 'ㄴ' 은 왜 위에도 쓸 수 있고, 밑에도 쓸 수 있냐는 거예요.
허걱! 네이티브 한국인인 저로서는 생각도 못해본 질문이었죠!
'아... 받침 체계를 어떻게 쉽고 간단하게 설명하지..?' 하는 사이 교수님 들어오시고 저는 구원받았습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주머니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시고, 그 후로는 한글 이야기를 할 기회도 없었죠.
그리고 저는 2사 만루에 삼진당한 4번타자처럼! 맹렬히 후회했죠.
빠릿빠릿 제대로 쉽게 가르쳐주었더라면 아주머니가 한글에 관심을 가졌을 수도 있었을텐데 말이죠.
미국와서 제가 영어를 배울 생각만 했지 미국인에게 한글을 가르치게 될 기회가 있을 줄은 몰라서 무방비 상태였던 것이 너무 아쉽더라구요.

혹시 여러분중에 국어교육과 출신이 있다면 제게 큰 가르침을 주십시오!
언젠가 다시 기회가 오게되면 잘 가르칠 수 있도록 말이죠. ^-^
여러분 모두 안전한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