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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come to California

하다 하다 이제는 산타의 인종을 두고 싸우는 미국

by 이방인 씨 2013. 12. 14.

미국사회가 인종 문제에 얼마나 예민한지 누누히 말씀드렸죠?
특히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는 두 집단은 역시 흑과 백이죠.
미국의 흑백 갈등의 역사를 세계사 시간에 글로 배운 비(非) 네이티브인 저 같은 사람들은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곁에서 지켜 보면 아주 징~하디 징한, 장기전이랄까요...

대표적인 양측의 주장은 이렇습니다.

흑 - 아직도 미국 사회 곳곳에 흑인 차별이 자연스레 존재하고 있다.

백 - 언제적 얘기냐? 흑인들의 피해의식이 지나치다. 이제 그만 좀 해라.


어제도 미국에서 이슈가 된 사건(?) 소동(?)이 하나 있었습니다.
FOX NEWS에서 백인 여성 진행자가 "산타는 백인이다."라는 발언을 해서 그야말로 NEWS가 되었는데요.
산타가 백인인 게 뭐가 이상해서 논란이 되었냐구요?
발단은 이렇습니다.

 

(en.wikipedia.org)



미국의 진보 성향의 온라인 매거진 Slate라는 곳에 Aisha Harris라는 흑인 여성이 "산타는 더 이상 백인이어서는 안 된다"는 제목의 글을 올렸습니다.
산타의 인종을 바꿔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언제까지고 산타에게 백인 할아버지의 이미지를 입히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내용이었죠.
흑인인 글쓴이는 어린 시절 TV나 영화에 나오는 산타를 보며 어째서 세상에서 말하는 산타는 자신의 집에 찾아오는 산타 (흑인)와 다른지 의아함을 느끼고 실망하기도 했다는군요.
여기까지는 좋은데... 흑,백,황 중에 산타를 고르기도 애매하니 차라리 펭귄을 산타로 삼자고 자못 진지하게 말하고 있어서 글을 지지할 마음이 없어집니다.
부활절 토끼처럼 펭귄 산타를 대표 이미지로 만들자는 제안을 하더군요...


아무리 그래도 펭귄 산타라니...

느낌표

순록
 대신 수달이 잠수함 운전이라도 해야 되나?
루돌프에서 보노보노로 교체다!


그런데 어쨌든 그 글을 읽고 Megyn Kelly라는 뉴스 진행자가 "산타는 산타이고, 그는 백인이다."라고 말하며 산타가 백인이라는 것을 두고 인종차별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는 게 우스운 일이라고 일축했습니다.
그녀는 거기서 더 나아가 "예수도 백인이다" 라고 덧붙이며 산타가 백인이라는 것을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역사적 인물'의 인종을 바꿀 필요는 없다고 말했죠.
 (현대의 과학적 추론으로는 예수는 백인이 아니었다고 하죠. 하지만 많은 백인들이 당연스레 예수가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장발의 백인 미남이라고 철썩같이 믿고 있더군요.)

이 발언은 즉각 미국에서 뜨거운 감자가 되었습니다.
Kelly의 발언을 지지하는 쪽과 비난하는 쪽으로 의견이 나뉜 거죠.

산타는 북유럽에서 전해진 존재이니 백인인 것이 당연하고 자연스럽다.
이것이 어찌 인종 불평등인가?!

VS.

산타가 백인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백인 할아버지의 이미지를 주입시키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저도 비(非) 백인이지만 어릴 때부터 봐 온 백인 할아버지 산타가 인종의 다름을 느끼게 하는 존재라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는데 그건 여러분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합니다.
우리에게 크리스마스와 산타클로스는 어차피 '이국의 문화'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었을까요?
아니면 한국에는 인종 구분이라는 개념이 일반적이지 않아서였을까요?

하지만 글쓴이처럼 어린 시절 자신에게 찾아오는 산타와 TV 속 산타가 달라서 실망하는 아이들이 미국에 많다면 더 좋은 방법을 모색할 필요가 있는 문제인 것 같습니다. (펭귄 말구요.)

인종문제는 언제나 미국에서 핫이슈기 때문에 24시간이 지나기도 전에 이 기사 밑에는 폭발적으로 댓글이 달렸는데 그 중 제 맘에 쏙 든 우문현답이 하나 있었습니다.

 

산타는 대개 아빠와 같은 인종이지.

이보다 더 명쾌할 수 있나요?
전설 속 산타클로스는 백인일지나 실제로 나타나는 산타는 거의 매년 아버지잖아요.

얼굴 없는 George, 좋은 코멘트였어요!

 

하다 하다 이제는 산타의 인종을 두고 입씨름을 하는 걸 보니 '당신들... 작작 좀 하라는 말을 모르는군요.' 싶기도 하지만 그만큼 미국내 흑백 갈등이 뿌리 깊다는 걸 다시 느꼈습니다.
저도 미국내 소수민족의 일원으로서 인종 논란에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흑백 문제에는 건방지게 끼어들지 않는 게 현명하겠다는 생각을 했답니다.

여러분 행복한 토요일 보내세요~


미국의 인종 문제에 관심이 있는 분들께 <The Color of Fear>라는 다큐멘터리를 권하고 싶습니다. 백인, 흑인, 히스패닉, 아시안 미국인들이 모여 인종 문제를 토론하며 벌어지는 실제상황을 찍은 다큐멘터리 영화인데 1994년 작이라 오래되긴 했지만 여전히 회자되는 작품입니다. 저도 대학시절에 봤는데 굉장히 충격적이었어요. 역시나 흑인과 백인의 갈등이 가장 날카롭더군요. 온갖 감정의 폭발이 생생히 담겨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