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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ything & Everything

[유럽여행] 나폴리 최고의 피자집에서 긴장해 실수연발!

by 이방인 씨 2013. 10. 4.

로마에서의 여정을 마치고 유로스타를 타고 2시간 만에 나폴리에 도착했습니다.
나폴리, 세계 3대 미항 중의 하나로 손꼽히는 아름다운 곳이죠.

...

 

안 그래도 폭염에 시달리는데 남쪽으로 내려왔으니 체감온도는 적어도 2도 이상 오른 것 같았습니다.
너무 더워서 모든 의욕을 상실할 정도였는데 그 날의 일기장에 하루 동안 이런 지출내역이 있습니다.

: 0.40유로
일일패스 : 2.32유로
슬러시: 1.20유로
얼음물: 1.20유로
슬러시: 1.60유로
슬러시: 1.60유로 (같은 가게에서 연속으로 두 번 먹은 것일까?)
피자: 9.10유로
역에서 : 0.95유로

제 일기 속의 나폴리는 물과 슬러시의 도시입니다.
보다 실감나는 동행을 위해 여러분도 겨울 점퍼나 코트를 껴 입고 수면양말을 신고 땀을 흘리며 읽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준비되셨으면 출발합니다~

나폴리에서의 일정은 누오보 성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성의 모습을 보자마자
'세련미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투박함이구나. 게다가 저 어울리지도 않는 개선문은 또 뭐람?'
하고 생각했는데 이윽고 가이드북의 소개 문구를 보고 빵 터졌습니다.

"누오보 성은 유럽에서 가장 남성다운 성으로..."

가이드북의 저자가 생각하는 '남성다움'은 과연 무엇일까?


성의 건축 양식과 어쩐지 동떨어진, 시대를 앞서 간 듯한 하얀 개선문이 붙어 있는 이유는 성이 지어지고도 몇 세대가 지난 후의 성주가 개선문을 달고 싶어했기 때문이라네요.
성을 가지고 취향대로 장난칠 수 있었다니 신분 한 번 높구나~

 

(ilportaledelsud.org)

전경을 보니 분명 견고해 보이기는 하네요.
잘 안 넘어오는 남자인가??

 

누오보 성의 내부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었는데 크게 볼 만한 것은 없다는 가이드북의 권고에 따라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야 하는 전시관에는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다만 성의 가장 아래층에서는 무료 전시를 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들어갔다가 호박을 넝쿨째 얻었지 뭡니까.

제가 좋아하는 제프 쿤스의 전시회더라구요!

 

 Jeff Koons는 이런 메탈 풍선 같은 느낌의 작품으로 유명한 아티스트인데
저는 이 사람의 경쾌한 센스가 무척 마음에 들어요.

 

나폴리에서 그의 전시회를 본 것은 뜻밖에 찾아온 대단한 행운이었답니다.

뭔가 좋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기대감!

과는 달리... 다음 목적지였던 델로보 성으로 걸어서 가던 길에 너무 더워 일사병에 걸릴 것만 같았던 저와 P 양은 나폴리의 어느 언덕 바닥에 철퍼덕~ 주저 앉고 말았어요.
늘 멍 때리지만 착하디 착한 P 양이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방인, 난 더 이상은 안되겠어. 너라도 끝까지 가! 난 가망이 없을 것 같아."

"무슨 소리야 P 양, 나도 가지 않겠어!"

"아니야, 내 걱정은 말고 혼자라도 꼭 델로보 성을 보고 와! 난 신경쓰지 말라니까!"


응? 누가 너를 신경쓴다던...?
귀찮아서 더는 못 걷겠다.


서로에게 싸늘한 눈빛만 안긴 대화를 마친 채, 저와 P 양은 델로보 성으로 가는 대신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나폴리의 이름 모를 언덕 꼭대기에 기어올라가서 한~참을 누워 있었습니다.
뜨거운 열기를 식힌 뒤 언덕에서 바라보니 오호라~ 얼결에 찾아온 이 곳이 명당이로다!
나폴리의 아름다운 풍광이 한 눈에 들어오는 기가 막힌 장소이지 뭡니까.

 

(mrbpielglobal.edublogs.org)

이건 제가 찍은 사진은 아니지만 제가 그 날 언덕에서 본 풍경과 아주 흡사합니다.
사진 오른쪽 가장 아래에 방금 저희가 구경하고 온 누오보 성의 모습이 보이죠?

 

서기 79년 8월 24일 폭발하여 고대 도시 폼페이를 집어삼켜버린 베수비오산이 멀리 보이는, 그림 같은 전경을 감상하다 저와 P 양은 동.시.에. 아련하게 말했습니다.

"야야~ 밥이나 먹으러 가자."

유유상종
초록은 동색


 

그리하여 델로보 성이고 뭐고 밥 먹으러 갔습니다.
나폴리를 여행 중이라면 이 곳을 빼놓을 수 없다고 하니까요.

 

(vindivine.com)

'마르게리따'라고 하는 피자를 최초로 만들어내서 유명한 피자집 BRANDI입니다.

 

자랑스럽게 벽에 걸린 마르게리따 피자 100주년 기념 액자를 보니
2013년인 올해로 124주년이네요.

 

겉모습도 소박하고 식당 내부도 그리 크지는 않지만 엄청난 명성에 걸맞게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즐겨 찾았다고 합니다.
벽에도 파바로티, 빌 클린턴 등의 유명인사들의 방문 기념 사진이 걸려 있었죠.
브랜디를 전설의 피자집으로 만들어 준 마르게리따 (Margherita)는 이런 피자를 말합니다.

 

(Wikimedia.org)

브랜디 피자집에서 최초로 개발되어 이탈리아 전역으로 퍼진 마르게리따는
현대 피자의 모태가 된 피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합니다.
이탈리아 정부에서는 이 마르게리따의 고유성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겨서
식당에서 '마르게리따'라는 이름의 피자를 팔려면 정부의 증명 허가 (certify)를 받아야 한다는군요.

 

토핑은 오로지 토마토 소스, 올리브 오일, 신선한 바질, 바다 소금, 마늘, 그리고 둥그런 덩어리째 넣는 모짜렐라 뿐입니다.
도우가 무~척 얇아서 약간 두께가 있는 부침개라고 해도 될 정도였어요.
베어물면 폭신폭신한 도우가 느껴지는 미국식 피자와는 다르게 마르게리따는 얇고 바삭거리는 느낌이예요.
신선한 재료의 맛을 살리는 피자답게 토핑을 즐기거나 MSG에 중독된 사람의 입에는 몹시 단순한 맛입니다.
또한 바질과 월계수 향도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달갑지 않을 수 있겠더라구요.

그 날 P 양과 저는 브랜디에 가서 피자를 사 먹는 대신 낯을 팔고 왔답니다. (← 사고 팔았으니 밑지는 장사는 아니었네요.)
일단 피자집에 들어갈 때부터 조금 긴장이 됐어요.
왜냐하면요...

이런 웨이터들이 문 앞에서부터 2층 테이블까지 에스코트 해 주었거든요.

 

(paris365days.com)

이 분과 똑같지는 않았지만요.

 

가르송 복장인데 하얀 셔츠에 하늘색 조끼와 하늘색 에이프런을 둘렀습니다.
그 때 서빙하고 있던 웨이터는 두 명 뿐이었는데 한 남자는 젊고 금발이었고 다른 한 남자는 짧은 흑발의 중년이었어요.
식당 앞에서부터 자리까지 안내해 주고 주문을 받고, 음식을 내준 다음에는 모든 테이블을 둘러 볼 수 있는 식당 한 켠에 둘이 나란히 서서 두 손을 에이프런 앞에 곱게 포갠 뒤 그윽한 눈으로 손님들을 스캔하며 대기하더군요.
그런데 바로 그 서비스 때문에 사단이 난 것이죠.
점심 시간을 지나서 방문한 탓인지 2층에는 현지인 손님 한 테이블과 저희 뿐이었는데 웨이터들은 한 눈에 봐도 외국인 여행객인 것이 뻔한 저희를 신경 써 주느라고 그랬는지 너.무. 뚫.어.져.라. 쳐다보더라구요.

P 양과 저는 각각 다른 종류의 피자를 시키고 콜라도 한 병 시켰는데 피자 한 조각 덜고 콜라 한 컵 따를 때도 웨이터들이 주시하고 있으니까 왠지 긴장되고 손까지 떨리는 거예요.
아니 뭐,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래요! 그 금발 젊은 웨이터 미남이었어요!



언뜻 보기에 한 26-7세 된 것 같은데 에이프런 끈을 단단히 묶은 허리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제가 금욕적으로 조인 허리에 약하다는 것, 여러분도 아시잖아요.


그들은 투철한 직업정신으로 무장한 채 저희에게 도움이 필요할까 봐 지켜보고 있었던 것 뿐이겠지만 그 시선을 받으며 난생 처음 보는 마르게리따를 먹어야 하는 저희는 죽을 맛이었습니다.
20대 초반 여대생들 둘이서 최대한 우아하게, 마치 태어나던 순간부터 마르게리따를 먹어본 사람처럼 굴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답니다.
그리고 매우 훌륭하게도 P 양은 먹던 피자를 한 번 뒤엎고 저는 그 목면 같은 새하얀 테이블보에 콜라를 왕~창 쏟았어요.
콜라컵이 쓰러지면서 내는 소리에 놀라 대각선 테이블에서 피자 먹던 현지인들도 힐끔 쳐다보고 웨이터들은 당연히 눈이 동그래졌죠.
다행히 컵이 깨지거나 바닥으로 흐르지는 않았기 때문에 웨이터가 달려오지는 않았는데 민망해서 얼굴에서 육수를 줄줄 뿜고 있었던 저를 보고 웃.었.습.니.다.
그 쪽에서는 '손님, 괜찮으니 식사 마저 하십시오.' 라는 의미였을 수 있겠으나 제 눈에는 이렇게 보였습니다.

훗~ 어이 아가씨, 피자 난생 처음 먹어 보나?

지독한 민망함에 P 양과 저는 시킨 피자의 반도 못 먹고 황급히 자리를 떴습니다.
새로 테이블보를 가는 수고를 해야 할 웨이터들에게 사과의 표현으로 약간의 팁을 남긴 채 말이죠.

 

그러길래 왜 그리 지그시 쳐다보는 거야.



너의 눈빛 때문에 난 가족력에도 없는 급성수전증을 앓았다구!!



코스모스 같은 마음을 가진 저와 (극악무도한 착각) P 양은 여전히 민망한 채로 서둘러 다음 목적지를 향해 버스를 타고 떠났습니다.
앞서 나폴리의 풍광을 설명하면서 베수비오산을 잠시 언급했는데요.
베수비오산은 고대 로마 귀족들의 휴양도시였던 폼페이를 한 순간에 멸망시켰습니다.
18시간 동안 무려 백억 톤에 달하는 화산재와 암석파편이 뿜어져나와 도시 전체를 삼키고 말았죠.
부지불식간에 닥친 화산폭발 탓에 당시의 건물들과 처참하게 죽음을 맞았던 사람들의 모습이 화산재 아래 고스란히 남아 있었습니다.

 

(Pompeii.virginia.edu)

발굴된 폼페이 유적지입니다.
서기 79년의 모습 그대로 보존 상태가 매우 양호한데
아이러닉하게도 순식간에 종말을 맞이한 덕분이죠.

 

(Wikipedia.org)

화산재와 암벽 파편이 덮쳐오던 순간의 고통을 여실히 보여주는 자세로
죽음을 맞이한 흔적들이 폼페이 곳곳에 있습니다.

 

이런 역사적인 폼페이 유적지에 저희가 갔느냐??!! 하면, 아닙니다.
저희의 일정은 나폴리에 오직 1일만 할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모든 것을 볼 수는 없었답니다.
폼페이 유적지에는 옮길 수 없는 건물과 집들만이 남아있고 발굴된 유물과 귀중한 그림 자료들은 나폴리 시내에 있는 고고학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고 하기에 저희는 폼페이 대신 박물관을 선택했습니다.
가이드북에는 분명 박물관 입장료가 6유로라고 했는데 막상 갔더니 마침 저희가 방문한 기간에 특별전시를 하고 있다고 무조건 9유로를 내야 한다는 겁니다.

 
특별 전시라니, 우리는 특별 대우 필요없어요.
우리'만인은 법과 입장료 앞에 평등하다'는 입장입니다요.


어쨌든 조금 툴툴거리며 9유로를 내고 들어갔다가 또 우연히 노다지 발견~!
특.별.전.시.라는 것이 말이죠, 정말로 특별하더구만요.

폼페이에서 발견된 포르노 그림 아...아니, 춘화 전시였어요!!!!!!!


앞서 설명했듯이 폼페이는 고대 로마 귀족들의 휴양지였는데 퇴폐적 향락의 도시로도 유명합니다.
유적지에는 창녀의 집도 남아 있을 뿐더러 현대인의 시각으로 보면 외설적인 벽화들이 많습니다.
역사적 기록을 보면 고대 로마인들의 성의식이 매우 개방적이었다고 하잖아요.

 


(Wikimedia.org)

 대략 이런 그림과

 

(telegraph.co.uk)

이런 그림들이 벽에 그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박물관 특별전시에서 본 그림들은 위의 벽화들과는 레.벨.이. 다.른. 그야말로 특별한 그림들이었죠.
추가 3유로가 두 여자의 정신세계에 미치는 영향은 실로 어마어마했던 것입니다.
그 그림들을 본 후 저희는 더 이상 그 전까지의 P 양과 방인 씨로 남을 수 없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타락했다. 
우리의 순결한 영혼을 배반하고 멋대로 이런 것들을 보아버린 두 눈!
이 음흉한 두 눈!

고맙다~
인간에게 눈이 두 개나 달려 있는 건 참 축복이야.
이 좋은 구경을 편안하게 쌍안(雙眼)으로 할 수 있잖아~



특별전시 뿐만 아니라 상설전시물들도 역사적 가치가 매우 높은 유물들입니다.
이 박물관에서 놓치면 안되는 세 가지가 있으니 여러분도 한 번 보세요.

 

'알렉산더와 다리우스의 전투'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과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3세의 전쟁을 묘사한 작품입니다.


 

(Pompeii.com)

'파르네세 황소'

이 작품은 그리스 신화 속 내용을 조각한 것인데요.
고대 도시 테베를 건설한 쌍둥이 형제 제토스와 암피온에게는 안티오페라는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재혼하여 생긴 계모 디르케가 친어머니를 괴롭히자
이에 분개한 쌍둥이가 디르케를 황소의 뿔에다가 묶어버리는 광경입니다.

뭔가... 흉폭하지만 효자들이네요.

 



(traveladvisor.com)

마지막은 '헤라클레스'입니다.

 
여러분~ 그 마음은 알지만


아유~ 나 이런 엄청난 사진 막 올려도 되는지 모르겠네....
자체심의를 거치며 스티커를 붙였더니 폭소만발이예요.

제우스의 아들이자 인간 세계 최고 영웅인 헤라클레스입니다.

육체미가 엄청나죠?

이 조각은 360도로 면밀히 감상해야 그 가치를 알 수 있습니다.
뒷모습은 이렇거든요.

 

(Wikipedia.org)

오늘 여러분께 차~암~ 좋은 거 보여드렸죠?
이렇게 착한 일을 하다니 미카엘님이 계시는 천국에 조금 더 가까워진 것 같습니다.

 

나폴리 고고학 박물관에서는 이 세 가지만 잘 보아도 입장료가 아깝지 않다고 하지만 안에 들어가 보면 구경할 게 훨씬 많으니까 나폴리를 방문하실 분들에게 강력추천합니다.

박물관을 마지막으로 저희는 시칠리아행 야간열차에 몸을 실었답니다.
그러니 다음 이야기는 마피아의 고향, 시칠리아에서 이어집니다!

나폴리 여행기 재밌게 보셨나요?
여러분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