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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ything & Everything

[유럽여행] 꽃 같은 너, 피렌체여~ 사랑을 말하리

by 이방인 씨 2013. 10. 8.

유럽여행 중 가장 행복했던 시간을 들라면 단연 이 곳에서 보낸 이틀이었을 것입니다.


꽃의 도시, 피렌체

(tripwow.tripadvisor.com)

 

꽃이라는 뜻의 라틴어 Fiorentia란 이름을 가지고 있었던 도시 피렌체를 헤르만 헤세는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북쪽에서

꿈에 본 것을 이야기하랴?
잔잔히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언덕가에
어둑한 수목의 숲과 노오란 바위와 하얀 별장,
골짜기에는 도시가 있다.
하얀 대리석 교회들이 있는 도시는 나를 향해 반짝거린다.
그 곳은 피렌체
그 곳 좁은 골목에 둘러싸인 한 고원에
내가 두고 온 행복이 아직도 나를 기다리고 있으리

 

10년 전에 제가 두고 온 행복도 아직 거기 있을 거예요.
잊을 수 없을 정도로 황홀했던 피렌체 이야기, 지금 시작합니다!

시칠리아에서의 犬고생은 야간열차에 두고 내린 뒤 맞이하는 피렌체의 하루는! 역시 더웠습니다.
하지만 이 곳에서만큼은 더위도 내리쬐는 태양도 저를 막을 수 없습니다.
'메디치가의 흥망성쇠 (The House of Medici: Its Rise and Fall)'라는 책을 읽은 후부터 저는 피렌체에 매료되어 이 도시를 방문할 날만을 손꼽아 기다려왔거든요.
(메디치가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기에 피렌체를 지배했던 가문입니다.)

피렌체의 첫 얼굴은 하얗고 푸른 아담한 교회였습니다.

 

산타마리아 노벨라 교회입니다.
카톨릭의 땅, 유럽을 여행하면서 어마어마한 대성당들을 많이 보았지만
여기 이 청아한 교회가 제 눈에는 가장 예쁘더라구요.

 

교회를 보고 났으니 이제... 또! 교회를 보러 가야죠!
유럽여행을 해 보신 분들을 아시겠지만 성당들이 왜 이리 많은 거예요...
이번에 들른 곳은 피렌체의 상징 두오모입니다.

 

(lifebeyondtourism.org)

두오모란 둥근 지붕을 가진 돔 형태의 대성당들을 일컫는 말이고
이 성당의 정식 명칭은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꽃의 성모 대성당)이랍니다.
피렌체가 꽃이라는 뜻이기에 붙여진 이름이죠.

 

 흰색, 녹색, 분홍색의 대리석으로 화려하게 지어진 성당의 정면입니다.

 

1296년에 착수하여 무려 170여 년만에 완공된 이 돔 지붕은 중세 공학의 혁명이라고 평가받았고
설계자인 브루넬레스키 역시 중세 공학의 아버지라고 불린다네요.

 

한 때 일본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 덕분에 이 두오모 꼭대기에 올라가 보고 싶다는 사람들이 많았었는데요.
성당 위에 올라가서 내려다보는 피렌체의 전경은 '헤어진 연인' 같은 건 다 잊게 할 만큼 아름답습니다.

 

피렌체의 집이나 건물들은 특징적인 붉은 지붕들을 가지고 있는데
토스카나 지방의 푸른 구릉들과 어우러져서 목가적 분위기를 물씬 풍깁니다.

 

제게는 '사랑'으로 기억되는 피렌체에서도 위기는 있었습니다.
아무리 숭고한 영혼의 사랑이라도 육체적 고통 앞에 무력하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이죠.
두오모 옆에 자리하고 있는 85미터에 달하는 조토(Giotto)의 종탑을 오르던 그 때, 제 자신은 정신이 아니라 육체의 지배를 받는 의지박약아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습니다.
두오모에 올라갔다와서 바로 옆에 있는 종탑에 또 올랐으니 체력이 평소보다 더 즈.질.이었던 거죠.

우사인 볼트의 100미터 경기를 열광하며 본 사람이라면 85미터 쯤은 만만하게 여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사진을 한 번 보세요.
종탑의 입구에 서 있는 사람들의 크기와 종탑의 높이를 비교해 보면...

 

이래도 85미터가 우스워?!


설계자 이름도 하필이면 조..토...가 뭐야? 조토가...
너무 된발음을 내지 않도록 주의해야 마땅하겠다.

 

오르고 내리는 길이 한 개 뿐이라 올라가다가도 내려오는 사람이 있으면 피해줘야 하는데 통로가 어둡고 좁은데다가 무엇보다 나선형이라 뱅뱅 돌며 올라가는 게 쉽지 않더라구요.
중간 지점을 지났을 무렵부터 저는 급격히 이성을 잃어가기 시작했어요.

내가 미쳤지, 이 좋은 건 밖에서만 봤어야 하는 건데...
나처럼 순수한 (뭐래?) 아이에게는 사람이든 건물이든 육체적 접근은 좋지 아니하다.

 

후회해도 이미 늦었죠.
지상으로부터 60미터를 넘긴 지점부터는 화가 잦아들고 회개의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예수님, 부처님, 알라, 제우스, 오딘, 비쉬누... 제가 아는 모든 신의 이름을 되뇌이며 "제게 포기하지 않는 허벅지를 주소서~" 하며 겸허한 마음으로 올라갔답니다.

 

비좁고 어두운 통로를 따라 올라가면서 종탑의 창을 통해 바라본 바같 풍경은 왜 이리 눈부십니까.

 

종탑 전에 올라갔었던 두오모의 꼭대기 황금공과 십자가가 보이네요.

 

회개를 하다 하다 지쳐서 "난 태어난 것 말고는 죄가 없소!!" 하고 헛소리 작렬하고 있을 때 마침내 정상에 도달했습니다.
또 한 번 발 아래로 피렌체의 붉은 지붕들을 굽어볼 수 있었죠..
물론 안전을 위해 설치한 철망 사이로 얼굴을 들이밀고 말입니다.

 

 (tripadvisor.com)

 

종탑에서 내려왔다면 이제 바로 코 앞에 있는 산 조반니 세례당에 황금을 구경하러 갈 시간입니다.
산 조반니는 두오모가 완공되기 전까지 피렌체의 대성당으로 사용되었지만 피렌체의 인구가 증가하면서 산 조반니가 너무 협소하는 판단하에 대성당이 지어진 것이랍니다.

 

'신곡'의 저자 단테는 이 곳에서 세례를 받았는데 이 성당을 몹시 사랑하여
"나의 아름다운 조반니"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이 세례당에서 꼭 봐야할 것은 창세기의 이야기를 10개의 패널 부조로 만들어 장식한 동쪽 문입니다.
피렌체 출신의 조각가 기베르티가 이 문을 완성시켰는데 10개의 부조를 끝마치는데 무려 28년을 바쳤습니다.

 

 사진을 보면 아시겠지만 그 앞은 항상 관광객들로 붐벼서 마음 놓고 감상하기는 불가능하죠.
하지만 관광객이 없었던 시절 혼자서 이 문을 실컷 볼 수 있었던 미켈란젤로가

"가히 천국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문이다"

라고 감탄한 이야기가 전해져서 그 때부터 이 문은 '천국의 문'이라고 불린답니다.

 

10개의 부조 중 가장 예술적 가치가 높은 것이 이 조각입니다.
'이삭을 바치는 아브라함'의 이야기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 늦게 얻은 귀한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명하자
신심이 깊었던 아브라함은 그 말씀에 순종합니다.
마침내 바위 위에서 아브라함이 이삭의 목숨을 앗으려는 순간!
천사가 나타나 저지하는 순간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아..하..하.하핫!
하나님은 재밌지도 않은 장난꾸러기~ -.-^

 

아브라함의 믿음을 확인하고 싶으셨다는 하나님의 '인간불신 이야기'를 뒤로 하고 베키오 궁으로 발길을 옮깁니다.
이탈리아라는 하나의 공동체 대신에 베니스, 나폴리, 피렌체, 등등 강성한 도시 국가 체제였던 시대, 베키오 궁은 피렌체 통치의 중심지였습니다.
지금으로 따지면 청와대쯤 되는 거죠.

 

(visititaly.it)

궁이라기 보다는 어쩐지 요새 같은 느낌이 나요.
13세기에 완공된 이 궁이 여전히 피렌체의 시청으로 쓰이고 있다니 굉장하죠?

 

베키오 궁 앞에는 널찍한 시뇨리아 광장이 있는데 여기에 조각미남의 상징, '다비드'의 짝퉁이 서 있습니다.
본래 미켈란젤로가 조각을 완성했을 당시에는 실제로 이 광장에 세워져 있었다고 하는데 실외에 그대로 두었다가 비바람 따위에 조각이 훼손되는 것을 염려한 피렌체 정부가 자문회까지 열어 이 대작을 실내로 옮기는 여부를 결정했다고 합니다.
레오나드로 다 빈치도 포함되어 있었다고 하는 자문회는 결국 작품 보호를 위해 실내로 옮기자는 결정을 내렸는데 정작 미켈란젤로는 몹시 분노했다고 전해집니다.
조각에 있어서만큼은 자신이 천재인 것을 자각하고, 자신의 작품에 자부심이 대단했다는 미켈란젤로는 다비드가 피렌체의 가장 중심부인 시뇨리아 광장에, 모두가 볼 수 있는 자리에 당당히 서 있길 원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미켈란젤로의 바람대로 진품이 계속 거기 서 있었다면 지금 우리는 비바람에 닳고 닳은 산전수전 다 겪은 다비드를 봐야 했겠죠.

저는 이 곳에 서 있는 모조품 대신 진품 다비드를 감상했기 때문에 다비드의 모습은 다음 이야기에서 공개하도록 하고 대신 이 사진을 올립니다.

 

'메두사의 목을 베는 페르세우스'입니다.
물론, 이것도 모조품이지만요.

 

여기까지의 일정을 보면 저답지 않게 평화로운 여행을 즐긴 것 같죠?
피렌체에서만큼은 모든 것이 완벽하길 바랬던 저의 소망을 신께서 들어주신 것 같...을 리가 없죠.
다음편에서는 유스호스텔에서 한 방을 썼던 열혈 아일랜드 아주머니 덕.분.에. 미국인 배낭여행객들에게 맥주캔으로 얻어맞을 뻔한 참으로 재미진 -.-^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여러분,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