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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come to California

미국은 새로운 100달러 지폐에 왜 하필 깨진 종을 그려넣었지?

by 이방인 씨 2013. 10. 21.

어제 새로 발행된 100달러 지폐를 소개해 드렸죠?
우리가 위조를 막기 위한 Security Features에 집중하는 사이 어느 예~리한 분께서 이런 질문을 해 주셨습니다.

"저 종은 왜 깨진 겁니까?"

깨진 종이라면... 아하~ 이것 말씀이시군요!

 

잉크병 안에는 종(Bell)이 하나 들어있는데
몸통 부분이 쩌~억~ 하고 갈라져 있죠?

설마하니 한 국가의 화폐, 그것도 신권에 디자인 실수나 인쇄 오류가 있었을리는 없고...
대체 왜 깨진 모양일까요

 

100달러 짜리에 들어간 저 종의 이름은 Liberty Bell (자유의 종)입니다.
Liberty란 단어만 들어도 벌써 '이건 미국 역사의 중요한 상징이구나!' 하고 감이 오시죠?
그렇습니다.
자유의 종은 미국독립역사의 유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 실물도 물론 보존되어 있습니다.

 

(commons.wikipedia.org)

지폐 속 그림과 똑같이 갈라져 있죠?

 

때는 1751년, America 대륙이 아직 영국의 식민지였던 시절, 펜실베니아주의회 (영국 정부의 통솔을 받는 지방자치의회 쯤이라고 보면 되겠죠.)에서는 필라델피아에 새로 지어진 주청사에 걸기 위해 영국의 종 주조회사에 150파운드를 지급하고 이 종을 주문했습니다.
종의 윗부분에는 성경 레위기에서 발췌한 문구가 새겨져 있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Proclaim liberty throughout all the land unto all the inhabitants thereof.
이 땅 위의 모든 이들에게 자유를 선포하라.

안내방송을 할 수 있는 마이크와 스피커도 없고 연락을 할 휴대전화도 없던 시대, 이 종은 회의를 위해 의원들을 소환하거나 중요한 공표가 있을 때 시민들을 소집하기 위한 용도로 쓰였습니다.
이렇게 평범하게, 주조된 목적에 충실하던 이 종이 유명해진 계기는 무엇일까요?

종이 주조된지 거의 100년이나 지난 1847년에 발표된 George Lippard라는 작가의 단편 소설 <Fourth of July, 1776>는 미국의 독립선언 순간에 얽힌 이야기를 이렇게 묘사하고 있는데 대략 이런 내용입니다.

1776년 7월 4일, 미국의 독립영웅들이 독립선언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 제 2차 대륙회의 (Second Continental Congress)계속하고 있을 무렵, 독립을 공표하는 종을 울리기 위해 기다리던 늙은 종치기가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연락에 침울하게 앉아 있는데 드디어 한 소년이 의회에서 독립을 결정했으니 종을 치라는 지시사항을 가지고 도착했고 늙은 종치기는 벌떡 일어나 종을 쳤다.


그 드라마틱한 장면이 바로 여기 있습니다.

(en.wikipedia.org)

소년이 헐레벌떡 달려와 소리를 치는 것 같죠?
이 그림의 종치기는 이미 줄을 잡고 대기중이었나 봅니다.
얼마나 기뻤는지 종치기의 머리 꼬랑지가 중력을 무시하고 하늘로 솟은 것 좀 보세요.

 

작가들이란 원래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들이니 역사적인 사실 한 줄만 가지고도 소설을 써내지 않습니까?
실제로 1776년 7월 4일에는 독립선언문의 낭독이 이루어지지도 않았고 종도 울리지 않았습니다.
7월 4일에 의회가 독립을 결정한 것은 맞지만 독립선언문 낭독은 그로부터 4일 지난 7월 8일에 있었고 종도 물론 7월 8일에 울렸습니다.
그 날 울린 종이 한 두개가 아니기 때문에 역사학자들은 Liberty Bell이 독립선언을 기해 울린 많은 종들 중 하나였다고 판단하지만 독립을 결정한 곳이 바로 이 종이 걸려있는 필라델피아주 청사였기 때문에  (종 사진을 보면 배경에 붉은 벽돌 건물이 있죠? 그게 바로 당시 펜실베이나 State House인데 지금은 Independence Hall이라고 불립니다.) 장소적 의미도 있는 거니까요.
또한 종에 새겨진 Liberty 구절 때문인지 노예제도폐지론자들이 그들의 상징으로 삼기도 해서 이래저래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종이랍니다.

그런데 왜 종이 갈라져있는지 아직 얘기 안 해 주나구요?
네네, 지금 막 하려던 참입니다.

독립을 선언하던 순간, 가슴 벅찬 소식을 만방에 알리기 위하여 힘차게 종을 울린 그 때 마치 신의 계시처럼 종이 쩌~억~하고 갈라졌다!!!....고 하면 정말 영화같은 일이겠죠?
실상을 알려드리면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실 텐데 이걸 어쩌나...


1752년에 영국에서 도착하자마자 시험삼아 한 대 쳤더니 아..아니, 한 번 울렸더니 
그 때 벌써 금이 갔다지 뭐예요?


 

1751년 당시에 150파운드 씩이나 주고 주문한 건데 보통 열 받은 게 아니겠지만 이 무겁고 커다란 걸 다시 배에 실어 영국으로 보내려니 그게 더 번거로운 일이라 필라델피아 현지의 기술자 두 명이 두 번이나 다시 주조했지만 그들도 종 전문가는 아니어서 결과는 보시다시피 시간이 흐르자... 또 깨졌죠!
하지만 당시에는 꽤 잘 만들었다고 생각했는지 자랑스럽게 종에 자신들의 이름을 새겼는데 정면에 써 있는 PASS AND STOW (John Pass, John Stow)가 그것입니다.

나중에 이 종이 유명세를 타면서 사방에서 초청전시를 하고 싶어하자 필라델피아시는 수많은 박람회와 애국 집회에 종을 보내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했는데 그렇게 여행을 다니는 와중에 갈라짐은 더 심해지고 심지어 작은 조각들도 떨어지기 시작해서 그 부스러기를 주워다 수집하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필라델피아시는 1915년 이후로 이 종의 순회전시를 허가하지 않고 Independence Hall에서 Independence Mall로, 또 거기서 Liberty Bell Center로 모셔 고이 보관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생각하면 이 종은 운이 좋아서 지금 이렇게 고귀한 유물이 되었다고나 할까요?
만약 필라델피아주 청사가 아니라 다른 곳에 걸렸더라면 계속 깨지는 약한 종을 누가 이렇게 중요하게 생각했겠습니까.
하지만 지금은 미국인들 마음 속의 전설이 되어 우표로도 발행되었어요.

 

재밌는 우연이지만
제가 이벤트로 편지와 카드 보낼 때 이 우표도 붙였으니까 받으신 분들이 계실 테죠.

 

그런데 Liberty Bell 우표 이미지를 찾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이런 게 다 있네요!

 

(depositphotos.com)

한국에서도 1976년에 미국독립 200주년 기념 우표를 발행했더라구요!
우표 속 종은 Liberty Bell이 분명하죠?
자료 검색하다가 예상치도 못하게 한글을 발견하니 신기하고 반가웠어요.

 

자, 오늘은 이렇게 매의 눈을 가진 방문객의 질문으로 글을 작성해 봤습니다.
궁금증이 풀리셨길 바랍니다.
활기찬 월요일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