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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직장생활

돈도 싫고 출세도 싫다는 미국 직장동료들

by 이방인 씨 2019. 11. 13.

제 일상생활 이야기들을 많이 읽어보신 독자 여러분들은 "되는대로 얻어진 운명, 그냥 산다"는 저의 천성을 이미 알고 계실 듯합니다. 딱히 야심 있는 성향도 아닐뿐더러 인생의 원대한 목표도 없는지라 하루하루 별 일 없이 흘러가는 인생에 지루함과 안도감을 동시에 느끼며 살고 있는 이방인이랍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런 성격 탓에 한국에서 살았다면 무한경쟁 속에서 어마무시한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 같아요. 

한국인 기준으로 본다면 안일한 부류에 속할 것 같은 이방인 씨지만, 어쩐지 저의 미국 동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입니다. 적어도 몇몇 동료들은 의외로 저를 출세지향적인 사람이라 여긴답니다. 그 이야기를 전해들은 저는 박장대소할 수밖에 없었지만요.

대부분의 직장이 그러하듯이 제가 재직하고 있는 회사에도 직급이란 게 있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한국식 직급으로 표현하자면, [사무보조 → 사원 → 대리 → 과장 → 차장 → 부장 → 임원급 → 부사장 → 사장] 정도의 체계라고 볼 수 있겠는데요. 저는 현재 이 중에서 과장직에 위치해 있습니다. 제 나이를 감안하면 절.대.로. 출세지향적 인간의 승진 속도라고 볼 수 없지요. 

여기서 한 가지 말씀드릴 것은, 미국 회사의 승진 방식은 한국과는 조금 다릅니다. 한국에서는 근속연수에 따라 승진심사대상자가 결정된다고 들었는데요. 미국 회사에서의 승진은 근속연수에 크게 영향을 받지는 않습니다. 물론 회사마다 직급마다 다르긴 합니다만, 저희 회사에서는 승진은 모두에게 기회가 주어지는 경쟁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예를 들어 제가 이 회사 내에서 차장이나 부장으로 승진을 하려면, 일단 차장/부장의 빈자리가 날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그리고 빈자리가 나면 회사 인사과에서 공개적으로 채용공고를 냅니다. 채용공고에는 물론 자격요건이 모두 명시되어 있지요. 만약 제가 회사에서 요구하는 자격요건을 갖추었다면 원서를 접수한 후, 서류심사에 합격하면 인터뷰 기회를 얻게 됩니다. 그 후 1라운드 또는 2라운드의 인터뷰를 거쳐 최종 합격 여부가 결정되죠. 이 모든 과정은 누구에게나 열려있으므로, 차장 직책이라 할 지라도 과장뿐만 아니라 대리, 사원, 혹은 외부 지원자들도 기회를 잡을 수 있답니다. 한마디로, 사원에서 대리를 건너뛰고, 과장이나 차장으로 바로 승진을 할 수도 있는 시스템이라는 말이죠. 물론 채용공고에 있는 자격요건을 갖춘 지원자에 한해서지만요. 대부분 그 자격요건이라는 것은 소지하고 있는 학위나 특별한 자격증 혹은 경력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체계하에서는 누구나 승진기회를 잡을 수 있지만, 오래 근무했다고 저절로 승진심사에 포함되지는 않습니다. 과장으로 10년을 근무했든 15년을 근무했든, 업무 능력이 특출 나든 아니든,  차장 자리가 났을 때 지원하지 않는 이상 영원히 과장에 머무르는 구조인 것이죠. 때문에 저희 회사에서 승진은 근속연수가 아닌 개인의 선택에 달린 일입니다. 몇몇 동료들이 저를 출세지향적이라 생각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 있습니다. 저는 과장급 채용 공고가 났을 때, 그 자리에 지원하는 선.택.을 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그 동료들은 승진 시도를 하지 않는 선택을 했습니다. 그들이 승진하려 하지 않은 이유는 다양합니다.

1. 난 목표를 이뤘어!
저와 일주일에 한두 번은 꼭 점심 식사를 같이 하는 C양. 미국인이지만 한국 드라마에 푹 빠져 저보다 더 많은 한국 연예정보를 알고 있어 저를 진땀 나게 하는 동료입니다. C양은 저보다 2살 연상이고 이 회사 근속연수도 5년이나 길지만 현재 대리로 근무 중입니다. 딱 거기까지가 그녀가 원하는 상한선이기 때문이죠. 그녀는 제게 입버릇처럼 말하기를,

"난 입사할 때부터 대리 이상은 절대 하지 않겠다고 맹세했어. 골치만 아픈 매니저는 해서 뭐하니. 난 대리로 은퇴할 거야. 이미 원하는 직급까지 왔으니 난  내  career에 만족하고 더 올라갈 생각 없어."

2. 가족과의 생활이 더 중요해!
아장아장 걸어다니는 아이들이 있는 N과 S. N은 저보다 4살 어린 사원이고,  S는 저와 동갑인 대리입니다. 둘 다 이제 갓 걷기 시작한 아들을 두고 있죠. 그녀들은 아이들이 적어도 중학생이 되기 전까지는 승진할 생각이 없다고 합니다. 칼출근 + 칼퇴근이 보장되는 직급에 머물고 싶다는 뜻이죠. 실제로 저희 회사에서는 과장 이하는 칼출근 + 칼퇴근이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5시가 되면 매니저들이 저마다 자기 부하직원들 자리를 일일이 돌면서 제 때 퇴근하는 것을 확인해야 합니다. 하지만 매니저는 필요하면 초과근무를 해야 하기 때문에 저녁 여가시간을 중요시하는 사람이나 가족과의 시간이 중요한 사람들은 승진에 큰 관심이 없답니다.

3. 난 부서이동은 싫어!
위에 썼듯이, 직장내에서 승진은 빈자리가 났을 때만 이루어집니다. 연차를 채운다고 직급이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위의 누군가가 떠나거나 은퇴했을 때만 기회가 오는 것이죠. 그러다 보니 한 팀에 머물며 진급할 수 있는 기회는 자주 오지 않습니다. 빠른 승진을 위해서는 빈자리가 난 부서로 이동을 해야 하죠. 때문에 저는 이 회사 내에서 부서 이동을  두 번 했고, 현재 일하고 있는 곳이 세 번째 부서랍니다. 부서가 달라지면, 동료들도 바뀌고 하는 일도 달라지니 번거로운 것이 사실이죠. 하지만 한 부서에 머물러 있다가는 기존의 상사들이 이직하거나 은퇴할 때까지 기다려야 승진기회가 오기 때문에 번거로움을 감수하고 부서이동을 할 수밖에 없었답니다.

전 부서에서 저와 가장 친하게 지내던  C 여사는 이 회사 근속연수가 25년이나 된 베테랑이었는데 8년 전에 대리가 되신 후 그 부서에서 너무 행복하시다고 합니다. 앞으로 절대 이동을 하지 않고 5년간 더 대리로 일한 후 은퇴하시겠다고 하네요. 승진도 좋지만 현재 직업만족도가 높아 굳이 떠나고 싶은 마음이 없다고 합니다.

이렇게 저마다의 이유들로 승진하려는 의사가 전혀 없는 몇몇 동료들의 눈에 비친 이방인 과장은 아마도 차장, 부장 뭐 쭉쭉 올라가고 싶은 사람처럼 보였나 봅니다. 그런데 스~아~실, 저도 속마음은 저들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승진해서 직원관리할 자신도 없고 의욕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미국에 정말로! 진짜로!! Really!!! 제멋대로인 사람들 많아요. 그 동안 제가 보고 듣고 겪은 일들이 하도 많아서 매니저가 얼마나 스트레스받는 직급인지 알기에 하고 싶지 않았어요.  제 할 일에만 집중하고 칼퇴근하는 최소한의 회사생활이 저한테 딱 맞거든요. 그러나 mortgage라는 춥.고. 어.두.운. 어른의 사정으로 인해 저는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했답니다. 흑흑흑. 

동료들은 돈도 싫고, 출세도 싫다지만, 저는 어른인 것이 제일 싫어요!

걱정없던 어린 시절로

 

 

 

 

 

댓글8

  • 2019.11.14 08:56

    비밀댓글입니다
    답글

  • 이방인 씨 2019.11.14 12:42 신고

    "너무 태연한 간만의 포스팅"이란 대목에서 빵 터져서 한참 웃었어요. 정말 너무 들어맞는 표현인걸요. 사실 저도 돌아왔다는 소식을 먼저 알릴까 생각도 했는데, 그러기가 민망한 것이... 이제 저를 아는 분들이 안 계세요. ^^;; 3년간이나 블로그를 방치했던 탓에 독자들은 다 질려서 떠나버리고, 이젠 아마 가끔 구글 검색으로 들어오시는 분들만 계시는 듯 합니다. 그래서 돌아왔다고 소식을 알려도 반가워할 분들이 안 계시네요. 어제 처음 개설한 블로그인냥 다시 글 쓰려고 합니다. 영원히 떠나기엔 이곳에 남아있는 제 삶의 기록이 소중해서 이젠 틈틈히 다시 글 써보려구요. 어쨌든 반가운 친구를 다시 만나게 되어 행복한 오늘이네요! ^-^
    답글

  • 부러워요.
    전 학창시절 반에서 20등 했을 때, 나름 만족했어요.
    그런데 친구나 가족이나 공부 좀 하라는 잔소리를 배겨날 수 없어 5등까지 해봤네요.
    그런데 그 5 등해도 잘했단 소리 못 들었어요.
    여기는 사람이 그냥 만족하며 살려고 해도 주변에서 가만 두지를 않네요.
    취업까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취업하면 결혼해라 -> 애 낳아라-> 왜 애 하나냐 둘은 낳아야지. 등등
    심지어 저는 제가 만족할 만한 직업에도 주변에선 딴 데로 이직하지 그러냐고.
    여기에선 제가 제 스스로에 만족할 수 없을 것 같아 한국을 너무너무 뜨고 싶네요. 부럽습니다.
    답글

    • 이방인 씨 2019.12.03 01:35 신고

      그게 참... 한국인들의 장점이자 단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성취욕이 강해서 뭐든 야심차게 하는 건 좋은데, 끝없이 계속 달리기만 하는 건 너무 힘들잖아요. 저는 미국에 살면서 너무 안일해졌다고 느낄 때가 있는데, 그렇다고 다시 한국식으로 살자니 그건 못 할 것 같아요. 의지박약이거든요. ^^;;

  • 단발머리♥ 2019.12.10 13:33

    모기지에서 극공감 ㅋㅋㅋㅋㅋㅋ저도 올 해 은행집이 절반인 집을 분양받았어요 ㅋㅋㅋㅋ솔직히 집 대출 문제만 아니면 퇴사하고 싶은데 대출 때문에 흑흑흑흑 그맘알죠 ㅠㅠㅠ저도 경쟁이ㅜ너무 싫어요 그래서 늘 치이죠 ㅠㅠ그치만 대한민국에 살아갈려면 자의든 타의든 경쟁에 떠밀려서 시험의 연속인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것 같아요.
    답글

    • 이방인 씨 2019.12.11 03:14 신고

      저 완.전. 대공감이요. 사표쓰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을 때마다 모기지 남은 금액을 보면, 한숨 한 번 쉬고 직장이 있음에 울며 겨자먹기로 감사하게 됩니다. 아휴~ 정말 로또 맞는 것만이 희망인가요...

      저는 이제 한국에서 살기에는 여~엉~ 틀린 것 같아요. 더 이상 그 치열한 삶을 견딜 자신이 없어요. 한국에 사는 제 사촌들 보면 정말 그 열정, 성취욕에 감탄하게 되는데 저는 그렇게 못할 것 같아요. 그냥 여기 쭈그리고 있으려고요. ^^;;

  • 들꽃처럼 2020.03.08 03:39

    방인님 팬클럽 회장? 여기 있습니다!
    이 새벽에
    낮밤이 바뀐 코로나 방학에
    방인님의 글들을 확인하고 영혼이 반쯤 나가
    정신없이 글을 읽고 있답니다.

    제가 방인님 엄청 그리워했다고 얘기 했나요?
    빈집에 와서 간간히 둘러보곤 했는데
    비키, 트루디 방학이라 못들어왔더니
    세상에! 세상에!
    좋아서 기절!
    답글

    • 이방인 씨 2020.03.10 08:53 신고

      저도 들꽃처럼님을 많이 그리워했답니다. 이름이 예쁜 두 따님들도 많이 컸겠다 생각하곤 했구요. 들꽃처럼님이 혹시나 하고 제 블로그에 들러주신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