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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직장생활

사장님에게도 주차자리 양보 없는 미국 회사 직원들

by 이방인 씨 2019. 11. 16.

세계 어디든 사람과 자동차가 많은 곳이라면 필연적으로 주차난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요. 제가 살고 있는 미국 소도시도 예외는 아닙니다. 다운타운으로 출퇴근하던 시절에는, 회사 주차장은 이미 포화상태고 주변 자리 찾기도 거의 불가능해서 버스를 타고 다녀야 했기 때문에 8시 출근을 위해 아침 6시에 집에서 출발해야 했었답니다. 집에서 회사는 차로 고작 25분 거리인데 말이죠!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는 것은 다운타운 출근 첫날 인사과에 들러 필요한 서류에 서명을 마친 후 회사 주차장에 자리를 얻을 수 있는지 물었을 때 되돌아온 답변입니다.

"가만있어 보자, 오늘이 2014년 9월이니까 대기자 명단에 이름 올리면 한 2020년쯤엔 자리 날 거예요."

이 말을 듣고 기가 막혀 대기자 명단에 이름이 오르든 말든 신경도 안 쓰고 2년을 셔틀버스에 의지하여 출퇴근했네요. 그런데 가만 생각하니 내년이 바로 2020년이군요. 하지만 반 년전 사무실을 옮긴 덕분에 주차난에서 해방되었지요. 

지금 일하고 있는 건물은 복잡한 시내에서 15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어서 주차공간도 넉넉할 뿐만 아니라, 무료이기까지 해서 더 바랄 것이 없... 없다고 했지만 사람 마음은 화장실 들 때 날 때 다르다지요? 요즘은 조금이나마 회사 입구와 가까운 곳에 주차하고 싶어 발버둥을 치는 동료들과 경쟁하는 중이랍니다. 주차장이 꽤 넓게 펼쳐져 있어서 먼 곳에 주차하게 되면 보통 걸음으로 한 5분은 걸어야 하는데 걷. 는. 다. 행위는 미국인들에게는 거의 재앙급 신체활동이죠. 미국인들이 얼마나 걷는 것을 싫어하는지 궁금하시면 이 글을 한 번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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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들이 입구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주차하는 걸 극. 혐. 하는 습성을 익히 알고 있는 저도 혀를 내두를만한 일이 얼마 전에 있었답니다.

제가 몸 담고 있는 회사의 사장님은 다운타운에 위치한 본사 건물 맨 위층에서 근무하고 계십니다. 각지에 흩어져있는 지사 직원들과 소통하기 위해 1년에 한 번씩 "직원과의 만남" 행사에 참석하시는데, 바로 몇 달 전 제가 일하고 있는 지사의 순서가 돌아왔답니다. 몇 달 전이라 하면, 작렬하는 태양이 당신의 머리카락을 한 올 한 올 태워버리는 캘리포니아의 여름이었지요. 걔 중 더운 날은 무려 섭씨 40도 (105 ºF)에 육박하기도 하는 이곳의 한여름! 여름이 되면 가까운 곳에 주차하려는 직원들의 처절한 경쟁이 더욱 치열해집니다. 대부분 주차장 바닥은 아스팔트로 되어있는데, 40도씩 올라갈 정도로 태양이 뜨거운 날은 아스팔트를 30초만 걸어도 숨이 턱턱 막히거든요. 어째서 이렇게 더운 날 행사를 잡으셨는지는 몰라도, 어쨌든 그 날은 사장님이 오시기로 한 날이었습니다. 

행사는 1시에 예정되어 있었기에 저와 동료들은 여느 때처럼 12시 경에 점심을 먹으러 나갔었답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주차장 저~~ 어~~ 기~~ 먼 곳에서 낯익은 그러나 동시에 낯선 실루엣의 한 남자가 한 손에 바인더를 들고 걸어오는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저와 동료들 모두 그 더운 날 묘~하게 서늘한 기분을 느끼며 그 남자를 주시하다가 문득 깨달았지요.

"크~어~헉, 저...저기 사장님 아냐???!!!"

그렇습니다. 그 지옥의 아스팔트 길을 헉헉거리며 걸어오던 사람은 바로 직원들과의 만남에 참석하시러 오신 사장님이셨던 겁니다.

30초만 걸어도 얼굴이 익어버리는 그 길을... 5분가량 걸어오신 사장님. 입구에 다다르셨을 때 그분의 얼굴은 마치...

김치 찐만두같았어요!!

사장님이 건물 안으로 들어오신 후에야 사태를 파악한 저희 지사 본부장님은 '아차! 미처 주차자리 생각을 못했구나' 하는 표정을 지으셨지만, 쿨하신 혹은 쿨한 척해야 하는 사장님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미소로 인사를 하신 후 행사장으로 들어가셨답니다. 양복을 입으신 채로 땀을... 땀을... 한 바가지 흘리시면서요.

무난히 행사를 마친 후 사장님이 본사로 돌아가시자, 저희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웃음을 터트리며 이에 관해 이야기 꽃을 피웠는데요. 사장님과 인사를 마치고 돌아오신 본부장님, 저희 수다를 들으시더니 미국식 sarcasm을 섞어 빵 터트리시네요.

"사장이라고 주차자리 양보할 것 같아? 여긴 OOOO (사무실 이름)이라고~
우리 (주차) 구역에 들어온 이상, 이건 전쟁이야."

하기야 저희 사무실에는 약 80명 정도의 직원이 근무하는데 누구 하나도 본부장님께 주차자리 양보하는 사람이 없답니다. 때문에 본부장님 역시 이 전쟁의 참전자로서, '양보는 없다!'는 룰을 평소 체감하고 계셨겠지요. ^^;; 그 날 사장님께서 왕복 10분을 뜨거운 아스팔트 위를 걸으셨지만 그에 관한 언급은 전혀 없으셨고, 한 소리 들은 사람도 없다는 후문입니다.

미국 회사는 이렇게 위아래가 없어서(?) 좋달까요? 물론 상사에 대한 기본적 예의라는 것은 존재합니다만, 뭐든 강요하는 분위기는 아니라서 의무감으로 의전을 챙겨야 하는 일은 없습니다. 하여 이번 일에도 직원들은 하하호호 웃었지만, 아마 본부장님은 속으로 조금 난감하셨을지도요. ^^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