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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come to California

정들었던 미국 공중전화의 종말을 보며...

by 이방인 씨 2013. 6. 21.

14년전 여름, 제가 미국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미국내 핸드폰 보급율이 그다지 높지 않았어요.
그마저도 폴더형도 아니라 지금 보면 '거대한' 크기의 일자형 핸드폰이 많았죠.

 


(sneakertalk.yuku.com)

핸드폰이 아니라 가정용 무선 전화기라고 착각할 법한 디자인이 그나마 괜찮았고,

 

심지어 그때까지도 이런 걸 들고 다니는 사람들도 있어서
벽돌 들고 집 짓냐  하하 는 농담을 하기도 했었답니다.

 

하지만 웃을 일이 아니었던 게... 저는 아예 핸드폰이 없었거든요.
집이 아니라 빌딩 공사를 해도 좋으니 벽돌 하나쯤 가방에 넣고 다녔으면 좋았겠지만 그다지 필요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제가 핸드폰을 가지게 된 건 그 후로도 몇년 지나서였답니다.
그 전까지는 밖에 나가서 전화할 일이 있을 때마다 공중전화를 이용했는데요.
Public phone 혹은 Pay phone이라고 부르는 미국의 공중전화는 이렇게 생겼습니다.

 


(theverge.com)

아마도 지역마다 다르겠지만 저희 동네에 있는 건 딱 이런 모양입니다.
부스도 없고 아주 단촐하게 전화기만 벽에 고정된 형태죠.

 

빨갛고 귀여운 부스는 없어도 저는 미국의 공중전화를 고맙게 잘 썼었는데요.
한국의 공중전화와 이런 차이가 있었답니다.


첫번째 - 거는 것뿐만 아니라 받을 수도 있어요

어릴 때 미국 영화에서 주인공이 거리를 걷다가 갑자기 공중전화에서 울리는 벨소리를 듣고 전화를 받는 장면 보고 의아해하신 적 없나요?
저는 그랬답니다.

??아니, 공중전화는 걸기만 하는 건데 어떻게 벨이 울려?!


영화라서 가능한 일이겠거니 했었는데 왠걸요.....
저도 공중전화 여러번 받아봤습니다!

하루는 학교 수업 끝나고 벤치에서 샌드위치 우적우적 씹고 있는데 어디선가 때르릉~~ 하더라구요.
처음엔 누군가의 핸드폰이 울리는 줄 알았는데 계속 소리가 안 멈추길래 보니까 벤치에서 조금 떨어진 곳의 공중전화가 마구 울리고 있었습니다.

생각중이게 바로 영화에서 많이 보던 그 장면인가 보다! 이걸 받으면 누군가가 다급한 목소리로 "빨리 그곳에서 벗어나!"라고 말하고 어디선가 폭발이 일어날 거야!


공중전화가 울리는 상황을 처음 경험하는 저는 쭈뼛거리며 주위를 둘러보다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수화기를 들어봤습니다.

방인씨: 여보세요?

상대방: 여보세요? 거기 어디예요?

방인씨: 네??

상대방: 거기가 어디냐구요.

방인씨: 아... 여기 OO 학교 벤치 옆인데요.

상대방: 아 그래요? 왜 거기지? 어쨌든 고마워요.

방인씨: 아 예...

이것이 바로 저의 숨결 떨리는 공중전화 받기 첫 경험이었답니다. 앗힝~  샤방3


영화에서나 보던 이런 일이 가능한 이유는 미국의 공중전화는 모두 수신번호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공중전화기 앞면을 보면 그 전화의 전화번호가 적혀 있죠.
핸드폰이 없던 시절, 밖에서 연락을 받을 일이 있을 때는 자신이 받을 수 있는 위치의 공중전화 번호를 상대방에게 알려주고 약속된 시간에 전화를 받았던 겁니다.
제가 막 이민왔을 때에도 핸드폰이 없는 사람이 더 많았기 때문에 공중전화가 제법 많이 울렸었답니다.
저도 운전면허도 차도 없던 시절에는 부모님이 픽업을 해 주셨는데 가끔 학교 앞 공중전화로 전화를 하시면 제가 앞에 서서 기다리다가 받았던 적이 몇 번 있었어요.

 

두번째 - 돈이 떨어져도 끊기지는 않더라구요

공중전화도 당연히 로컬과 장거리 요금이 다른데요.
언젠가 한 번은 제가 L.A에 사는 친구와 장거리 전화를 공중전화로 한 적이 있습니다.
몇 분 안된 것 같은데 돈이 다 떨어지고 나더니 갑자기 전화기에서 자동음성 안내가 나옵니다.

 

콜렉트 콜로 전환하시겠습니까?


??? 응?? 빨간 버튼 누르지도 않았는데 왠 콜렉트 콜?

 

여러분 혹시 기억나세요?
제가 한국에 살 때는 공중전화로 콜렉트 콜을 사용하려면 '긴급통화'라는 빨간 버튼을 누르는 방식이었어요.

 

(gasengi.com)

오랜만에 보니까 아련 돋는군요.  요염


미국 전화는 돈이 다 떨어지면 콜렉트 콜로 전환하겠냐는 안내가 몇 번이나 나오더라구요.
이 역시 처음 맞이하는 상황이라 쭈뼛거리다가 상대편 친구가 그러라고 해서 무사히 통화를 마쳤답니다.

 

세번째 - 카드형은 없어요

위의 사진에 나온 한국 공중전화는 카드형이네요.
제가 초등학교 때 나온 전화기 같은데 이 때 아이들마다 지갑에 공중전화카드 하나씩은 다 가지고 다녔죠?
카드 앞면의 디자인이 다양하고 예뻐서 수집하는 사람들이 있었을 정도였는데요.

 

 

(kt.com)
핑클 요정들의 전화카드도 있었네요.   ㅎㅎㅎ

 

아쉽게도 미국에는 카드형 공중전화가 없더라구요.
동전이라는 게 없는 날도 있고 들고 다니기 번거롭기도 해서 카드형 전화가 참 편리한데 미국에서는 도통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혹시 다른 지역에 사시는 분들 중에 카드형 전화기 보신 분 있으면 제보 주세요~


이렇게 세 가지가 제가 알아낸 미국 공중전화와 한국 공중전화의 차이점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잘 보이지도 않는 공중전화 이야기를 왜 갑자기 꺼낸 거냐면요...
오늘 아침 이런 뉴스를 봤기 때문입니다.

 


(Photo By Dave Bledsoe/FreeVerse Photography)

뉴욕 맨하탄에서 찍힌 사진이라는데요.
공중전화들이 모두 철거되고 전화기는 분리된 채로 어딘가에 쌓여있는 모습입니다.

 

요즘은 핸드폰 덕분에 집 전화도 없는 사람이 많을 정도니 저도 마지막으로 공중전화 써 본 게 언제인지 가물가물합니다만 막상 이렇게 폐기처분이 된 것을 보니 퍽 서운하군요.
어릴 때 한국에서 하늘색 공중전화 부스 앞에서 줄 서서 기다리던 기억도 나고 앞 사람이 남겨두고 간 몇 십원 보고 좋아했던 기억도 나고 또 미국에 와서 난생 처음 공중전화 받아봤던 기억도 나고 그렇네요.
철거된 전화들을 보니 왠지 나는 보낼 생각을 안 했는데 시절이 제 발로 떠나가는 것 같은 기분이랄까요...

하지만 정말 다행인 것은 뉴욕과는 달리 저희 동네 공중전화들은 아직 무사하다는 겁니다!!
최근에도 제대로 잘 있는 것을 확인했어요.
대도시와 다르게 거리 공간이 넓어서 그런지 굳이 철거할 필요를 못 느껴서 그런가 봐요.
쓰지는 않아도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는 걸 보면 왠지 기분이 좋아집니다.

여러분이 사시는 곳에도 아직 공중전화가 있는지 궁금하네요.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