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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come to California

미국 15세 소녀가 깜찍한 방법으로 부모님께 커밍아웃한 사연

by 이방인 씨 2013. 2. 18.

얼마 전에 홍석천씨가 출연한 힐링 캠프 보신 분들 계신가요?
저도 평소에 그 프로그램 시청자가 아니지만 굉장히 진솔한 대화였다는 기사를 읽고 찾아서 보았습니다.
정말 웃음과 눈물이 함께 빵빵 터지는 이야기더라구요.

동성애자 청소년들의 상담을 많이 하고 있다는 홍석천씨의 말을 전해 들으니 어린 학생들이 성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부모님께 커밍아웃하는 문제로 자살충동까지 느낄만큼 고통을 겪고 있다고 하네요.
누구나 본인에게 닥치기 전까지는 실감을 못한다고는 하지만 그들이 얼마나 괴로울지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죠?

오늘은 미국의 한 소녀가 어떻게 기발하고도 깜찍한 방법으로 부모님께 커밍아웃을 했는지 들려드릴게요.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이 비교적 관대하다는 미국에서도 동성애자로 살아가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입니다.
학교 폭력 및 증오 범죄의 표적이 되기도 하고, 아직도 여전한 사회적 차별의 대상이 되기도 하죠.
특히 부모님께 커밍아웃을 하는 것은 여기서도 가장 고민스러운 일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15살 소녀 로렐은 본인이 이름 지은 "게이크" 를 굽기로 했답니다.

 

케이크가 아니라 Gayke (게이크)요!

"전 동성애자예요." 라고 쓴 게이크와 함께 편지가 놓여 있네요.

(참고로 Gay란 말은 남성 동성애자와 여성 동성애자를 모두 지칭할 수 있습니다.)

 

편지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엄마, 아빠 굿모닝~

저는 동성애자예요.
아주 오랫동안 이 말을 하고 싶었는데 이렇게 말하는 게 가장 쉬울 것 같았어요. (piece of cake)
엄마 아빠가 변함없이 저를 사랑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직접 구운 케잌을 선물해 주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죠!
제 친구들은 모두 이 사실을 알고도 여전히 저를 사랑해요.
그러니 엄마 아빠가 인정해 주시면 화룡점정이 (icing on the cake) 될 거예요.
엄마 아빠가 울지 않으시길 바래요.
나중에 이 날을 회상하면서 "그 날은 정말 최악이었지." (takes the cake) 하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왜냐하면 이제부터 더 나아질 테니까요!!

사랑을 담아, 로렐

(말장난을 많이 쳐서 죄송해요.)

영문 편지를 읽어보면 이 소녀가 얼마나 유쾌하고 재치 넘치는 아이인지 알 수 있습니다.
cake를 gayke 라고 부른 것부터 기발하지 않나요?
본인이 덧붙인대로 cake 를 이용한 언어유희부터 동음이의어까지 엄청 많이 썼더라구요. ^^

아침에 일어나서 게이크를 본 로렐의 부모님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로렐은 나중에 엄마 아빠의 반응까지 전해주었는데요.

아빠는 게이크를 보자마자 제 방으로 오셔서 저를 꼭 안아주시고는 웃으셨어요. 저를 사랑한다고 말씀하시고는 케잌과 편지, 그리고 모든 것이 완벽했다고 (perfect) 하셨어요.

엄마는 이걸 보고 행복해서 우셨어요. 그리고 우리는 꼭 안고 같이 울었죠. 그 후 모두 함께 게이크를 먹고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이렇게 격려해주는 부모님과 응원해주는 여러분들이 있는 저는 참 행운아인 것 같아요!
모두 정말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Have a gay day~)

제 생각에도 로렐은 정말 행운아인 것 같아요.
미국에도 자녀의 성정체성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부모님들이 꽤 많으시거든요.
물론 자녀가 성소수자라고 사랑하지 않는 부모님은 없겠지만, 그 사실을 숨기거나 평범하게 살라며 아이를 다그치는 부모님들도 있다고 해요.

제가 고등학교 때 동성애자 아들을 둔 어머님이 학교로 강연을 오신 적이 있었는데 그 분도 힘든 시간을 겪다가 마침내 아들을 인정하고 세상에 공개한 분이셨어요.
처음 아들이 커밍아웃을 했을 때, 아들이 앞으로 살아가게 될 차가운 세상이 걱정돼 꽁꽁 숨기셨다고 해요.
그런데 어느 날 아침, 학교 갈 시간이 되었는데도 방에서 꼼짝을 않는 아들을 깨우러 들어갔다가 침대에서 온 몸을 웅크린 채로 절박하게 울고 있는 아이를 보셨답니다.
깜짝 놀라 왜 그러냐 물었더니 아들이 이렇게 말했대요.

 

어제 밤부터 죽으려고 했는데.... 무서워서 그럴 수가 없었어요.
엄마, 난 죽기 싫어요. (Mom, I don't wanna die.)

 

그런 아들의 모습을 본 후, 이 어머니가 인생에서 가장 큰 용기를 내셨다고 합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모두 아들이 성소수자임을 밝히고 성소수자 자녀들을 둔 부모님 모임에 가입도 하신 거죠.
그래서 중고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특별 강연도 많이 하러 다니시구요.

비교적 관대하다는 미국에서도 성소수자 본인이나 가족들의 고통이 이러할진데, 한국은 더 말할 것도 없겠죠.
홍석천씨의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조금 열렸다는 이경규씨나 자신도 외면하고 싶었던 내면의 편견을 깨달았다는 김제동씨의 말은 참 많은 것을 느끼게 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잔인한 전염병인 월요병이 다시 찾아왔네요.
모두 월요일을 무사히 넘기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