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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come to California

미국에 명문대학이 많은 이유: 하버드 대학의 비결

by 이방인 씨 2013. 2. 17.

드디어 주말이네요!
저는 집에서 밀린 이불 빨래를 하려고 합니다. (기분은 상쾌하겠지만, 영혼은 구슬퍼지네요.)
여러분도 저처럼 특별한 계획이 있으신가요? ㅠ_ㅠ

제 신세한탄은 각설하고, 오늘은 제가 이틀전에 받은 편지에 관한 이야기랍니다.
지난번에 소개해드린 저희 동네의 무미건조한 우체통을 열었더니 꽤 눈에 익은 편지가 와 있더라구요.
제가 졸업한 대학교 마크가 찍힌 봉투를 보고, '아, 그거구나...' 싶었습니다.
뜯어보니 예상을 빗나가지 않은 내용이었습니다.

 

학교에 기부를 부탁하는 내용의 편지입니다.

 

편지를 보니까 작년에 있었던 재미진 일화도 생각 나네요.
어느 날 저녁 어머니께서 전화왔다며 방에 있던 저를 부르시더라구요.
누군데 셀폰이 아닌 집으로 전화를 했을까 하며 받아 보니 처음 듣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더라구요.

 

안녕하세요? 저는 OO대학 OO과 OO이라고 합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어떻게 지내시나요?

 

제가 졸업한 대학에서는 원래 1년에 한번씩은 이렇게 전화를 걸어, 졸업생들에게 설문조사를 하곤 합니다.
(학교 차원인지 학부차원인지는 확실히 모르겠지만요.)
지금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는지, 학교에서 배운 전공이 어떻게 도움이 되었는지, 지금 다니고 있는 학생들을 위한 건의사항이 있는지 등등 졸업후 학생들의 진로에 관한 설문이죠.
그래서 이번에도 그건가 싶어 대답을 하려고 하고 있는데 갑자기 의외의 질문이 날아들었습니다.

 

학교 다닐 때, 컴퓨터 랩이라던지 자료실이라던지 학업 편의시설을 이용하던 기억이 나십니까?

뭥미 응??? 전혀 예상 못한 질문인 걸...?

 

그래서 저는 이번에는 또 그런 시설 상황에 대한 설문인가 싶어 그냥 솔직히 대답했습니다.

 

아니요. 이제는 다 잊어버리고 기억이 안 나는데요.

 

그랬더니 수화기 너머로도 그 사람의 당황함이 느껴지더라구요.
음..저..아.. 하면서 버벅거리다가 안되겠다 싶었는지 돌직구를 날리네요.

 

모교의 학생들을 위해 기부금을 좀 보내주실 수 있을까요?!

 

아하~! 기부금 이야기를 꺼내기 위해 저한테 학교 다닐 때 사용하던 각종 학업을 위한 시설들을 기억하냐고 물은 거였어요!
당신이 학교 다닐 때 이용하던 그 시설들이 다 동문 선배들의 기부금으로 나온 것이니, '그것을 누린 당신도 이제 기부를 할 때가 되었다'는 스크립트였나 본데....

거기다 대고 "전혀 기억 안 나는데요." 했으니 당황할 만도 하죠.   ㅋㅋㅋ

 

어쨌든 본의 아니게 후배를 당황시킨 게 미안해서 쥐꼬리의 꼬리만한 소액 기부금을 보냈습니다. ^^;;
(능력 좋아 척척 낼 수 있었으면 좋겠지만요. ㅠ_ㅠ)
그랬더니 몇 개월 후 다시 날아든 게 바로 저 편지입니다.
그 때 보내준 기부금에 감사하고, 이번에 또 내달라는 것이었죠.

편지를 받고서 든 생각은 '아... 장기간의 불경기 때문에 정부의 지원예산 삭감 여파가 크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한 2년 전까지만 해도 기부금 요청은 전화나 편지로 일일히 하지 않고 매 학기마다 졸업생들에게 보내주는 학교 잡지에 첨부되어 있는 회신봉투로 했었거든요.
그런데 작년부터는 전화로 직접 하는 것을 보니 학교에 그만큼 돈이 필요한가 봅니다.

미국 대학들이 학교에 도움이 필요할 때 가장 먼저 찾는 사람들이 Alumni라고 하는 동문들입니다.
좋은 대학일수록 졸업생들의 기부나 각종 공헌 활동들이 활발하죠.
작년 언젠가 듀크대학의 교무처장이 신문에 특별기고한 기사를 봤더니 하버드 대학의 세계 1등의 비결은 바로 동문들이 주축이 되는 학교 운영 모델 덕분이라고 하더라구요.
그는 기사에서 미국 대학들의 경쟁력이 높은 이유를, 과거에는 미국의 경제적 번영과 그에 따른 넉넉한 연구비가 한 몫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제 미국 대학의 저력은 대학 운영방식에서 나온다고 분석했습니다.

미국식 대학 운영의 모델이 되고 있는 하버드 대학은 1636년 매사추세츠 식민지 주의회가 공공 대학으로 설립했습니다.
그리고 미국이 독립한 후에는 매사추세츠 주의회를 장악한 졸업생들 덕분에 주정부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아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1840년대 이후 유럽에서 넘어온 다양한 출신의 이민자들이 주의회석을 차지하면서 하버드는 심한 간섭과 견제를 받았다고 합니다.
이런 고난을 겪으면서 학교 측은 정치로부터 독립적인, 오로지 학업에만 충실할 수 있는 학교가 되길 원했고 그러기 위해 동문들의 손으로 학교를 운영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그리고 1865년 4월 29일에 드디어 이런 건의안이 매사추세츠 주의회에서 가결되면서 그 때부터 하버드대 운영위원회는 동문들이 맡게 되었습니다.
이를 보고 자극을 받은 예일대와 윌리엄&메리 등을 비롯한 대학들이 모두 비슷한 조치를 단행했습니다.

무려 40년간이나 하버드대 총장자리에 앉았던 Charles Elliot은 동문들의 손으로만 운영되는 이러한 방식을 "진정한 미국식" 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하버드 및 동부의 유서깊은 대학들로부터 시작된 이러한 운영방식은 현재는 좋은 대학 운영의 표준모델이 되었습니다.
매년 전미 대학 순위를 발표하는 US뉴스 & 월드 리포트지의 작년 랭킹을 살펴보면 20위안에 오른 대학 중 19개 학교가 동문 운영위원회 방식 (이사회 멤버의 과반 이상이 동문) 을 충실히 따르고 있습니다.
하버드, 예일, 컬럼비아의 3개 대학은 운영위원회 멤버 전원이 동문으로만 채워지며, 프린스턴과 스탠포드는 90%를 동문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또한 전미 대학순위 100위권안에 든 대학들의 평균을 보면 운영회 멤버의 63%이상이 동문입니다.

통계에 따르면 운영위원회 멤버 가운데 동문이 많을수록 대학순위 랭킹과 신입생 지원율이 높을 뿐더러 기부금 금액이 많다고 합니다.
학교에 거액 기부금을 내거나 운영에 심혈을 기울이는 동문들이 많기 때문이죠.
생각해보면 그럴 수 밖에 없겠죠.
대학의 수준이나 평판에 가장 영향을 받고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그 학교 졸업생들인 동문들일테니까요.
동문 출신 운영위원회 멤버들은 서로의 네트워크를 통해 학교 발전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빨리 얻고 적극적으로 대응하여 모교의 수준과 명성을 높이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습니다.

듀크대학 교무처장은 그의 기고를 이런 문장으로 끝맺었습니다.

 

이처럼 비영리기구인 대학에서 동문을 활용함으로써 (대학간) 경쟁에서 이득을 거두는 것이 미국식 대학 운영 방식의 이점이다. 미국 대학들과 겨루고 싶은 나라들은 이를 잘 참고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학교 다닐 때는 몰랐지만 제가 졸업하여 동문이 되어 보니 그 동안 학교를 위해 꾸준히 노력해 온 선배들의 고마움을 알게 되었네요. ^^
부끄럽게도 저는 그냥 날로 먹는(?) 무성의한 선배지만요. ^^;;

저는 이제 이불 빨러 먼 길 떠나야겠어요~
여러분 즐거운 일요일 보내세요!

댓글들을 보니 여러분은 동문들의 기부에 집중해서 읽으신 듯 하네요. 물론 동문들의 기부율이 높기는 하지만 이 운영 방식의 핵심은 학교의 운영위원회가 동문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랍니다. 학교를 꾸려가는 사람들이 모교의 발전을 먼저 생각하는 동문들이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한국 대학의 문제로 지적하신 기부금 횡령같은 비리가 드문 것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