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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come to California

미국 이민 생활, 가장 힘든 점 한 가지

by 이방인 씨 2019. 12. 5.

이민 생활의 우여곡절이야 밤새 이야기해도 모자랄 정도지만, 외국에서 사나 고국에서 사나 삶의 고충은 다 똑같을 테니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습니다. 온 가족이 이민 오던 날, 비행기 안에서 막막함과 두려움에 눈물 지으시던 어머니의 옆모습을 본 기억이 아직 생생한데 저는 벌써 미국에서 산 세월이 한국에서 나고 자란 시간을 추월해 버린 한국계 미국인이 되었네요. 

말이 안 통해 일상생활에도 고전했던, 정서가 달라 마음 통하는 친구 사귀기도 힘들었던, 고향과 친구들이 그리워 향수병으로 고생하던, 도대체 내가 한국인인지 미국인인지 정의 내릴 수 없어 남모르게 방황하던 시기도 어느덧 다~ 지나가버렸습니다. 그런데 이제 생각해보니 제가 미국에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바로... 바로...!

다소 공격적인 성향을 장점으로 여기는 미국 문화였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살 때만 해도 '좋은 게 좋은 거다', '지는 게 곧 이기는 거다', '강하면 부러진다' 등등 양보하고 배려하는 유연한 태도에 대한 교육을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반복해서 받았습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네요. 이민온 사람들의 한국 시계는 한국을 떠난 그 날로 멈춰버린다고 하죠? 아무래도 멀리 떨어져 있다 보니 한국의 현실 정서가 어떻게 변해가는지 알기 힘들답니다.) 


특히 저희 아버지는 남한테 No소리 못하는 전형적인 "사람 좋은, 그러나 혼자 속으로 앓는" 분이셨는지라 저희 남매에게도 늘 "네가 참아라. 사람들이 다 그런 거니까 그냥 네가 참아라" 라며 타이르는 말씀이 입버릇이셨습니다. 그렇게 자라다 미국에 왔는데, 여기서는 그런 사람을 "Pushover" (만만한 사람)라 부르며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한국식으로 표현하자면, 

 

"가만히 있으면 정말 가마니로 본다
랄까요?


타인과 잘 어우러지며, 지나치게 나서거나 튀지 않는 성격을 선호하는 한국인들과 달리 미국인들은  자칫 공격적으로까지 느껴지는 강한 성격을 장점으로 칩니다. 미국인들이 자기 자신을 혹은 타인을 묘사할 때 aggressive (공격적인), assertive (자기주장이 강한), dominant (지배적인) 등등의 단어로 표현할 때가 있는데 이런 성향들은 긍정적으로 평가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특히 직장에서 윗자리에 오른 사람들을 살펴보면 aggressive한 성격이 두드러지는데, 일반적으로 미국인들이 생각하는 리더십이란 꽤나 일차원적이라, 밀어붙이는 불도저형 상사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제가 다니고 있는 직장에도 흡사 투견처럼 무슨 말만 하면 물어뜯는 상사분들이 계시는데, 아래 직원들은 그런 공격적 성향을 못 견뎌하면서도 '하긴 저런 성격이니 그 자리에 올랐지' 하며 어쩐지 당연하게 여기네요. 반대로 부드러운 성격의 상사들은 평소 인기는 많지만 간혹 험담 자리에서 "저 사람은 리더십이 약해" 따위의 말들이 나오곤 하지요.


Diplomacy를 중요시하는 저로서는 미국인들의 이런 성향이 썩 마음에 드는 건 아니랍니다. 그간 접한 미국인들 중에 이런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들을 참아내는 상대하는 것에는 익숙하지만, 정말 힘든 건 제 자신의 성격을 바꾸는 것이지요.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이미 어릴 때 형성된 성격을 바꾸는 게 쉽지 않습니다. 좋은 게 좋은 거라며 얼굴 붉히는 일 없이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사무실의 투견 No.1께서 제게 이러시더라고요.

 

방인 씨, 그렇게 넘어가면 안 돼!
그랬다간 사람들이 방인 씨를 존중하지 않게 된단 말이야!


제가 동료들을 존중하고 배려하면 그들 또한 저를 똑같이 대하리라 믿었는데, 이건 어디까지나 저의 머릿속 이상이었던가 봅니다. 투견님의 말씀으로는, 존중이라는 것도 공짜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군요. 


그렇구나...
이 놈의 공격적인 나라에서는
"존중"이라는 것도 쟁취해야 하는 것이었구나...
이제 알겠다...


그걸 알고 났더니 어쩐지 이 사태가


왜 일어났는지 알 것 같았다.

 

 

인간 사이에, 동료 사이에, 친구 사이에, 이웃 사이에, 굳이 쓸데없는 기싸움 같은 것 없이도 서로 배려하며 조금씩 양보도 하고 살면 좋을 텐데 말입니다.

 

이상, 캘리포니아에서 가만히 있는 가마니가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