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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come to California

미국 이민 생활, 가장 힘든 점 한 가지

이민 생활의 우여곡절이야 밤새 이야기해도 모자랄 정도지만, 외국에서 사나 고국에서 사나 삶의 고충은 다 똑같을 테니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습니다. 온 가족이 이민 오던 날, 비행기 안에서 막막함과 두려움에 눈물 지으시던 어머니의 옆모습을 본 기억이 아직 생생한데 저는 벌써 미국에서 산 세월이 한국에서 나고 자란 시간을 추월해 버린 한국계 미국인이 되었네요. 

말이 안 통해 일상생활에도 고전했던, 정서가 달라 마음 통하는 친구 사귀기도 힘들었던, 고향과 친구들이 그리워 향수병으로 고생하던, 도대체 내가 한국인인지 미국인인지 정의 내릴 수 없어 남모르게 방황하던 시기도 어느덧 다~ 지나가버렸습니다. 그런데 이제 생각해보니 제가 미국에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바로... 바로...!

다소 공격적인 성향을 장점으로 여기는 미국 문화였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살 때만 해도 '좋은 게 좋은 거다', '지는 게 곧 이기는 거다', '강하면 부러진다' 등등 양보하고 배려하는 유연한 태도에 대한 교육을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반복해서 받았습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네요. 이민온 사람들의 한국 시계는 한국을 떠난 그 날로 멈춰버린다고 하죠? 아무래도 멀리 떨어져 있다 보니 한국의 현실 정서가 어떻게 변해가는지 알기 힘들답니다.) 


특히 저희 아버지는 남한테 No소리 못하는 전형적인 "사람 좋은, 그러나 혼자 속으로 앓는" 분이셨는지라 저희 남매에게도 늘 "네가 참아라. 사람들이 다 그런 거니까 그냥 네가 참아라" 라며 타이르는 말씀이 입버릇이셨습니다. 그렇게 자라다 미국에 왔는데, 여기서는 그런 사람을 "Pushover" (만만한 사람)라 부르며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한국식으로 표현하자면, 

 

"가만히 있으면 정말 가마니로 본다
랄까요?


타인과 잘 어우러지며, 지나치게 나서거나 튀지 않는 성격을 선호하는 한국인들과 달리 미국인들은  자칫 공격적으로까지 느껴지는 강한 성격을 장점으로 칩니다. 미국인들이 자기 자신을 혹은 타인을 묘사할 때 aggressive (공격적인), assertive (자기주장이 강한), dominant (지배적인) 등등의 단어로 표현할 때가 있는데 이런 성향들은 긍정적으로 평가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특히 직장에서 윗자리에 오른 사람들을 살펴보면 aggressive한 성격이 두드러지는데, 일반적으로 미국인들이 생각하는 리더십이란 꽤나 일차원적이라, 밀어붙이는 불도저형 상사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제가 다니고 있는 직장에도 흡사 투견처럼 무슨 말만 하면 물어뜯는 상사분들이 계시는데, 아래 직원들은 그런 공격적 성향을 못 견뎌하면서도 '하긴 저런 성격이니 그 자리에 올랐지' 하며 어쩐지 당연하게 여기네요. 반대로 부드러운 성격의 상사들은 평소 인기는 많지만 간혹 험담 자리에서 "저 사람은 리더십이 약해" 따위의 말들이 나오곤 하지요.


Diplomacy를 중요시하는 저로서는 미국인들의 이런 성향이 썩 마음에 드는 건 아니랍니다. 그간 접한 미국인들 중에 이런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들을 참아내는 상대하는 것에는 익숙하지만, 정말 힘든 건 제 자신의 성격을 바꾸는 것이지요.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이미 어릴 때 형성된 성격을 바꾸는 게 쉽지 않습니다. 좋은 게 좋은 거라며 얼굴 붉히는 일 없이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사무실의 투견 No.1께서 제게 이러시더라고요.

 

방인 씨, 그렇게 넘어가면 안 돼!
그랬다간 사람들이 방인 씨를 존중하지 않게 된단 말이야!


제가 동료들을 존중하고 배려하면 그들 또한 저를 똑같이 대하리라 믿었는데, 이건 어디까지나 저의 머릿속 이상이었던가 봅니다. 투견님의 말씀으로는, 존중이라는 것도 공짜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군요. 


그렇구나...
이 놈의 공격적인 나라에서는
"존중"이라는 것도 쟁취해야 하는 것이었구나...
이제 알겠다...


그걸 알고 났더니 어쩐지 이 사태가


왜 일어났는지 알 것 같았다.

 

 

인간 사이에, 동료 사이에, 친구 사이에, 이웃 사이에, 굳이 쓸데없는 기싸움 같은 것 없이도 서로 배려하며 조금씩 양보도 하고 살면 좋을 텐데 말입니다.

 

이상, 캘리포니아에서 가만히 있는 가마니가 씁니다.

  • sunnyvale 2019.12.05 10:31 신고

    가마니로 보면 가마니 되는건 사실 맞는듯합니다.
    아직도 적응 안되는게 나 잘랐다고 오벌리 컨피던트 한 사람들인데 이게 직장마다 또 분위기가 다른거 같기도 해요. 이전 직장은 좀 그런 성향이 강했는데 동양인들 많은 직장 오니 그런거는 C 자 달린 분들이 많이 그런거 같고 (당연히 그런 성향이니 출세했겠지만서두요) 그냥 일하는 사람들은 assertive는 좋게 봐주지만 aggressive한건 부정적으로 보는거 같기도 해요. 저도 연차가 오래되니 그냥 하고 싶은말 다 하고 살기는 하는데 그건 또 어그레시브랑은 다르게 outspoken 정도 되는듯해요.

    • 이방인 씨 2019.12.06 01:07 신고

      맞아요. 미국 사람들 참 재밌는 게 가만히 있으면 우습게 보다가 한 번 지르면 그 때부터는 조심하잖아요? 꼭 맛을 봐야 아나봐요. ^^;;

  • vision2real 2019.12.05 16:10 신고

    아이구~~드뎌 돌아오셨네요~~^^
    거의 매일 새 글이 있는지 들락거렸었는데 몇년이나 소식이 없으셔서 이제 영영 보기 힘들겠다고 생각했는데. 암튼 너무 반갑네요~~~살아계셔서 다행입니다 ㅋㅋㅋ

    • 이방인 씨 2019.12.06 01:11 신고

      으아니~ 비전님! 아직도 방문해주시고 계셨다니 정말 너무 감사해요. 저도 진짜 반가워요! 와우 한 분 한 분 예전 독자분들 만나서 서로의 생존을 확인할 때마다 감동의 물결입니다. ㅋㅋ 비전님은 그간 어떻게 지내셨나요??

    • vision2real 2019.12.06 01:41 신고

      방인님을 필두로 ㅋ 제가 매일 즐겨 찾던 블로그들이 어느 순간 약속이나 한듯 활동을 멈추는 바람에 한동안 방황하다가 요즘은 유튜브에서 재미를 찾고 있습니다~~ 방인님은 충분히 인기 콘텐츠가 될 만한 소재들을 이미 많이 가지고 계시니까 텍스트와 목소리 출연 정도로 영상 만드셔도 금방 인기 유튜버가 되실 거예요~~글과 영상, 왠지 블로그보다 더 어울리지 않습니까?? 애쓴 만큼 수익도 기대되는 유튜브에도 한 번 도전해보세요~~응원합니다~
      이제 자주 뵈요~~

    • 이방인 씨 2019.12.06 12:29 신고

      우연히 그런 일이 있었군요. 하긴 제가 친하게 지내던 블로거님 몇 분도 비슷한 시기에 갑자기 사라져버리셨어요. 언젠가 돌아오시겠죠. 저처럼요. ^^
      유튜브라... 그건 어쩐지 도전하기 두렵네요. 글이 아니라 말을 해야 하는데, 앞에 상대도 없이 혼자 계속 말을 이어가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아요. 민망할 것 같기도 하구요. 그런 거 보면 1인 방송 하시는 분들 참 대단하시네요.
      앞으로 적어도 2-3일에 한 번씩은 포스팅 할 생각이니 자주 뵈어요~!

  • 궁금궁금 2019.12.07 13:20

    예전에 이방인님 글 재밌게 읽었었는데 다시 글 올려주셔서 너무 반갑고 고맙습니다.

  • 단발머리 2019.12.11 15:23

    이거 너무너무 공감해요. 근데 사회생활 해보닌깐 다소 자기주장이 쎄고 할 말하는 사람이 좀 더 인생 편하게 사는 것 같긴해요. 저도 그냥 별거 아닌거는 굳이 머리아프게 따질 거 뭐있냐 그냥 넘어가자는 타입인데.....회사에서 자기 권리 막 따지고 상사한테 대드는? 이런 얘들이 상사고 동기고 후배고 쉽게 안보더라구요.
    저도 목소리 좀 내야지 했는데 이미 버린 몸 같아요 ㅋㅋㅋㅋㅋㅋ그런 것도 해본 사람이 해야지 안해보던 사람이 하려닌깐 오히려 하고 나서 극심한 후회만.....내가 오바했나? 계속 이런 생각이 머릿속에 떠나지 않고 마음만 불편해 지더라구요. 그래서 또 그걸로 스트레스 받구요 ㅋㅋ 상냥하며ㅇ 단호하게 말하는 스킬 좀 길러야겠어요ㅠㅠㅠ 왜 나이는 먹는데 사회스킬은 길러지지 않는 걸까요 ㅠ오히려 나이 먹을수록 더 소심쟁이가 되는 것 같아요

    • 이방인 씨 2019.12.12 01:55 신고

      와... 단발머리님, 완전 저랑 똑같네요. 저도 목소리 높이기에는 이미 늦은 것 같아요. 동료들이 이젠 제 성격에 익숙해져서 갑자기 바뀌면 미쳤다고 생각할지도요. 이직해서 아무도 저를 모르는 사무실에 가면 그 때부터는 새출발할 수 있을 것 같은데... ㅋㅋ
      전에 다니던 직장에 aggressive한 걸로는 세계챔피언급 전무님이 계셨었는데, 여성이 드문 분야에서 거기까지 오르신 것과, 성격 더러운 걸로도 유명하셨어요. 뭔가 마음에 안들면 소리지르고 책상에 파일 던지는 걸로 악명을 떨치셨는데, 저는 그걸 보고 저런 성격탓에 그 자리까지 갔겠지만 절대로 저런 분을 상사로 존경할 수는 없겠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그냥 이대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었네요.

  • 들꽃처럼 2020.03.08 16:31

    제 신조가
    누군가 손해를 봐야할 상황이라면
    내가 조금 손해 보는 선택을 하자.. 거든요?
    그런데
    이걸 누리는 사람이 세명 있었어요.
    첫번째는 참고 지나가고
    두번째는 이쁘게 돌려서 말하고
    (못알아들음... ㅡㅡ)
    세번째는 버럭하고 뒤집어버렸어요.
    제 주변에 소문 다 내버리고요.

    원래도 사람들이랑 가깝게 지내지 않았는데
    이제는 검증된 사람들이랑만 왕래하고 지낸답니다.
    그리고
    아니다 싶음 바로 피해버려요~

    제게 조금 호구끼가 있다는거 알고는 있었지만
    씁쓸합니다...
    우아하고 단호하게!를 신조로 해야할까봐요.

    • 이방인 씨 2020.03.11 00:35 신고

      들꽃처럼님, 저랑 완전 성향 비슷하시네요. 저도 제가 손해보는 쪽인데, 상대방이 고마운 줄 모르고 계속 악용하려 들면 그냥 관계를 끊어버리는 쪽이거든요. 굳이 그런 사람들하고 친하게 지낼 이유가 없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