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Welcome to California

미국에서 살다 보니 필요 이상으로 자유로워진 습관

한국에서 가장 자유를 억압받고 살고 있는 집단이라고 한다면, 아마도 고등학생들 아닐까요? 정규수업이 끝나도 야간 자율학습이란 이름으로 학교에 붙잡혀 있어야 하고, 교복도 입어야 하고, 두발 단속이 있는 학교도 있으니까요. 저도 굉장히 규율이 센 학교에 다니다가 이민을 왔는데... 미국 고등학교는 다들 아시겠지만 학칙이 참으로 너그럽더군요. 무단결석이나 학교에서 위험한 행동을 하지만 않으면 별달리 제재를 받지 않더라고요.

 

그때부터였을까요...?
제가 소소한 자유의 단맛에 빠져든 것이 말이죠.

 

미국에 살며 이 나라의 자유로움에 익숙해져 마음도 몸도 (특히 몸무게가) 무척 편안해졌습니다. 범죄를 제외한 행동이라면, 하지 말라는 사람도 남일에 관심 가지는 사람도 딱히 없어서 행동을 제약하는 사회적 압박이 적다고 할까요. 그래서인지 미국에 참, 괴짜들도 많고 제멋대로인 사람들도 많죠. 이민생활 초기에는 지나치게 자유로운 사람들 때문에 당황하는 일도 잦았는데 이젠 웬만한 일에는 눈 하나 꿈쩍 않는 건 물론이고, 저 역시 가끔 소소한 자유를 만끽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제가 하면서도 마음 한편에 '나 정말 이래도 되는 걸까...' 하고 되묻게 되는 행동이 있습니다. 바로...


신발 신고 집안에 들어가는 거예요!!!

그렇습니다.
오랜 이민 생활 끝에 저란 녀석은 어느새...
갈 때까지 가 버린 거예요!!


신발을 신고 집안에 들어가는 행위란, 한민족에게는 천인공노할 짓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제가 그런 짓을... 

꼭 밝히고 싶은 점은, 저도 평소에는 당.연.히. 실내에서 신발을 신지 않고 생활한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언제 신발을 신고 들어가느냐 하면요.


 1. 미국 친구 집에 초대받았을 때 

미국인이라고 다 집안에서 신발을 신는 것은 아니고 요즘은 실내에서 신발을 신는 것을 싫어하는 미국인들도 늘어나는 추세입니다만, 아직까지는 신발을 신는 미국인들이 있지요. 그런 미국인 집에 방문하게 되면 집주인은 버젓이 신발을 신고 있는데, 손님인 제가 신발을 벗고 들어가기가 민망합니다. 그래서 저도 함께 신발을 신고 집안을 돌아다니는데, 진짜 기분이... 제 집이 아닌데도 묘~합니다. 무언가 무례를 범하는 것 같은 느낌적 느낌 말이죠. 그런데 또 신발을 벗는 것도 내키지 않는 이유는, 신발을 신고 생활하는 습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바닥이 더럽기 때문입니다. 그런 바닥을 양말 차림으로 걸어 다니고 싶지 않거든요.

 

 2. 외출 시 잠시 잊은 물건이 생각났는데 신발 벗기 귀찮을 때 

이런 경험 다들 있으시죠? 집 밖으로 몇 걸음 걸어 나갔는데 깜빡 잊은 물건이 떠오릅니다. 제가 한국에 있었다면 귀찮아도 꼭 신발을 벗고 들어갔을 거예요. 그러나... "신발은 집안에서도 신는 것이다"라는 미국식 습관에 어느새 정신상태가 빠져버린 저는 그냥 들어가 버립니다. 와..하..하하하하하.

물론 이런 일이 자주 있는 것도 아니고, 물건이 가까운 거리에 있을 때만 신발 신고 들어오죠. 저희 어머니께서 아시면 아주~ 경을 칠 일이지만, 어쩐지 저는 '내 집이고, 내가 청소하는 데 뭐 어떠냐...' 싶답니다. 인간은 역시 적응의 동물이라 이것도 처음이 어렵지 하다 보면 어렵지 않아요~ 여러분도 한 번 해보시면...

 

일탈 축에도 못 끼지만, 어쩐지 자유로움마저 느껴진답니다.

 



한국에서 집안에 신발을 신고 들어가는 행동이 Taboo로 느껴지는 이유는, 신발은 밖에서만 신고 집안에서는 깨끗한 발로 생활하는 것이 일반상식이기 때문이죠. 그러나 미국에는 신발을 집에서 신는다고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싫어하는 사람은 있을지라도 그걸 비상식적 행동이라 여기지는 않죠. 제가 잊고 나온 지갑을 가지러 집안으로 신발을 신고 들어가 활보한다고 해도 저를 상식 밖 인간이라 여기는 미국인은 없을 거예요.

 

대수롭지 않은 일이지만, 한 문화권에서 태어나 자라며 금기시되었던 행동을 거리낌 없이 하는 행위. 일말의 죄책감을 남기는 동시에 기묘한 만족감을 느끼게 한답니다. 딱히 반항적인 성격도 아닌데 말이죠.

 

그런데 재밌는 사실은, 제가 제 집에서 신발 신고 돌아다니는 건 괜찮아도 남이 제 집에 신발 신고 들어오는 건 절대 불가라는 거예요. (이것이 바로 내로남불?) 가끔 미국인 친구가 집에 오거나 수리기사님이 방문하실 때, 신발 신고 들어오려는 분위기가 감지되면 저는 재빨리 손님용 슬리퍼를 꺼냅니다. 예전에는 미국인들에게 내 기준을 강요하는 것 같아 참아보려고도 했는데, 도저히 안 되겠기에 슬리퍼를 착용해달라 정중히 부탁드린답니다. 친구들은 대부분 별 말없이 슬리퍼로 갈아 신어 주고, 대부분의 수리기사님들은 평소 가지고 다니시는 신발 커버를 씌우고 들어오시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더라고요. 

 

사실 다가오는 크리스마스에 직장 동료와 그녀의 남편을 집으로 초대했는데, 그들은 집에서 신발을 신고 생활하는 사람들이라 살~짝 걱정이 되네요. 그런데 몇 달 전 저를 그들의 집에 초대해준 인연으로 (네, 저는 그 집에 신발 신고 들어갔습니다요.) 이번에는 제 차례라 그냥 지나칠 수가 없습니다. 혹시나 슬리퍼를 권하면 당황하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 뭐... 어떻게 해봐야죠. 나중에 결과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여러분, 오늘도 즐거운 하루 유후~

  • vision2real 2019.12.11 08:16 신고

    티스토리 iOS 앱이 업데이트 되고 난 후 링크 메뉴가 사라져서 바로 찾아 오기가 힘들었어요~~
    데스크톱으로 접속해서 링크들 겨우 찾아서 블로그 방문 후 일일이 구독을 눌러 주니 그제서야 자주 들르던 블로그들이 피드에 보입니다. 이전에는 티스토리에 구독 메뉴가 없었는데 이 따위로 만들었네요. 앱만으로는 절대 찾아올 수가 없습니다 ㅋ

    긁을 읽다 보니 공감.
    미국이 아니지만 저도 가족이 아닌 방문객들에게는 가끔 슬리퍼를 신기고 싶은 기분을 느끼죠.
    집에 뭔가 작업할 게 있을 경우(인터넷 설치나 가구 설치 등등) 기사분들이 왔다 가시면 마루바닥에 땀이 포함된 발자국이 보이거든요.
    그냥 가시고 나서 닦으면 되는데 거실에서 러그를 밟고 다니는 경우가 좀 난감하거든요. 그분들도 보통 남의 집이라 조심조심 다니는데 혹시 상처 받을까봐 감히 슬리퍼를 권하지는 못하고 있죠.
    한국에서도 신발 커버 같은 거 사용해 주시면 서로 맘 편하고 좋을 텐데.

    • 이방인 씨 2019.12.12 01:38 신고

      앱을 업데이트했다는 공지를 봐서 저도 다운로드 받을까 했는데 기능이 썩 좋지 않은가 봅니다.

      저도 참.. 슬리퍼 권하기가 쉽지 않아요. 권하면 갈아신기야 하겠지만 혹시 속으로 기분 상해하거나 아니면 유난떤다고 생각할까봐요.
      간혹 신발커버 안 가지고 다니는 기사님들이 계시는데, 진짜 흙묻은 발로 제 집안을 마구 돌아다니실 때 짜증과 분노가 장난 아니랍니다. 그런 회사에는 다시는 서비스 안 맡기죠. ㅎㅎ

  • 루팡 2019.12.12 14:02

    저는 한국에 사는 모태한국인인데... 2번 공감합니다.. ㅋㅋㅋ
    신발 벗기 귀찮을 때........ 미국에 사는 것도 살아본 것도 아닌 한국을 벗어나본 적 없는데...
    "뭐~ 미국사람들은 집에서 신발도 신잖아~" 이렇게 생뚱맞은 합리화하면 그냥 들어갑니다.. ㅋㅋㅋㅋㅋ
    그치만 모태한국인이라.. 귀가 후 정신이 돌아오면... 그냥 열심히 걸레질합니다. ㅋㅋㅋ

    • 이방인 씨 2019.12.13 01:36 신고

      저도 그래요. 순간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괜찮아. 여기선 신발 신고 들어가도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 안해." 라고 일단 저지른 후, 나중에 열심히 닦으면서 "아휴~ 내가 못살아. 왜 이랬지?!" 후회한답니다. ㅎㅎ

  • 들꽃처럼 2020.03.08 16:24

    미국에 살면 저도 그 문화에 익숙해질까요?
    저는 바닥에 모래가 아닌 먼지가 끌리는것도 느껴지거든요.
    청소기 하루 두번은 돌려요.
    사람이 바스러지는건가?
    청소기 필터 안의 먼지가 생명체인가? 싶은게
    먼지가 자라는 모습이 보이잖아요~ ㅎㅎ

    그나저나 방인님 독립 계획 하신다더니
    몇년새 집도 사셨구나!
    궁디 팡팡~~
    잘했어요!
    제가 다 흐뭇하네요!
    잘 지내실꺼라 생각하고 있었지만
    정말 잘 지내신걸 보니 뭉클 합니다! ㅠㅠ

    • 이방인 씨 2020.03.11 00:22 신고

      마음 깊은 곳까지 익숙해지지는 않아도 조금 너그러워지긴 하더라구요. 예전에는 "신발 신고 집안에? 방안에? 이런 천인공노할!" 이랬다면 요즘은 "아 급하면 가끔 신발신고 종종 뛸 수도 있지 뭐." 하게 됐달까요?
      저도 청소기 돌릴 때마다 신기한 것이, 도대체 먼지가 어디서 그렇게 날마다 새로 들어오는 것일까요? ㅎㅎㅎ
      집을... 사긴 샀는데, 그것 때문에 등골이 휘고 있답니다. 이런 망할 이자!

  • 엘리즈 2020.03.27 12:37 신고

    새로 글을 쓰신 지 4달이나 되었는데 난 도대체 뭘 한 걸까요? 생각날 때마다 방문해도 미국인의 직업귀천....편만 줄창 보였거든요.
    그동안 집사고 직장생활도 즐겁게 잘 하신 것 같아 칭찬과 응원을 드리고 싶어요. 박여사님 연배라 딸처럼 친근하게 느껴진답니다.

    • 이방인 씨 2020.04.10 06:29 신고

      그래도 다시 찾아와주셔서 다행이고 반갑습니다. ^^ 칭찬과 응원에도 힘이 나네요. 사실 요즘 집 융자 이자금 갚아 나가느라 지치거든요. 역시 부모님 집에서 살 때가 세상 편하고 좋았다는 생각을 해요. 아~ 박여사께 효도해야되는데 말이죠.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