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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come to California

만으로 꽉 채운 15년의 미국 이민 생활을 돌아보다

by 이방인 씨 2014. 11. 12.

칠 전 어린 시절 고향 친구와 오랜만에 수다를 떨었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다 문뜩 제가 물었죠.

방인 씨: "우리 도대체 얼마나 못 본 거야? 내가 한국 갔다 올 때 봤으니까 그게 벌써 8년 전이네."

친구: "벌써 그렇게 됐나? 우리 다음에 만나면 서로 늙어서 못 알아보는 거 아냐? 그러고 보니 너 이민간지도 꽤 됐네."

방인 씨: "그러게 말야. 만으로 꽉꽉 눌러서 15년 지났다."

친구: "그래, 15년 동안 외국에서 살아 보니 어떻든?"

방인 씨: "글쎄~ 흐음... 그게..."


툭 던진 친구의 질문에 저는 그만 말문이 막혀버렸습니다. 15년 간의 이민 생활 소회를 한마디로 정리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죠. 친구와 대화를 마친 뒤 잠시나마 돌아보았습니다. "이민"이라는 사건이 과연 제게 어떤 의미였는지를요. 독자들 중에 미국 생활에 흥미가 있는 분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몇 가지를 여러분과 공유할까 합니다.

 

 


미국 이민 생활, 가장 좋은 점은?


시야가 넓어집니다.


큰 나라는 땅만 큰 것이 아니더군요. 사람이면 사람, 자원이면 자원, 문화면 문화, 부족한 것을 찾기 쉽지 않습니다. 가끔은 '과잉'이라는 말을 쓰고 싶을 정도죠. 대학 시절 유럽 출신 교수님이 한 분 계셨는데 그 분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이 나라 (미국) 국민들은 '결핍'이라는 것을 모른다."


비단 경제적인 풍요로움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풍부한 문화야말로 어쩌면 미국의 가장 큰 힘인지도 모르겠습니다.


Different people, different ways.
다양한 사람들, 다양한 방식들.


라는 말이 참 진리로 느껴지는 곳이 바로 미국이란 나라죠. 제가 이 나라에 와서 받은 문화 충격을 일일히 열거할 순 없지만 그로 인한 제 운명의 변화는 둘 중 하나일 겁니다.


수명이 줄었거나 늘었거나


100명이 모이면 100개의 다른 의견이 나올 수도 있는 이 나라에서 다양한 인종, 민족, 문화를 경험하며 살다 보니 저도 모르는 사이 시야가 넓어지는 것을 느낍니다. 시야의 확장은 곧 사고의 확장으로 이어지기 마련이죠.


세상에~ 이런 사람도 있었네!
헐~ 이런 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었구나!
OMG~ 이건 상상도 못한 일인데?!
흐음~ 이렇게 저렇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구나~
와우~ 나와 전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았단 말야?!


하는 일들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어느새 저의 내면의 세상도 천지개벽했죠. 그 결과로 제 명줄이 짧아질지 길어질지는... 신만이 아시려나요...? 하지만 저는 그것이야말로 15년 간의 미국 생활이 제게 의미하는 바가 아닐까 합니다. 요컨대...


"이민"이라 쓰고 "세계관의 변화"라고 읽는다.



미국 이민 생활, 가장 나쁜 점은?


식욕불만족


'뭐야, 이 김 빠지는 시시한 대답은?' 이라 평가절하할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겠지만 제게는 실로 중.차.대.한 사안이 아닐 수 없습니다.


끼니는 소중하니까요.

웃음기 싹 뺀 방인 씨


15년을 살았으면 미국의 식문화에 혀를 정착시킬 법도 한데! 실제로 미국 음식이 더 맛있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저는 그렇지 않더군요.


한국 음식 킹왕짱
한국 간식 Forever


강산이 한 번하고도 반 변할 동한 외국에서 살다 보면 절감하게 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때로는 사소한 줄 알았던 것이 가장 중요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죠. 언어의 장벽, 문화의 장벽, 인종 차별, 정서의 불일치 등등 누구나 예상하고 이미 각오하고 온 큰 어려움들은 살다 보면 아무렇지 않아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음식만은... 날이 갈수록 더욱 더 중요해질 뿐입니다.


한국 음식 먹고 싶은데 못 먹으니까
계속 식욕불만족이 쌓이고 쌓여 폭발할 지경이예요!!

저...저만 그래요???


어쨌든 오늘도 저는 마음 속 일기장에 먹고 싶은 한국 음식의 이름을 하나 하나 적어 봅니다.

닭갈비, 회냉면, OO 치킨, 오징어 물회, 고구마 무스인지 뭔지가 들어간 그 피자, 이름은 기억 안 나지만 초록색 포장지에 쌓인 우유맛 아이스크림 바, 조개 구이, 연포탕, 그 뭐더라.... 단호박찜이랑 같이 먹는 오리 구이 같은 거,

아아~ 한국 음식을 너무 못 먹었더니
뇌세포가 굶.어.죽.은. 게. 틀.림.없.어.


 

미국 이민 생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한국인이 외국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같은 한국인이다" 라는 씁쓸하지만 전혀 근거가 없다고 할 수만은 없는 뼈 있는 우스개도 있지만 저의 개인적 경험에 비추어 본 답은 이겁니다.


다 안다는 착각


이민 와서 6개월까지는 모든 게 새롭고 낯설며, 재밌고 두렵습니다. 정신 없이 지내다 보면 6개월쯤은 훌쩍 가버리죠. 그리고 1년쯤 지나면 편안해지기도 하며 적응했다 느끼게 됩니다. 2-3년차에 접어들면 어느덧 매일 똑같은 일상이라는 것이 생기고 즈음하며 '향수병'이 찾아오기도 하죠. 그 시기도 넘기고 4-5년이 되면 '이 정도면 나도 미국을 안다'는 대단한 착각에 빠지게 되구요. 그러~나! 또 몇 년만 지나고 보면 이것은 착각이 아니라 망상에 가까운 오만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깜깜한 밤에 부끄러움에 홀로 이불을 발로 뻥뻥 걷어차는 순간이 오죠.

이쯤에서 여러분께 고해성사할 것이 하나 있다면...


저도 여전히 미국에 대해 배우는 중이예요.


미국 블로그라고 열어놓고 글도 많이 써놓은 인간이 이런 무책임한 발언을 하다니! 배신감을 느끼는 독자분들이 계실 지도 모르겠으나 사실이 그런 걸요. '이제는 정말 다 알아냈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또 생경한 얼굴을 보여주는 것이 미국이라는 나라네요. 한마디로 정의내리기 불가한 샐러드볼의 정수를 알아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겠지요. 이제는 미국인들조차 무엇이 진정한 미국이며 미국 문화인지 의견일치를 보기 힘들다고 하니까요.

저 역시 다 안다고 착각하지 말고 나와 다른 성향, 문화, 가치관, 신념을 가진 사람들에게서 보고 느끼며 잘 어우러져 살아야겠다 묻어가야겠다 생각을 해보는데 역시... 쉽지만은 않습니다.


이런 종잡을 수 없는 샐러드 같으니라구!


다 먹어버리겠다~~~


오늘도 역시 기승전(食)이었네요.
여러분 신나는 하루 유후~


※ 이 글은 어디까지나 개인적 경험담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