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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come to California

아니 너도 먹는단 말야?! 의외로 김치를 많이 먹는 미국 친구들

by 이방인 씨 2014. 11. 24.

가 사는 지역에는 한인 교포 인구가 많지 않습니다. 제가 자주 만나는 한인이라고 하면 친척들밖에 없을 정도로 말이죠. 자연히 주변 지인들이나 친구들은 대부분 미국인들인데 그 중에는 제가 한국 출신인 줄 모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워낙 다민족 국가이다 보니 굳이 출신지를 구별할 필요도 없거니와 딱히 궁금해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으니까요. 이틀 전에도 저의 민족적 정체(?)를 모르는 미국인 지인 2명과 점심 식사 후 수다를 떨고 있었습니다. 밥을 먹고 난 직후인데도! 저희 3인의 대화 소재는 온통 먹을 것뿐!!


유유상종이라더니...
 FOOD FIGHTER 끼리는 서로를 알아보는 법입니다.


고기를 지나 생선을 거쳐 채소 라운드에 돌입했을 때였습니다. 갑자기 미국인 1 마크가 이렇게 묻는 것이 아닙니까.


"너희들 김치 먹어 봤어? 그 Spicy Cabbage 말야."

 

(theguardian.com)

 

호오~ 마크, 당신이 김치를 안단 말이뇨~?


속으로 살.짝. 놀란 제가 물었습니다.


"마크, 김치 좋아해요?"

"완전 좋아하지. 난 Spicy한 게 좋거든. 그리고 김치는 진짜 건강에 좋은 음식이야. 채소잖아! 단점이라면 냄새가 고약하다는 거지. 김치병을 열 때마다 그 냄새가 정말... 그것만 빼면 완벽한데 말야."


지금보다 더~ 자주, 더~ 많이 먹으면 냄새도 아무렇지 않아질 거라고 말하려던 찰나, 옆에서 듣고 있던 미국인 2 린다가 갑자기 말을 시작했습니다.


"마크, 너도 김치 먹는구나~ 나랑 우리 남편도 먹어! 우리 남편이랑 연애할 때 그 집에 갔더니 김치가 있어서 처음 먹어 봤지."


헛~! 린다, 당신과 남편은 유럽계 미국인이잖아요.
게다가 연애할 때라면 적어도 20년 전일 텐데 그 때부터 김치를 먹었다고요?!!!

 

아시안계나 아시안 친구가 많은 미국인들이 김치를 종종 접하게 되는 것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마크와 린다는 둘 다 전형적인 백인으로 평소에 먹는 음식들도 미국 가정식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저는 여기까지 듣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어진 린다의 사연에는 웃지 않을 수가 없었죠.


"우리 남편이 총각 때부터 매운맛을 좋아해서 김치를 즐겨 먹었는데 어느 날 새로 김치 한 병을 샀다며 같이 먹자고 나를 자기네 집으로 불렀어. 그래서 식탁에서 병을 딱 열었는데!"


부글부글 부글부글
Oh my God~~!


린다의 남편은 필시 한인 마켓에서 만들어서 팔고 있는 이런 Jar에 담긴 김치를 산 모양입니다.

 

병에 담긴 김치 드셔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뚜껑을 열면 부글부글하고 넘쳐 올라올 때가 있죠.


"난 그걸 보고 깜짝 놀라서 "OK, 난 안 먹을 거야." 라고 했는데 내 남편은 상관 없다고 그냥 막 먹더라구. 그러고는 몇 시간 뒤부터 입술이 붓기 시작하더니! 세상에~ 세상에~ 완전히 금붕어 입술이 됐어. 푸하하하하하하 다음날 우리 아버지한테 인사가기로 했는데 당장 취소했지."


여자친구 아버님께 인사드리러 가기 전날 음식을 잘못 먹어 탈이 난다는, 로맨틱 코메디에 자주 등장하는 cliche를 현실로 만들어준 것이 바로 김치!였던 것입니다.

린다는 아무래도 그 때 부글부글거리던 김치가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 제가 설명해 주었죠.


"그건 냉장고에 보관하지 않아서 그랬을 거예요. 김치는 온도가 낮은 곳에 보관해야 좋아요. 그런데 부글부글거려도 상한 건 아니니까 그것 때문에 입술이 부은 건 아닐 거예요. 아마 너무 매웠던 게 아닐까 싶네요."


"그래애~? 근데 너도 김치를 먹는 거야?"


저도 김치를 먹냐굽쇼?


그래, 마침내 이들에게 나의 정체를 밝힐 때가 온 게로군...
이런 식으로 알릴 생각은 아니었지만
진실은 언제나 예기치 못한 순간에 드러나는 법이지...



"난 한국 출신이니까 거의 매일 먹죠."

"아, 진짜~? 너 한국에서 왔다고?! 그래애~? 그랬구나~!

하며 "언제 왔느냐, 어디서 왔느냐," 등등 푸드 파이터 3인의 수다는 잠시 한국을 거쳐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디저트 이야기로 끝을 맺었답니다.

재밌는 사실은 마크와 린다 둘 다 김치에 대해 자세히 모르면서도 '건강에 좋은 음식'이라고 철썩 같이 믿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기름진 육식을 하는 미국인들이라 그런지 채.소.로 만든 아.시.안. 음식인 김치는 무조건 먹으면 좋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어요. 그런데 두 명 다 아직은 배추 김치 한 종류밖에 모른다고 하니 이번 크리스마스에 깍두기나 열무김치를 한 병 선물해 볼까 생각중인 이방인 씨랍니다.


산타클로스의 빨간 옷과 완벽한 깔맞춤 선물 아니겠어요???

여러분 신나는 월요일, 유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