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Welcome to California

내 이메일에 차갑게 답하는 미국교수님, 날 싫어하나?

by 이방인 씨 2012. 11. 12.

어제 한국과 미국의 비평에 대한 이야기를 썼었는데, 그 밑에 "역량이란 몸에 밴 태도이다" 님께서 이런 댓글을 달아주셨습니다.

 

 

오늘은 감사하게도 이 댓글에서 소재를 얻어 한국과 미국의 "이메일" 에 대한 인식 차이를 소개할까 합니다.
우선은 역량이란... 님께서 질문해주신 교수님의 경우부터 이야기 할게요.

교수님에게 수업이나 과제에 관련된 이메일을 보냈다면 원래 저렇게 "용건만 간단히" 적힌 답장을 받을 확률이 90% 이상이라고 확신합니다.
가장 큰 이유라면 미국인들은 원래 "차 떼고 포 떼고, 그래서 요점이 뭔고?" 하는 스타일이거든요.
제가 Multicultural Classroom (다문화 교실) 이라는 사회학 강의를 들을 때 이런 자료를 본 적이 있어요.


 

            아시안들이 말하는 스타일        VS.      미국인들이 말하는 스타일

 

그림 자료를 보니까 쉽게 이해가 되시죠?
아시안들은 본론 (core) 로 들어가기까지 뱅뱅 도는 반면에, 미국인들은 강철직구를 던집니다. ^^;;
우리가 이렇게 모기약처럼 뱅글뱅글 도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예의" 를 갖추느라 그러는 경우가 많죠.
곧바로 내 할 말만 하는 것보다는 인사도 제대로 하고, 안부도 묻고, 용건에 대한 양해 말씀도 드려야되고, 끝인사도 해야되고, 건강 조심하라는 당부도 빼먹으면 안되고.... 헥헥... 오히려 용건보다 예의상 빼놓을 수 없는 말들에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하게 되죠.

미국인들은 이메일이 쓰여진 형식보다는 메일이 쓰여진 "목적" 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상대방이 "나에게 무엇을 원하기에 이메일을 보냈을까" 를 먼저 생각한다는 것이죠.
만약 학생이 교수님에게 강의나 과제에 대한 질문을 보냈다면, 학생이 알고싶어하는 것만 제대로 답을 해주면 그것으로 이메일 교신의 "목적"을 100% 달성한 것이 됩니다.
그 밖의 모든 것들, 예를 들면 "요즘같은 환절기에 나는 감기에 걸리지 않고 잘 있으니, 너 역시 몸 조심해라" 기타 등등은 전부 불필요한 활자낭비인 셈이죠.
이것은 어찌보면 그 동안 제가 누누히 말씀드렸던 "실리주의" 의 단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결국은 듣고 싶은 말이나 답변이 있어서 보내는 목적성 이메일에 굳이 필요하지 않은 Extra 를 얹을 필요는 없다는 것이죠.

또한 교수님이나 같이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라면 보통은 일주일에 2번은 강의 때문에 얼굴보며 만나는 사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할 말이 있다면 얼마든지 실제로 만나서 할 수도 있는 상황이죠.
그런데 굳이 이메일을 사용한다는 것은 만날 때까지 기다릴 수 없는 급한 용무이거나 혹은 직접 얼굴보고 말할 것까진 없을 정도의 사이기 때문이겠죠.
전자의 경우라면 답장 역시 긴박하게 용건만 간단히 말해야할 것이고, 후자라면 답장 보내는 사람 또한 그다지 친밀하게 할 말은 없을 겁니다.
한국식이라면 친하지 않은 사이일수록 예의상 해야하는 말이 길어지기 마련이지만, 미국에는 지켜야 하는 "매너" 는 있지만, 차려야 하는 "예절" 이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교수님에게만 적용되는 또 하나의 이유를 집어내자면, 교수님들이 평소에 받는 이메일의 양은 우리가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많습니다.
예를 들어 40명 정도의 학생이 수강하는 강의를 2개 맡고 있는 교수님이라고 가정하면, 80명의 학생에게 교수님은 1명 뿐이지만 1명의 교수님에게 관리해야하는 학생은 80명이나 되죠.
학생 입장에서는 "간혹" 이메일을 보내는 것이지만, 80명 중에 절반만 보낸다해도 이미 40통이나 되죠.
저 역시 교수님 입으로 직접 듣고서야 깨달았답니다.
한번은 교수님이 개인적인 사정으로 이틀 정도 오피스를 비우셨는데 나중에 업무에 복귀해서 학교 이메일을 확인해보니 학생들로부터 온 이메일이 54통인가 되었다고 하시더라구요. ^^
특히 시험기간이나 과제물 제출 시한이 다가오면 미친듯이 이메일이 온다고 해요. ㅋㅋㅋㅋ
저 역시 그런 이메일 성수기에 메일을 여러번 보내본 학생으로서 마음이 따끔하더라구요. ^^;;
이메일 담당 조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면 최대한 요점만 간단히 써야 모든 학생들에게 신속히 답장을 보낼 수 있겠죠.

위의 몇 가지 이유 때문에 여러분이 미국 교수님께 강의에 관련된 이메일을 보내면 "날 탐탁치 않게 생각하나?" 하고 느껴질 정도로 간략한 답장을 받으시는 거랍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한국식 문화에 익숙한 우리의 괜한 염려일 가능성이 높으니 마음 놓으세요. ^^

하.지.만!! 여러분의 이메일이 안부를 묻는 것이거나 혹은 친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면  아마도 예상외로 긴 답장을 받게 되실 거예요.
저 역시 미국인 친구에게 수다를 떨기 위한 이메일을 보내면 제가 보내는 것보다 더 긴 답장이 돌아오기도 하고, 또 알고 지내는 교수님에게 근황을 묻는 이메일을 보내면 교수님 애완견의 근황까지 일일히 말해주는 답장이 오기도 하거든요. ^^
아까 말씀드린대로 이메일의 형식보다 "목적" 에 집중하기 때문이죠.
미국인들은 답변성 이메일과 수다/친목성 이메일을 구분한다고 생각하시면 이해가 쉬울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덧붙일만한 것은, 한국이나 매한가지로 친한 친구사이에는 이런 구분이 없다는 것입니다.
친구들에게는 제발 용건만 말해줬으면... 하고 보내도, 제 멋대로 이 이야기 저 이야기 막 뒤섞여서 돌아오기 마련입니다.
생일날 뭐하냐는 질문에 친구랑 싸운 얘기부터, 커피샵에서 멋진 남자 봤다는 얘기까지 막 쏟아부어대죠. ㅋㅋ

여기까지가 제가 설명해드릴 수 있는 전부인 것 같네요. ^--^
질문해주신 역량이란...님께 감사드리며, 조금이나마 답답한 마음이 해소되셨으면 좋겠네요.

기척없는 암살자처럼 월요일이 또 스리슬쩍 다가오고 말았군요. (사실 저는 일요일이지만요. ㅋㅋㅋㅋ)
여러분 모두 씩씩한 월요일 시작하세요~

* 늘 말씀드리지만, 제 글은 미국인 모두를 일반화할 수 없다는 사실 알고 계시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