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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come to California

한미 문화차이에 대한 내 말에 충격받은 미국친구

by 이방인 씨 2012. 11. 11.

요 며칠 미국의 학교에 대해 이야기를 했더니 한국과 사뭇 다른 학교 분위기에 "정말 이러냐" 며 물으신 분들도 계신데요. ^^
오늘도 한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미국 학교의 문화 혹은 관습(?)을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미국에는 Peer Review 라는 문화가 있습니다.
Peer 란 번역하면 "또래" 라는 뜻이지만, 미국에서는 굳이 연령대가 비슷하지 않아도 같은 지위에 있거나 같은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모두 peer 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Peer Review 라는 것은 한마디로 본인과 동등한 입장에 있는 사람들에게 피드백을 받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내 과제물을 선생님께 제출하기전에 옆의 짝꿍에게 먼저 보여주고 "내 숙제 좀 읽어보고 어떤지 말해줘." 라고 부탁하면 짝꿍이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네" 라며 비평을 해주는 것이 Peer Review 입니다.

미국 학교에서는 Peer Review 를 흔하게 합니다.
선생님들은 Peer Review 를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심지어 대학 때는 필수로 정해놓은 교수님들도 있었습니다.
특히 영어작문이나 리포트 작성 과제에는 Peer Review 를 거치고, 리뷰를 해 준 친구의 비평까지 함께 제출해야하는 경우도 있었죠.

 



사실 저는 처음에는 이 Peer Review 가 너무 버겁더라구요.
고등학교 영어작문 시간에 Peer Review 를 처음 접해봤을 때, 내 작문을 네이티브 미국인 친구에게 보여주려니 괜히 창피해서 내키지 않았죠.

 

아니, 평가는 선생님이 하면 되지 왜 내 작문을 옆 친구에게 보여주고 말을 들어야되는데...

 

하면서 자존심도 상하고, 무엇보다 너무 민망하고 부끄러웠습니다.
원래 한국에서는 내가 쓴 글이나 과제물을 남에게 보여주는 것을 쑥쓰러워하잖아요.
그런데 바로 옆 짝꿍에게 들이밀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으려니 이거야 원... 선생님께 제출하는 것보다 더 신경쓰이지 뭡니까.
그리고 또 만만치 않게 괴로운 것이 저 역시 그 친구의 작문을 비평해야했던 것입니다!
매일 옆에 앉아있고, 뻔히 아는 친구의 글을 '여기 문법 틀렸고, 여기 단어 틀렸고, 여긴 문맥이 이상해~' 라며 줄 쳐가며 마크를 하려니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학급에서 선생님의 지시로 이루어지는 Peer Review 는 양방향으로 진행되기 마련입니다.
싫다고 해서 안 보여줄 수도 없고, 안 봐줄 수도 없는 상황인거죠.

고등학교 때는 그나마 1-2명과 Review 를 했기 때문에 다행이었는데 대학가니까 정말 갈수록 태산이었습니다.
English Composition 강의의 첫 과제가 단편소설을 읽고 감상문을 써 오는 것이었는데 과제를 제출할 때 반드시 같은 강의를 듣는 학생 5명에게 Peer Review 를 받고 그들의 비평문을 함께 스태이플해서 내라더군요.....


 짱나

교수님이 지시하신 Peer Review 의 진행은 다음과 같습니다.
일단 과제를 다 마친 후 다섯편을 프린트해서 Review 를 받아야하는 학생들에게 나눠줍니다.
그럼 학생들은 서로 언제까지 마쳐주겠다고 약속을 한 후 제 날짜까지 review 를 마치고 과제를 돌려줍니다.
받아들고 보면 참.... 가관이죠. ^^;;
기분 나쁘게 빨간색으로 죽죽 밑줄 쳐가며 지적한 학생부터, 제대로 알아보지도 못할 필체로 마구 갈겨 쓴 학생하며, review 해주는 사람이 오히려 스펠링을 틀리질 않나... 아휴~
저는 이런게 기분 나빠서 연필로 여백에 곱게 써주거나 포스트잇을 붙여서 써주곤 했습니다.
하지만 걔 중에는 정말 정신이 번쩍 나는 유익한 조언을 해주는 학생들도 있습니다.
아마 그래서 여러명에게 review 를 받아오게 하는 것이겠죠.
그렇게 review 가 다 돌아오면 받은 비판과 지적을 참고하고 수용해서 과제를 개선합니다.
그리고는 [원본 + review 받은 비평문 5편 + 개정판] 을 모두 함께 제출하는 것이죠.

Peer Review의 유익함에 대한 인식은 교수님들마다 모두 달라서 이렇게 5명씩에게나 받아오라는 분이 있는가하면, 아예 하거나 말거나 너희들 마음대로 하라는 분까지 다양합니다.
미국 학생들의 생각도 제각각이어서 교수님이 시키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다른 학생에게 읽어봐달라고 부탁하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저처럼 남에게 보여주길 꺼리는 학생들도 있죠.
하루는 사회학 강의를 같이 듣는 친구가 저에게 리포트를 Peer Review 해줄 수 있냐고 묻기에 제가 주저하며 대답했습니다.

 

물론 해줄 수는 있는데, 나는 reviewer 로 적합하지가 않을거야. Peer review 별로 안 좋아하거든.

왜? 왜 싫어하는데?

한국인들은 동등한 입장에 있는 사람의 결과물을 비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우리 문화에서 그건 겸손하지 않은 일로 여겨지고, 혹 상대방의 기분을 불쾌하기 할 수 있기 때문이야. 나는 너와 똑같은 위치에 있는데다가 네 친구이기도 한데 내가 널 평가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아. 설령 내 눈에 나쁘게 보이는 부분이 있어도 그걸 지적하는게 내겐 너무 힘든 일이니까 정말 도움되는 Review를 받고 싶거든 나 말고 다른 미국 친구가 더 잘할 거라고 생각해.

 

친구는 기분 나빠하지는 않았지만 제 말 중 이 한 문장에 꽤나 놀란 것 같았습니다.

I don't enjoy criticizing others' works. 난 타인의 작업물을 비평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이 말을 듣고 친구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난 지금 충격받았어. 왜냐하면... 미국인들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게 남을 비판하는거니까!!

 

아이고~ 어련하시겠습니까. ㅋㅋㅋㅋㅋㅋ
어느 미국인이 그린 이런 카툰이 있습니다.

 

 

가운데 아이가 친구들에게 "내 미술작품에 비평 좀 해줄래?" 라며 부탁을 합니다.
그러자 양쪽의 아이들이 혹평을 쏟아냅니다.
"이거 완전 끔찍하다." "너 색맹이지?" "5살 짜리가 그린거냐?" "때려쳐라" 까지 나오네요.
그런데 마지막 컷을 보면 실컷 비판하던 친구가 "근데 작품은 어딨어?" 하고 묻습니다.
비평을 부탁했더니, 작품을 보지도 않고 먼저 신나게 지적질부터 한거죠. ㅋㅋㅋ

미국인들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게 남을 criticize 하는 거란 제 친구의 말, 이제 이해가 가시나요?
이런 문화에서 나고 자란 친구에게 "난 친구의 글을 비판하는 게 싫어." 라고 했으니 충격받을 만도 하죠. 
여기까지 솔직히 말했으니 그 친구가 peer review 를 다른 사람에게 대신 부탁할거라고 생각한 것은 저의 오산이었습니다.
제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도 친구는 고집을 피우더라구요.

 

그러니까 더더욱 해줘. 넌 지적하는 거 싫어한다고 했으니까 네가 지적하는 부분은 진짜 별로라는 얘기잖아. 오히려 아무거나 다 지적하는 미국인보다 나을 것 같아. 이번 금요일까지 해주면 돼. See ya~!

 

컥.....

장난하냐

그래.. 그렇게 긍적적이고 적극적인 태도로 악의없이, 눈치없이 민폐끼치는 너도 참 미쿡인이로구나...!
하는 수 없이 저는 금요일까지 그 친구의 리포트를 review 해주었답니다.
가벼운 보복을 하는 셈치고, 신랄하게 비판해주겠다며 읽기 시작했지만... 뭔가 심한 말이 떠오를 때마다 그 친구 얼굴도 함께 떠올라서 이리저리 둥글게 둥글게~ 빙글빙글 돌아가며~ 쓸 수 밖에 없었죠. ^^;;
역시 Peer Review 는 한국인들에겐 잘 안 맞는 것 같아요. ㅠ_ㅠ

미국의 Peer Review 이야기, 어떻게 보셨나요?
피로회복, 원기충전되는 즐거운 일요일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