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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come to California

한국인 이웃에게 화가난 미국 직장 동료를 달랬던 사연

by 이방인 씨 2020. 2. 13.

로 어제 있었던 일입니다. 결혼한지 얼마 안된 새색시 직장 동료가 제게 와서 씩씩거리더라구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서 너한테 물어보려고 왔어.
어제 내 한국인 이웃이 내게 이런 행동을 했어!

Uh-oh...

갑자기 왜 제가 긴장이 될까요. 짐짓 태연한 척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습니다.

우리 옆집에 사는 Mrs. Choi가 어제 나를 보더니
갑자기 내 얼굴을 자기 손으로 감싸더니 이런 말을 하잖아!

"Melissa, your face fat. Stop eating food."
 멜리사, 네 얼굴이 뚱뚱해. 그만 먹어.

OH NO, 오~~~~~~ 노~~~~~~~ 


듣자마자 저는 사색이 되었습니다. 이런 말과 행동은 미국에서는, 정말 어지간히 막역한 사이가 아니고선, 절대로 해서는 안된답니다.

우선, 신체접촉에 민감한 미국에서는 친하지 않은 사이에서는 일절 다른 사람의 몸에 손을 대지 않습니다. 직장 동료끼리도 어깨조차 안 건드릴 정도인걸요. 게다가, 외모/신체에 대한 평가는 금기 중에서도 금기! Mrs. Choi라는 이 분은 정말이지 미국인에게 굉장한 실례를 콤보로 시전하신 거지요. 

하지만, 한국식 정서로 보면 크게 놀랄 일은 아니지요. 이 최여사님이 연배가 높으신 분이라는 가정을 하면 아마 이런 의도로 하신 말씀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이구~ 새댁, 얼굴이 달덩이야. 살 좀 빼야겠어~"

물론 이쪽도 절.대. 기분 좋은 말은 아니지만, 한국에서는 있을 법한 시나리오지요. 아마 주변에서 어르신들께 비슷한 말을 들어본 경험이 있는 한국인도 꽤 찾아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한국인인 제가 들었어도 속으로 "최여사님, 제 살은 제가 알아서 할테니 신경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라고 볼멘소리를 했을 것 같은데, 미국인인 멜리사는 모르긴 몰라도 굉장히 불쾌했을테죠.

멜리사가 씩씩거리면서 이렇게 묻더군요.

이게 한국에서는 괜찮은 일이야?
그냥 내가 이해하고 넘어가야 되는 거야?

곧바로 화를 내지 않고, 제게 물으러 와 준 멜리사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저는 한국 문화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한국에서 타인의 외모에 대한 평가 또는 조언을 하는 것은 종종 일어날 수 있는 일이며 특히나 연장자 우대가 강한 문화 특성상, 연배가 높으신 어르신들은 나이어린 사람에 대한 배려가 조금 부족하실 때도 있다고 말입니다. 제 설명을 들은 후 멜리사는 화가 누그러지긴 했지만, 역시 기분은 나쁠 테죠.

요즘은 한국에서도 타인에 대한 외모 지적이나 평가를 하는 것이 실례라는 인식이 널리 퍼졌다고 들었습니다. 잘된 일이죠. 사실 제가 한국에서 살 때까지만 해도, 만인의 만인에 대한 외모지적이 광범위하게 허용됐었답니다. 한창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도 예외없이 자존감을 깎아내리는 표현들을 하던 시절이기도 했구요. 지금 돌이켜보면 타인의 마음의 상처를 헤아리지 않는 문화였던 것 같은데, 그 시절을 저는 어떻게 살아왔는지 모르겠어요. 하..하..핫..

미국에서는 타인의 외모에 대한 부정적 뉘앙스의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예의입니다. 특히나 비만인구가 많기 때문에 몸매에 관한 표현들에 엄격하지요. Fat (뚱뚱한) 이라는 단어는 타인을 묘사할 때 쓰는 것이 금기시되고, Chubby (통통한) 라는 단어도 매우 조심스레 사용합니다. 아예 타인의 몸매에 대한 어떤 말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더 많지요. 괜히 남의 외모에 관해 이런 저런 말을 하다가 큰일날 수 있거든요. 

한국에서 친한 사이에 흔히 들을 수 있는 이런 말도 미국에서는 실례에 속합니다.

"너는 살만 빼면 정말 예쁠 거야~"
"눈수술만 하면 연예인 되겠다~"
"너는 키만 빼면 완벽하다"

칭찬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알쏭달쏭한 외모지적. 미국인에게는 모욕으로 느껴질 수 있답니다. 내가 너의 외모를 평가하고 있다는 사실과 함께, 평가 결과 지금은 예쁘지 않다는 것을 암시하니까요. 

오랜 세월 미국에서 살면서 이 나라의 장단점을 많이 보고 겪었고, 모국인 한국의 장단점도 많이 되새겨볼 수 있었습니다. 분명 자랑스러운 점이 더 많은 한국이지만, 겉모습에 집착하고 평가하는 사회적 현상은 없어져야하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여러분, 오늘도 즐거운 하루 유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