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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come to California

전교생에게 한글과 태권도를 가르치는 미국 학교

by 이방인 씨 2012. 11. 5.

저는 며칠전 미주판 중앙일보에서 아주 놀라운 단신 기사를 하나 읽었습니다.


전교생에게 한글, 한국식 예절, 태권도, 봉산탈춤을 가르치는 미국 학교가 있다지 뭡니까!


게다가 더 놀라운 사실은 그 학교에 한국 학생은 단 1명도 없다는군요.
언뜻 들으면 이해가 안되는 이 일, 대체 무슨 까닭일까요?

모든 것은 이 32세의 젊은 교장 선생님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세스 앤드류 (Seth Andew) 라는 이 분은 Brown 대학을 졸업하고 선생님 일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교육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던 그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도 아이들을 가르쳐보고, 한국에서 원어민 교사 생활도 했었다네요.
그리고 한국에서의 경험은 그의 교육자로서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미국으로 돌아온 그는 2006년에 뉴욕에 Democracy Prep Charter School 이라는 학교를 설립했습니다.
미국내에서 교육수준이 낮기로 유명한 빈민가 할렘에 세운 이 학교는 설립 5년만인 지난해 뉴욕주 고교생 졸업시험에서 상위 5%안에 드는 명문으로 부상해 미국 교육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할렘가의 학교답게 전교생이 흑인과 히스패닉 아이들이라는데 뉴욕주 상위 5%의 성적이라니, 기사를 접한 저 역시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흑인과 히스패닉 학생들의 학업 수준이 어떻다는 것을 저 역시 경험으로 익히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미국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빈민가 학교의 공부와 거리가 먼 학생들의 모습이 실제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정말 엄청난 성과를 거둔 셈이죠.

Democracy Prep Charter 라는 긴 이름에서 Charter 스쿨이란 것은 자율형 공립학교를 뜻합니다.
Democracy Prep 은 하나의 학교 이름이 아니라 학교 재단으로서, 현재 뉴욕주에 모두 6개의 학교를 운영하고 있다는군요.
앤드류 교장은 6개 학교 모두에 한국어를 필수과목으로 지정하여 전교생이 한글을 배우는 것은 물론이고, 한국식 예절과 태권도, 봉산탈춤까지 가르치고 있다고 합니다.
그가 한국에 머무는 동안, 한국식 교육과 문화에 얼마나 깊은 인상을 받았는지 알 수 있죠.

 

이 학교에서 열린 "한국의 밤" 행사 때 봉산탈춤 공연 모습입니다.
한국인이 단 한명도 없는 학교에서 한국의 밤 행사라니...
이 얼마나 기묘하고도 기분 좋은 일인가요?  ^-^

 

앤드류 교장이 학교를 설립하면서 교육 개혁을 위해 세운 세 가지의 주요 목표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모든 학생이 학업에 최선을 다한다.

2. 모든 학생이 대학에 진학한다.


이 두가지 모두 미국 학교의 교육 이념과는 동 떨어진 한국식 교육방침의 영향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세번째는 참으로 미쿡스럽다고 할 수 있기에 재밌습니다.

3. 그리하여 세상을 변화시킨다!

(한국이라면 3번은 "그리하여 그 학생들은 의사나 변호사가 된다!" 쯤 될까요? ^^;;)

 

어찌보면 젊은 나이에 무모하게 시작한 개혁일지 모르겠으나 6개 학교가 거둔 성공은 미국 교육부에 강한 인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습니다.
미 연방 교육부가 Democracy Prep 이 도입한 한국식 교육법을 향후 5년간 전국 21개 학교로 확대하기 위해 910만 달러 (약 100억원) 를 지원하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계속되는 불경기 탓에 미 전역의 공립학교의 예산을 지속적으로 삭감해 온 연방정부가 한 학교재단에 이렇게 큰 지원금을 주는 것은 아주 이례적인 일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특별한 지원이 가능했던 데는 또 다른 친한파 미국인의 조력이 있었습니다.

미 연방 하원의원 찰스 랭글 (Charles Rangle) 입니다.

 

그 자신이 뉴욕의 할렘가 출신인 랭글 의원은 1971년부터 지금까지 쭉 하원의원석을 유지하고 있는, 미국에서 3번째로 장수하는 의원인데요.
바로 이 분이 연방 교육부의 지원 결정이 있기까지 많은 도움을 주셨다고 합니다.
랭글 의원은 1950년 한국전쟁에 참여하면서 한국과 인연을 맺었다네요.
전쟁의 상처로 폐허가 된 서울을 떠나오면서 늘 가슴이 아팠다는 그는, 한국식 교육열정이 할렘가에 새로운 "기적" 을 만들고 있다는 게 자랑스럽다는 말을 전했습니다.

사진은 손세주 뉴욕 총영사와 찰스 랭글 위원, 학교의 학생들과 세스 앤드류 교장 선생님입니다.
사진을 보면 가운데 서 있는 아이와 교장 선생님 모두 두 손을 꼭 모으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죠?
이것은 미국인들은 잘 하지 않는 포즈인데, 아마도 한국식 예절의 영향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한국을 경험한 많은 외국인들도 그렇고, 제 주변 친구들도 한국인의 예의범절을 정~말 좋아한답니다.
미국인 친구 하나는 저와 한국인 친구들이 어른께 하는 행동을 보고 "아주 우아한 태도" 라고 평하더라구요.
정작 요즘 우리 자신은 우리의 예절을 구시대의 유물 취급을 하는 것 같아서 아쉽습니다.

 

제가 그 동안 몇몇 글을 통해 밝혔듯이, 미국에 와보니 우리가 그토록 비판하고 바꾸고 싶어하는 한국식 교육법이 미국에서는 오히려 재조명되고 있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연설에서 한국 아이들의 학업에 대한 열의를 자주 언급한 것도 원인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학생들에게 지워지는 학업의 부담이 한국처럼 과도하면 안된다는 것도 분명합니다.
학생의 본분은 학업에 충실하는 것이라는 방침은 틀리지 않았으나, 정도를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겠죠.
또한 학업의 목적은 그저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이 아니라, 보다 의미있는 꿈을 이루기 위한 준비일 뿐이라는 사실을 아이들이 깨닫도록 도와주는 것이 어른들의 할 일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아 참, 이 학교의 또 다른 깜찍한(?) 이벤트가 있으니, 이 학교의 졸업반 학생들은 매년 한국으로 수학여행을 온다는군요!!
이것 참... 앤드류 선생님, 완전히 한국에 빠져버렸나봐요. ^--^

활기찬 한 주의 시작을 위해 즐거운 소식을 전해드렸는데,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 이 글은 미주판 중앙일보에 난 기사와 제가 조사한 추가 정보를 엮어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