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6일 이방인 일기
나는 오늘 내 위장과 개인면담의 시간을 가졌다.
일평생을 소화라는 작업에 목숨 걸며 근로해온 나의 위장은 내 신체 중 가장 성실한 장기이다.
일주일 전에 체했을 때 어머니께서 심하게 체했을 때는 굶는 게 최고라며 보리차를 한 냄비 가득 끓여주시고는 하루 정도 그것만 먹으라고 하셨다.
하지만 내 위장은 워커홀릭이기 때문에 그 말을 크나큰 모욕으로 받아들였다.
토하고 다음날 아침부터도 어서 빨리 일거리를 내려보내라며 나를 다그치는 것이었다.
그래서 먹.었.다.
위장의 몸보신을 위해 그 좋다는 브로콜리와 양배추를 넣은 죽을 넣어 주었다.
위장은 만족하는 듯 싶었지만 이번에는 혀가 난동을 피우기 시작했다.
맛.이. 없.어.서.
이들의 주인인 나는 최악의 상황에서 얻을 수 있는 최대치의 행복을 위해 온갖 시도를 다 해 보았다.
파마잔 치즈가루를 솔솔 뿌린 응용부터
김을 이용한 애잔한 몸부림과
명란젓을 살포시 얹은 강렬한 색감의 조화까지
이리하여 첫 날은 대충 무마됐지만 이튿 날, 또 냄비에 담긴 죽을 발견하곤 이제는 눈까지! 완강히 저항하기 시작했다.
동시다발로 터지는 신체 장기들의 아우성을 견디지 못하고 나는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해 주었다.
구웠노라
뿌렸노라
그리고 아무 말도 없었다......
죽만 먹으라고 신신당부하신 어머니는 와플의 흔적을 보시곤 혀를 끌끌 차시며 그러다 또 탈나면 어쩌냐 걱정을 하셨지만 일중독 내 위장은 실컷 일하고 나더니 언제 아팠냐는 듯 팔팔해졌다.
요 며칠동안 나와 내 위장이 겪은 일들로 왠만한 3부작 영화는 나올 것 같다.
제 1부 - 마침내 때가 되었다!
『식탐의 역습』
제 2부 - 인간이기를 포기한 존재!
『개 같은 회복력』
제 3부 - 지독한 놈이 돌아왔다!
『식욕의 귀환』
특별한 일이 있어 일기를 쓸 때마다 나는 어쩐지 내 자신이 무서워진다...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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