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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ything & Everything

비(非)천주교 신자가 교황에 관해 궁금한 몇 가지

by 이방인 씨 2013. 3. 12.

요즘 카톨릭 세계는 교황 사임이라는 전대 미문의 사태를 맞이했죠?
교황은 본래 종신제로, 아직 살아있는 교황이 직책을 내려놓은 건 600년만이라고 합니다.
새로운 교황을 뽑기 위한 추기경들의 회의 콘클라베 (Conclave) 가 바로 오늘 시작됐습니다.
모두 115명의 추기경이 투표를 하는데 이 중 2/3 가 넘는 표를 얻으면 교황으로 선출된다네요.

저는 카톨릭 신자가 아니지만 제가 살고 있는 캘리포니아에는 대표적 카톨릭 신자들인 히스패닉계 인구가 많아서인지 관심이 꽤 높더라구요.
배경 지식이 거의 없는 저는 이것 저것 궁금한 게 많았기에 조금 조사를 해 보았답니다.
혹시 여러분들 중에도 궁금하셨던 분이 계실 수도 있기에 몇 가지 써 보겠습니다. ^^

 

1. 교황을 왜 Pope 라고 부를까?

영어로 교황을 Pope 라고 하죠?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를 영어권에서는 Pope Benedict XVI 라고 하는데요.
대충 감 잡은 분들이 계시겠지만 Pope 는 라틴어로 '아버지' 라는 뜻입니다.
서구권에서는 카톨릭 사제들을 Papa 혹은 Father 라고 부르잖아요.
교황은 전 세계 카톨릭의 수장이지만 작게는 로마의 주교 (Bishop of Rome) 직책 역시 수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2. 교황으로 선출되면 왜 새로운 이름을 가지게 될까?

이번에 선출되는 교황 역시 새로운 이름을 가지고 임기를 시작하게 될텐데요.
사제 시절에도 세례명을 썼는데 왜 교황이 되면 굳이 새 이름을 고르는 걸까요?

지금과 달리 카톨릭 초기의 교황들은 사제 시절의 이름을 그대로 가지고 교황이 되었다고 해요.
본래 카톨릭 문화권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태어날 때부터 이미 세례명도 함께 받으니까요.

그런데 533년에 교황으로 선출된 사람의 이름이 머큐리우스 (Mercurius) 였다고 합니다.
Mercury (로마의 신 머큐리 = 그리스의 신 헤르메스) 에서 온 것이 분명한 Mercurius 라는 자신의 이름이 너무 '이교도적' 이라고 느낀 그는 이름을 바꾸기로 결심합니다.
그리하여 선택한 이름이 '요한' 이었는데, 이미 같은 이름의 교황이 한명 있었기 때문에 자연히 그는 요한 2세가 되었답니다.

그 후로 교황들은 이름을 바꾸고 싶은 이는 바꾸고 그대로 쓰고 싶은 사람은 그대로 쓰는, 이도 저도 아닌 관습을 유지하다가 1555년 마르첼로 2세 이후로는 모든 교황이 선출되면 새 이름을 고르는 현 방식으로 굳어졌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교황 이름 뒤에는 늘 숫자가 붙어서 같은 이름의 교황들이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요.
이번에 사임한 교황도 베네딕토 16세니까 이미 그 전에 15명의 교황이 베네딕토라는 이름을 썼다는 뜻이죠.
그런데 지금까지 265명의 교황이 있었지만 딱 한 번밖에 없었던 이름이 있습니다.

바로 '베드로' (Peter) 랍니다.

예수의 가장 가까운 제자인 베드로는 예수께 천국의 열쇠를 직접 받았다고 전해지는 카톨릭 초대 교황이죠.
베드로라는 이름을 선택하면 안된다는 규칙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간 모든 교황들이 감히 그 이름을 욕심내지 못 했다고 하네요.
그래서 앞으로도 교황 베드로 2세가 나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합니다.

 

3. 사임한 교황은 어떻게 불리게 될까?

근 600년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보니 사람들은 혼란스러워졌습니다.
본래 죽은 뒤에야 자리에서 내려왔던 전임 교황들은 사후에도 그대로 Pope라는 존칭으로 불렸습니다.
그런데 사임한 베네딕토 16세는 도대체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이제 새로운 교황이 선출될 텐데, 지금이 중세 혼돈의 시기도 아니고 한 세계에 교황이 2명이 존재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는 결국 이름 앞의 Pope는 떼어내고 '베네딕토 16세 명예교황' (Benedict XVI, emeritus pope) 라고 불리게 된다고 합니다.

 

4. 교황선출회의 콘클라베란 무엇일까?

오늘 열리는 콘클라베(conclave)는 교황을 선출하는 유일한 방식입니다.
이탈리아어로 '빗장을 잠그다' 는 뜻으로 전통적으로 추기경들이 새 교황을 선출할 때 교황청의 모든 문과 창문을 꽁꽁 걸어 잠근 채 극비로 투표를 한데서 유래한 명칭입니다.

콘클라베는 13세기의 교황 그레고리 10세가 처음 제정했다고 하는데 새 교황을 선출하는 시간을 단축하기 위한 목적이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레고리 10세가 교황으로 선출되기까지 논의가 무려 3년이나 지속되었기 때문입니다.
3년이나 피를 말리며 기다리던 그레고리 10세는 선출되자마자 콘클라베를 만들었습니다.

추기경들을 문과 창문을 걸어 잠근 교황청 안에 가두고 하루에 한번 빵과 포도주만 먹이면서 어떻게든 교황을 선출해낼 때까지 밖에 내보내주지 않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진행이 빨라졌다는군요. ㅋㅋㅋ
외부와의 접촉은 일체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교황 선출에 성공하면 교황청 굴뚝으로 하얀 연기를 내보내고, 실패하면 검은 연기를 내보내는 것으로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는 신자들에게 알려주었다고 하네요.

115명의 추기경들의 표 중 2/3 이상을 얻은 이가 나오지 않으면 다음날 또 다시 오전과 오후에 각각 한번씩 두번 투표를 진행하게 됩니다.
둘째날도 2/3이상 득표자가 나오지 않으면 또 그 다음날 다시 투표를 하게 되죠.
그러나 근 100년간 콘클라베가 5일 이상 지속된 일이 없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새 교황은 늦어도 이번 주 안으로 선출될 것이라 예상된다는군요.

 

5. 교황의 연봉은 과연 얼마일까?

여러분은 과연 얼마 정도라고 생각하세요?
정답은...

0원입니다~

당연하게 들리죠?
그런데 사실 정해진 액수의 연봉을 받는 것보다 공식적 연봉이 0원인 것이 더 좋은 것 같습니다.
교황청이 2001년 뉴욕 타임즈에 밝힌 내용을 보니 전 세계 1억 2천여명의 카톨릭 신자들이 잊지 않고 교황과 교황청에 기부금을 보낸다네요.
2010년에도 미국 전역의 주교들이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생일을 기념하여 약 9억원의 돈을 바티칸에 기부했다고 합니다.
보낸 이는 주교들이지만 기부금의 출처는 물론 일반 신자들이겠지요.

 

6. 교황은 왜 빨간 신발을 신는 것일까?

여러분, 빨간 구두가 교황성하의 정장이라는 사실 알고 계셨어요?
하얀 옷이야 종교적 의미를 지닌 것 같고 성스러워 보이니까 특별한 의구심이 들지 않는데 도대체 온통 하얀 옷에 새빨간 신발을 신으시는 이유가 무엇인지 저는 너무 궁금했답니다.

 

 

 

이렇게 정장을 갖추실 때는 늘 빨간 신발을 신으시는 것을 볼 수 있는데요.
새하얀 옷에는 너무 튀는 것 같은 이 빨간 신발은 언제부터 신으셨을까요?

빨간 신발의 전통은 고대 로마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오직 신분이 높은 사람들만 빨간색을 사용할 수 있었다고 하네요.
비잔틴 제국 시절에는 오직 세 사람만이 빨간 신발을 신을 수 있었는데 바로 황제, 그리고 교황이었습니다.
고대 전통을 따라 중세시대에도 교황은 빨간색 의복을 많이 입었는데, 1566년 교황에 선출된 피우스 5세는 하얀색 수사복을 입는 도미니쿠스 수도회 출신이었기 때문에 본인이 교황이 된 후 교황 의복의 빨간색을 대부분 흰색으로 교체했다고 합니다.
그 때 흰색으로 바꾸면서 신발이나 짧은 망토 등의 몇 가지는 빨간색 그대로 남겨두었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온통 하얀 옷에 빨간 신발을 신게 된 것이죠.

 

 

7. 교황이 끼는 엄청난 금반지는 무엇일까?

교황성하께서 오른손에 엄청나게 굵은 금반지를 끼고 계신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는데요.
이것은 '어부의 반지' 라고 하는 교황의 상징입니다.
추기경들이나 사제들이 교황을 알현할 때 이 반지에 입 맞추는 것이 관례죠.

 

 

 

초대 교황 베드로의 직업이 어부였다는 사실 알고 계시죠?
그래서 예수의 제자였던 12 사도들은 '사람을 낚는 어부' 라고 불렸기 때문에 그것을 의미하는 반지랍니다.
하나의 반지를 대물림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교황이 선출될 때마다 그 이름을 새겨 제작합니다.

 

이것은 1878년 선출되었던 레오 13세의 어부의 반지입니다.
그물로 낚시를 하고 있는 베드로의 모습과 교황 레오 13세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네요.

 

기본적으로 새겨지는 그림은 모두 똑같지만 반지의 스타일은 각 교황의 취향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제작되며 정식 반지 말고 편하게 매일 끼고 다닐 수 있는 약식 반지도 별도로 제작할 수 있다네요.
교황 사후, 그가 끼던 반지는 교황청의 은망치로 증인이 보는 가운데 부숴버린다는군요.
사임하는 베네딕토 16세의 반지도 같은 운명에 처해질 것이라고 합니다.


USA Today의 기사를 보니 오늘 열리는 콘클라베에서 하얀 연기가 뿜어져 나오기를 기대하지 말라네요.
전통적으로 콘클라베 첫날 교황이 선출된 역사가 없기 때문입니다.
누가 새로운 교황으로 선출될지 모르겠지만 진정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어주시길 바래봅니다. ^^

여러분,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