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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come to California

미국 서민이 한국 서민보다 살만한 이유

by 이방인 씨 2012. 9. 14.

2012년 요즘 세상, 태생으로 운명이 결정지어지는 신분제는 이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구시대의 유물이 되었지만 빈부에 따른 계급의 격차는 오히려 더 커져가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부자 나라라는 미국에도 극빈층은 존재하고, 거리의 노숙자들도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한 푼 두 푼에 고민하는 서민들도 마찬가지죠.

한국에서 살 때도 서민층을 벗어나 본 적이 없고, 미국에서도 신분상승과는 거리가 먼 평범한 서민으로 살고 있지만, 어쩐지 제가 느끼기에는 미국 서민이 한국 서민보다는 사정이 나은 것 같습니다.
미국 서민이 더 잘 산다는 뜻이 아니라, 서민이라 받게 되는 스트레스가 상대적으로 적다는 말입니다.
이건 저 뿐만 아니라, 미국의 많은 교포들이 공감하는 이야기랍니다.

과연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한국인의 민족성, 경쟁이 심한 사회, 타인을 의식할 수 밖에 없는 문화 등등 이미 많은 분들이 말씀해주신 다양한 이유들이 있겠지만 오늘 제가 이야기하려는 이유는 그 궤를 조금 달리합니다.

 

미국 서민이 한국 서민보다 살만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미국땅이 넓어서랍니다.

 

한국의 강남처럼 미국에도 부촌의 상징으로 꼽히는 지역들이 있습니다.
서부라면 캘리포니아의 Beverly Hills 겠고, 동부라면 뉴욕의 Hampton 지역입니다.


 

 베벌리 힐스의 한 저택.jpg

 

햄튼의 저택. jpg

 

이런 대저택들과 맨션, 휴가용 개인 리조트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동네를 형성한 곳이 바로 베벌리 힐스와 햄튼입니다.
물론 강남의 손 꼽히는 요지에 있는 아파트들의 가격은 이 동네의 집 가격에 육박하거나 혹은 더 비쌀 수도 있겠죠.
하지만 숫자는 제쳐두고, 당장 눈 앞에 보이는 물리적 부(富)로 따지자면 미국 부자들이 서민들의 기를 더 팍팍 죽이고 있는 셈입니다.
또한 보유 재산으로 봤을 때도 미국 부자들이 한국 부자들보다 스케일이 큰 것이 사실이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서민들이 실감하는 빈부격차는 예상보다 작은데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미국 부자들은 서민들 눈에 띄지 않기 때문이죠.

 

일부러 피해다닌다는 것이 아니라, 부자들의 동네가 서민들로부터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어서 그렇습니다.
저도 캘리포니아에서 13년을 살았지만, 베벌리 힐스? LA 구경 갔을 때 먼 발치에서 본 게 다입니다.
하물며 뉴욕에 있는 햄튼? TV에서 보고 들은 게 다구요.
같은 뉴욕에 살면서도 햄튼 구경도 못해본 사람도 많을 것이라는 게 제 확신입니다.
요컨대 미국 서민들에게 자신과 확연히 차이가 날 정도의 부자들은 달나라 있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말입니다.
저랑 제 미국친구가 언젠가 이런 시니컬한 농담을 주고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 뭐더라, 헐리웃 배우 누가 새로 샀다는 그 저택 그거 CG 아냐? 도널드 트럼프가 산다는 그 집도 그거 실사 아니지? 도대체 그런 집들이 실제 존재할 수가 있나? 있다고 해도 본 적이 없으니 믿을 수가 있어야지.

 

미국의 상위 1%가 나머지 99%를 합친 것보다 더 부자라는 사실을 머리로는 잘 알고 있고 충분히 분개하고 있지만, 한편으로 대다수의 사람들의 주변에는 전부 같은 서민들만 살고 있습니다.
상식으로 알고 있는 빈부격차와 실제로 체감하는 빈부격차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또한 머리로 분노하는 것과 가슴으로 좌절을 느끼는 것도 크게 다르죠.

반면, 한국의 상황은 전혀 다릅니다.
아직도 존재한다는 서울의 달동네에 사는 사람도 버스나 지하철만 타면 쉽게 강남에 닿을 수 있습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도 일 때문에 청담동에 들락거릴 수도 있죠.
자가용 사는 게 소원인 사람들도 강남 대로변에 구경만 가면 말로만 듣던 외제차들을 질리게 볼 수 있습니다.
장동건 고소영의 빌딩이 어디 있는지도 알고, 4-50억을 호가한다는 아파트도 쉽게 찾아갈 수 있고, 접촉사고 날까 벌벌 떨며 피해야한다는 외제차도 거리에 많죠.
혹시 서울이 아닌 지방에 사는 사람들이 그 좋은 구경(?)을 놓칠까 염려스러워인지 각종 미디어에서는 허구헌날 무슨 무슨 연예인의 집, 누구 누구의 호화로운 일상을 보여줍니다.
지금 내 현실로는 꿈 속에서나 살아볼만한 인생을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의 다른 누군가는 실제로 살고 있다는 얘기죠.

 

한국 서민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이 훨씬 클 수 밖에 없지 않을까요?

 

견물생심이라는 말도 있듯이 물욕은 눈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아요.
사람인 이상, 누군가 내게 없는 것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면 욕심이 나고 그것을 가질 수 없는 현실이 못마땅해지잖아요.
차라리 안 보고 살면 그런 일은 없을 텐데 말이죠.
평생을 일해도 못 먹는 감이라면 아예 찌를 수도 없는 머나먼 곳에 있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한국땅이 좁은 것이 안타까운 또 하나의 이유라면 이유일까요...

아예 눈을 감고 사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겠지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 이 글은 양국의 상황을 일반화하고 있지 않으며, 어느 한 쪽을 우위에 놓기 위해 작성된 것이 아님을 밝힙니다. 또한 여러가지 이유들 중 하나를 제 나름대로 생각해 본 것이니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