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Welcome to California

미국인들의 의외의 모습 - 그들의 효도에 대하여

by 이방인 씨 2012. 5. 30.

오늘은 미국인들의 의외의 모습 세번째 이야기입니다.
첫번째, 두번째는 전편을 참고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요.

2012/05/04 - 내가 만난 미국인들의 의외의 모습
2012/05/05 - 미국인들의 의외의 모습-그들의 순진함에 대하여

한국인들의 빼놓을 수 없는 필수 미덕은 바로 효(孝)가 아닐까 싶은데요.
낳고 길러주신 부모님은 물론이고, 배우자의 부모님인 시댁이나 처가댁에 대한 효행 역시 참으로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죠?
얼마전 어버이날에 인터넷이 실린 기사를 보니, 한국에서는 어버이날에 자식들이 부모님께 더 좋은 선물을 해드리고 싶은 마음에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하더라구요.
이처럼 한국인들은 부모에 대한 도리를 무엇보다 중요히 여기는 반면, 미국인들은 부모는 부모, 나는 나 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는 선입견이 있는데요.
헐리웃 영화나 미드를 보면 노인분들이 대부분 혼자 살거나 요양원에서 지내는 모습으로 등장하기 때문이죠.
저 역시 그런 인식을 가지고 있었고, 또한 살아보니 그것이 사실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어디나 예외는 있고, 모든 것은 사람나름이라고들 하죠?
오늘은 제가 만나본, 한국인들 못지않게 효심이 충만했던 미국인들에 대해 소개하겠습니다.

첫번째 - 언제나 유쾌상쾌통괘 호탕한 그녀, Terry

Terry 는 제가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 만났던 단골 손님입니다.
한 눈에 봐도 풍채좋고 넉넉한 미국 여성인데, 목소리가 어찌나 걸걸하고 큰지 한국식 표현으로 하자면 '기차 화통' 을 한 서너개쯤 드신 것 같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Terry는 트럭 운전수입니다.
미국의 Trucker 라 하면, 도로에서 만나면 겁이 날 정도로 거대한 트럭을 몰고 미국 동서부를 잇는 장거리를 운전하지만 테리는 돈을 적게 받는 가까운 거리로만 다닙니다.
테리에게는 보살펴드려야하는 부모님이 계시기 때문이죠.
테리의 부모님은 두 분 모두 여든에 가까운 나이신데 노환으로 건강이 좋지 않으십니다.
테리가 처음으로 식당에 찾아온 것도 부모님이 좋아하는 음식을 포장해 가기 위해서였죠.
미국에서는 드물게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테리는 같은 미국인들로부터 이해받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성인이 된 자녀와 부모가 함께 사는 것이 드문 미국에서는 늙은 부모님이 자식과 사는 것을 불편해하시기도 하기 때문이죠.
보통 미국인들처럼 테리도 18살이 되면서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해서 혼자 살다가 십여년전부터 부모님을 모시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부모님이 몸 상태가 좋은 날은 두 분 다 모시고 식당에 와서 밥을 먹고 가고, 그렇지 않으면 혼자 와서 꼭 포장을 해갑니다.
제가 식당에서 일한 3년 동안 테리는 단 한 주도 거르지 않고 그 식당을 찾았습니다.
일주일에 한번은 꼭 부모님이 좋아하는 그 음식을 사드린다고 하더라구요.
어떤 날은 지금 막 트럭 운전을 끝내고 퇴근한 상태라 눈에 띄게 지치고 꾀죄죄한 몰골일 때도 있어서 제가 매주 이렇게 거르지 않고 오기 힘들지 않냐고 했더니 테리는 예의 그 걸걸한 목소리로 쩌렁쩌렁 울리게 말하더군요.

우리 부모님이 이거 정말 좋아하시거든. 맛있게 드시는 거 보면 나도 행복해져~

 

두번째 - 이런 교장선생님이면 좋겠어~ Dena

Dena 는 예전에 도자기 공예 수업을 받을 때 알게 된 백인 아주머니인데 초등학교의 교장선생님입니다.
그녀는 원래 오클라호마주에서 나고 자랐는데, 젊은 시절 여행왔던 캘리포니아에 푹 빠져서 선생님으로 첫 직장을 캘리포니아에 잡고, 교장선생님이 될 때까지 머물고 있습니다.
그녀의 부모님과 형제들은 모두 아직 오클라호마에 살고 있었는데, 8년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디나는 혼자 남은 어머니를 캘리포니아로 모셔와 같이 살게 되었답니다.
사실 땅이 넓은 미국에서는 외국이 아니라 멀리 떨어진 주로 이사만 가도 문화충격을 느낀다고 할 만큼 각 지역의 문화가 다른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왕 어머님을 모실거라면 익숙한 고향에서 다른 형제들이 모시는 게 좋지 않을까 싶기도 했죠.
그 문제에 대한 디나의 답은 이러했습니다.

다른 형제들은 어머니랑 함께 살기 싫다고 했어.
난 어머니랑 같이 살고 싶지만 캘리포니아를 떠날 수는 없다고 했기 때문에, 어머니가 이리로 오신거야.

솔직히 이런 상황이라면 한국에서는 다른 형제들이 지탄을 좀 받겠죠?
하지만 미국에서는 디나는 물론이고 어머니도 다른 형제들을 탓하거나 서운해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이 당연한 일이고, 디나 역시 본인이 원한 것이니 별로 칭찬받거나 고맙단 소리를 들을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세번째 - 냉정한 얼굴에 가려진 형제 사랑, Robert

세번째는 효도는 아니지만 가슴 따뜻한 형제간의 우애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 분 역시 제가 식당에서 아르바이트할 때 만난 백인 남성분인데요.
로버트 역시 삼년간 질리게 본 단골이지만, 너무 차가운 얼굴과 표정 때문에 그다지 인상은 좋지 못했습니다.
하얀 백발을 한 가닥도 흐트러지지 않게 빗고 금속성 무테 안경을 끼고 옷은 늘 먼지하나 없이 깔끔한 노신사분인데다가 매너는 완벽하지만 웃지 않는 모습이어서 오실 때마다 내가 주문 받다가 뭔가 실수하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했거든요.
평소에는 늘 포장만 해가셨는데, 어느 날은 친구로 보이는 어르신 한분과 같이 오셨습니다.
친구분 역시 완벽하게 빗어넘긴 백발에 나무랄데 없는 깔끔한 옷차림이셨는데 로버트와 다른 점이라면 방긋방긋 웃으시고 나이가 어려보이신다는 것뿐이었습니다.
동행이 있는만큼, 포장이 아니라 식사를 하고 가시게 되서 제가 나름 친근하게 말을 붙여보았죠.
"로버트, 오늘은 친구분이랑 오셨나봐요? ^-^" 했더니,

친구가 아니라 우리형이오.

에? 로버트보다 한 다섯살은 어려보이는데 형이라굽쇼? 하며 속으로 벙 쪄 있는데, David 이라는 이름의 형님분은 어딘가 조금 아이같은 분이시더군요.
방긋방긋 웃으시는데 말씀은 어눌하시고, 제 앞치마단을 잡아 늘이는 장난을 하고 좋아하시니 말입니다.
로버트가 곧장 사과를 하면서 덧붙이기를, 형님은 자폐아시라더군요.
저는 조금 놀래서 할 말을 찾지 못해서, "It's so nice to meet you, David." 하고 말았죠.
의외의 사실을 알게 됐지만, 로버트는 역시나 너무 차가운 인상이어서 그 이상은 모르고 지냈는데 나중에 식당의 사장님께 사정을 전해 들었답니다.
로버트는 올해 68세이고, 데이빗은 71세인데 어릴 때 자폐판정을 받은 형을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로버트가 결혼도 하지 않고 홀로 돌보며 살아왔다고 하더라구요.
그토록 깔끔했던 데이빗의 머리와 옷도 전부 로버트가 매일매일 챙기는 것이라고 합니다.
사장님 말씀으로도 이런 일은 미국에서 정말 흔치 않다고 합니다.
부모님도 늙고 병들면 요양원에 모시는데 형제야 더 말할 것도 없으니까요.
그 이야기를 듣고 난 후 저는 차가운 겉모습만 보고 로버트를 무서워했던 제 자신을 맹렬히 반성했답니다.
역시 사람을 겉만 보고 판단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요!

오늘은 선입견을 뒤엎은 미국인들의 따뜻한 가족 사랑에 대해 써봤는데요.
아무리 18살 넘으면 독립하는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나라라고 해도, 이런 사람들을 만나면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답니다.
여러분 모두 좋은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