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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이야기

한국인들이 왜 교포를 색안경 끼고 보는지 알게 됐다

by 이방인 씨 2013. 8. 13.

제가 처음 블로그를 시작했을 때 매우 놀란 일이 두 가지 있습니다.

첫째, 악플이란 게 연예인/유명인에게만 달리는 게 아니구나.

블로그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사람들이 관심이 많은 유명인들이나 악플이란 걸 받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는 걸 알았죠.

둘째, 한국인들이 교포를 싫어하는구나.

이것도 블로그 활동을 하기 전에는 실감하지 못했던 일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제가 여기서 만날 수 있는 같은 한국 출신은 거의 다 같은 입장의 교포니까 본국에 있는 한국인들의 인식은 잘 모르고 있었죠.

제가 깨달은 이 두 가지 중, 전자는 이제 언급의 의미도 없을 정도로 온라인에 만연한 문제니까 각설하고 오늘은 후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블로그 초창기에는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서 이런 댓글 다는 사람들 때문에 황당했었습니다.
자체심의를 거쳐 약한 수준의 댓글만 공개합니다.

 

이런 댓글을 단 것을 보면 U.S F You라는 아이디의 F가 무슨 뜻인지 알만 하죠. 

아이 참... 난 지금 미국에 있다는데도 어딜 또 가라는 거야?
아예 이 태양계를 벗어나 주랴??

 

블로그 초창기에는 이런 사람들이 꽤 많았고 지금도 간혹이지만 있습니다.
처음에는 너무 황당해서 눈만 멀뚱멀뚱 뜨고 이런 댓글을 한참 쳐다보면서 화가 났었답니다.

   그럼 당신이 매일 본다는 그 양키랑 반양키한테 따질 일이지 왜 얼굴도 모르는 나한테 와서 분풀이신가요?


비슷한 종류의 교포혐오성 댓글이 달릴 때마다 (그것도 번번이 글의 내용과는 상관없는!) 한국인들은 외국에 사는 사람들에게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서 그러나 싶었습니다.
마치 한국인이라면 모두 한국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말고 한국 안에서 똘똘 뭉쳐 살아야 한다는 듯이 외국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교포들을 헐뜯고 미워하는 분들도 계셨거든요.

듣기 좋은 노래도 한두번이라는데 뜬금없이 공격당하는 일이 많다 보니까 저도 내심 그런 편협한 사고를 가진 본국인들에게 감정이 좋지 않았어요.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색안경 끼고 본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또 어느 날!

본국에 계신 분들의 시각으로 교포를 바라볼 수 있게 된 작은 사건(?)이 일어났답니다.
작년 쯤엔가 한 방문객이 제게 미국/미국인에 대해 나쁘게 말한다며 항의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일부러 미국을 비난하거나 나쁜 쪽으로 몰아간 기억은 없지만 그 분은 "내가 들어도 화가 나는데 미국인이 들으면 얼마나 화가 나겠냐?"고 하시기에 그냥 "미국 좋아하시는군요." 하고 말았습니다.
그랬더니 갑자기 본인이 '미국인'이라면서 더 화를 내더라구요.
앗, 정말로 미국인이면 제 글을 읽고 외국인이 흉 보는 것 같이 느낄 수 있으니까 불쾌했을 수도 있죠.
그런데 그 분 아이디는 분명 'OOO Kim'이었고 장문의 항의글을 한글로 남긴 걸로 봐서 본인 말대로 '미국인'이라면 한인교포겠거니 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미국에서 태어났거나 아주 어릴 때 온 2세가 아니라 분명 1.5세일 거라 예상했죠.
아니나 다를까 그 분 글 속에 들은 내용으로 짐작하니 미국시민권 딴 지 몇 년 안된 교포인 것 같더라구요.

그 분은 그 후로도 집요하게 장문의 악플을 남겼는데 미국을 "내 나라"라고 부르더니 자기가 지금은 서울에서 교환학생으로 생활 중이지만 미국으로 돌아가면 반드시 유투브에 고발 동영상을 올려서 제가 한국의 온라인에서 미국을 어떻게 욕하고 있는지 미국인들에게 널리 알릴 거라 협박인지 엄포인지 어쨌든 길길이 뛰더군요.

그래서 빵 터졌습니다. 


왜 웃었냐구요?
저도 교포기 때문에 교포들이 한국에 교환학생으로 가는 이유를 잘 알고 있습니다.
한국에 가 본 적이 없거나 너무 어릴 때 떠나온 2세라면 조국에 대한 환상과 호기심이 가장 큰 이유고 간혹 부모님이 한국어나 문화를 더 배워오라고 보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십대 초중반에 건너온 1.5세라면 한국이 어떤 나라고, 문화는 어떻고, 생활은 어떤지 다 압니다.
다 알면서 한국에 교환학생으로 간다는 것은 결국 본인이 원해서, 그것이 고국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든 다른 이유가 있든, 자기가 좋아서 가는 겁니다.
다만 대학 시절 1-2년만이라도 한국에서 지내고 싶기 때문에요.
그래서 가 놓고는 한국에서 '나는 미쿡인' 드립 치면 어느 한국인이 환영하겠습니까.

오호라~ 그러니까 너는 미쿡인인데 단물 빼 먹고 가려고 한국에 왔다는 것이뇨?


물론 스스로 미국인이라고 생각해도 얼마든지 한국에 갈 수 있지만 '내 나라는 미쿡'이라고 굳이 요란법석 떨 것 까지야...
거기에 더해 저기 댓글단 사람 말처럼 '잘난 척'까지 해대면 정말이지 답도 안 나오는 재수없는 교포의 완전체가 되는 거겠죠.
사실 저는 이 어이없는 미쿡인 교환학생을 알기 전에는 이런 상황을 잘 몰랐답니다.
제가 교류하고 지내는 본국인이라고 해 봤자 어린 시절 학교 친구들 뿐이니 이런 갈등을 빚을 만한 일이 없었거든요.
꽤 오래전에 잠시 한국에서 지낼 때도 친척들과 친구들 및 일 관계된 몇몇 사람들만 알고 지냈구요.
이렇게 시간이 지나서야 일부 교포들이 한국에 나가서 본국인들에게 반감을 살 만한 행동을 한다는 것을 알았고 비로소 한국인들이 색안경을 끼고 교포를 보는 이유를 조금이나마 알게 됐습니다.
혹시나 저도 한국에 나갔을 때 생각없이 재수없게 굴었던 것은 아닐까 되짚어보게 되구요.

그래도 꼭 말씀 드리고 싶은 게 있다면...

교포라고 다 그런 건 아니예요.  


교포들의 정체성 문제는 개인의 선택이고 타인이 관여할 일이 아니긴 합니다.
스스로 미국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한국인으로 남는 사람들도 있고, 경계인이 되길 원하는 사람들도 있죠.
하지만 본인을 미국인으로 정의내린 교포라고 해서 다 한국인들에게 거들먹거리는 건 아닙니다.
그런 건 정체성이 아니라 성향의 문제거든요.
한국에도 남에게 잘난 척하고 뻐기길 좋아하는 사람들이 분명 있잖아요?
그런 성향의 사람은 어느 상황, 어느 조건에서건 비슷한 행태를 보이겠죠.
혹은 아직 어린애들이 진짜 '잘난 것'과 '잘난 척'을 구분 못해서 벌어지는 일이거나요.
교포들 중에서도 원래 그런 사람들이 '미쿡에 산다'는 상황을 이용하는 것 뿐이지 '미국에 살기 때문에' 그런 성향으로 바뀌는 건 아닙니다.

안 좋은 선례들을 보고 들으셨기 때문에 본국에 계시는 분들이 선입견을 가지고 교포를 대하시는 것도 이해합니다만 의외로(????!!) 정신 똑바로 박힌 교포들도 많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저 역시 덮어놓고 교포를 혐오하는 건 본국에 계신 분들 중의 일부일 뿐이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여러분이 어디선가 재수없는 교포를 직접 봤을 때! 그 사람에게 일격을 날리시는 건 매우 권장하겠습니다겪어보지도 않고 모든 교포들을 색안경 끼고 보시는 일은 없기를 바래 봅니다.

오늘 새벽 한국 웹서핑을 하다가 재미교포 혐오성 댓글들을 읽고 조금 슬퍼져서 급히 몇 자 적습니다.
여러분,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