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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이야기

재미교포가 10년전 서울 갔을 때 겪은 깨알같은 경험담!

by 이방인 씨 2013. 2. 10.

한국은 설날 아침이라 과연 몇 분이나 제 글을 읽으러 와 주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그저 평범한 토요일을 보내고 있으니 오늘도 꿋꿋이 포스트 발행합니다. ^-^

며칠 전 문득 달력을 보니까 2013년이라는 숫자가 크게 눈에 들어오면서 또 옛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딱 10년 전이었던 2003년에 제가 이민 온 후 처음으로 한국에 나갔었거든요.
원래 고향은 강원도지만, 이제 강원도에 머물 곳이 없어졌기 때문에 한달 정도 서울에 있는 이모님 댁에 머물면서 서울 구경을 실~컷 했답니다.
그야말로 촌닭이 도시물 좀 마셔본 거죠. ㅋㅋㅋ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한국에 오랜만에 나간 데다가, 1년에 한번 갈까 말까 하던 서울에 한달이나 머물다 보니 깨알같은 에피소드들이 참 많았답니다.
오늘은 그 중에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억하고 있는 몇 가지를 들려 드릴게요.

 

첫번째 - 싸움을 부르는 얼굴

가장 친하게 지내던 고향 친구가 마침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그 친구를 자주 만났었는데요.
신촌이었던가...? 둘이서 함께 거리를 걷고 있는데 휴대전화 대리점 앞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가게 앞에 가판대를 세워놓고 휴대전화 신규가입 이벤트를 하고 있더라구요.
아르바이트 학생들로 보이는 2명의 남학생들이 오가는 사람들에게 가입권유가 한창이었죠.
그러다 저와 친구를 보더니 그 중 한 명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쁜 누나들, 핸드폰 보고 가세요~ 

 

당연히 영혼 없는 접대 멘트라는 걸 말하는 사람도, 듣는 저희들도 알고 있죠.
그런데 그 옆에 같이 일하던 다른 남학생은 아무리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어도 양심은 지키는 대쪽같은 성격의 소유자였나 봅니다.
정색을 하더니 그 말을 한 동료 알바생을 쳐다보며 이렇게 말하더라구요.

 

야, 아무리 물건 팔고 싶어도 솔직하게 살자. 예쁘진 않잖아!

 

뭐, 여기까지도 괜찮았습니다.
진짜예요! 괜찮으니까 저를 동정마지 마 thㅔ요!  엉엉

 

저랑 친구는 그냥 지나치려고 하는데 이번에는 먼저 말한 남학생이 정색하는 겁니다.

 

야, 그렇다고 나랑 저 누나들 다 무안하게 대놓고 그렇게 말하냐?! 싸XX 없게??

 

헉  손발 척척 맞게 협업해도 신규가입 몇 개 따기 힘들텐데, 너희들 왜 분열하고 그러니... 우리 얼굴은 신기하게 보일 순 있어도, 너희들 실적에 아무런 상관이 없어요! 얼른 정신 챙겨서 다시 일들 해요~~

 

저랑 친구는 그냥 길을 걸어가고 있었던 것 뿐인데 타고난 얼굴 탓에, 졸지에 우린 괜찮으니 그만들 하라고 뜯어말리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실로 싸움을 부르는 얼굴이 아닐 수 없습니다........

 

두번째 - 지하철은 무서워요!

강원도에는 지하철이 없고, 간혹 서울을 방문할 때도 버스나 자가용을 이용했기 때문에 지하철을 한 번도 타 본 적이 없었던 저는 10년전 그 때 지하철 탑승 첫 경험을 했는데요.
많이 타 보신 분들이야 노선도가 머리속에 그려질만큼 훤하시겠지만, 저는 그 사방팔방으로 뻗은 색색깔의 선들이 왜 이리 복잡하게 느껴졌는지요.
게다가 양방향으로 운행하는 것도 헷갈려서 플랫폼 찾느라고 계단 숱하게 오르락 내리락 했죠.

그러던 어느 날, 저는 강남역 앞에서 약속이 있어서 신촌역에서 지하철 2호선에 탑승했습니다.
러시아워가 지난 10시쯤이라 그랬는지 객차 안에 자리도 많고 조~용한 것이 절간 같더라구요.
그래서 타자마자 편안한 끝자리에 앉아 졸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눈을 딱 떴는데... 객차안에 덩그러니 저 혼자! 진짜 혼자!! 남아 있고 지하철은 어디론가 계속 달리고 있더라구요.
순간 완전 겁 먹은 저는 일어나서 다른 칸으로 걸어가 봤는데, 거기도 아무도 없는 거예요!!
저는 정말로 이 길고 긴 지하철안에 홀로 남겨진 것이었어요....
너무 당황해서 이게 어떻게 된 상황일까 수습이 안 되고 있던 그 때! 지하철이 멈췄습니다.
지하철은 정차했는데 문도 열리지 않고 창 밖으로 내다보니 무슨 역이라고 써 있지도 않고 밖은 터널처럼 온통 어두운 거예요.
그래서 제 머리속도 점점 동굴처럼 깊고, 어두워지고 있는데 저 쪽에서 구두 소리가 나더니 기장 아저씨가!! 나타나신 겁니다.
드디어 사람을 봤다는 기쁨에 저는 거의 울 뻔 했는데 아저씨는 한심하다는 목소리로 소리치시네요.

 

거, 젊은 아가씨가 정신을 어디다 두고 다니느라 못 내리고 있어?!!

 

알고 봤더니... 저는 두 가지 실수를 한 듯 해요.
하나는 신도림을 지나 강남역 방향으로 진행하는 2호선이 아니라 반대쪽 까치산으로 향하는 2호선을 탄 듯 했구요.
둘째는 Deep Sleep 하느라고 마지막역인 까치산에서도 못 내린 거였어요.

아저씨한테 실컷 혼나는 중에 저는 모기만한 목소리로 말을 했죠.

 

죄송해요. 제가 지하철을 오늘 3번째 타보는 거라 잘 몰랐어요.

아니, 어디서 왔는데 지하철을 3번째 타?

강원도요. ㅠ.ㅠ

어이구~ 멀리서 올라왔네!

네, 그래서 지하철 노선이 헷갈렸어요.

도림천에서 내려줄 테니까 다시 타고 가요.

네, 감사합니다.

 

하고 기장님은 다시 저를 도림천역에 내려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거기서 다시 신도림역으로 가서 이번엔 제대로 가는 2호선을 타고, 약속시간에 무려 20여분이나 지각을 하고 사정을 들은 친구한테는 세상의 갖은 비웃음과 모욕을 당했다는 이야기랍니다.

 

세번째 - 호객행위도 맞춤형이네...

이건 또 다른 친구와 생애 처음으로 명동 구경을 갔을 때 일이랍니다.
세상에... 저는 태어나서 지금까지도 명동 거리처럼 사람이 많은 곳을 가 본 적이 없습니다.
친구 손 놓치면 길 잃어버릴새라 열심히 붙어다니고 있었는데요.
당시에 친구는 한창 열애중이던 여대생이었는지라 엄청나게 예쁘게 꾸미고 다녔었고, 저는 뭐 미국에서 갓 나간 아이라서 맨 얼굴, 티셔츠, 청바지, 운동화 차림이었죠.

그런데 명동에는 사람도 많지만 호객꾼들도 많더라구요.
그 중 한 사람이 쓰~윽 다가오더니 긴 생머리와 미니스커트 차림의 제 친구에게 작은 전단지를 건네주며 속닥거리고 가더라구요.
"그게 뭐야?" 하고 봤더니 나이트 클럽에 오라는 광고물이더군요.
그래서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계속 갈 길 가는데 한 30분쯤 지났을 무렵 이번엔 어떤 남자가 저한테! 다가왔습니다.
그러면서 마찬가지로 전단지를 하나 주고 갔는데..........

 

헐 육질 좋다는 돼지갈비집 광고였어요. 

 

그래, 누울 자리 보고 다리 뻗으랬다고 친구는 나이트에서 즉석만남 하라더니, 나는 갈비 뜯으러 오라네...
호객행위도 맞춤형이렷다.

또 한번, 저를 동정하지 마 thㅔ요!

이 때 내심 크게 충격을 받았던 저는 2007년에 다시 한번 한국에 나가서 명동 갈 일이 생겼을 때 열심히 꾸미고 갔었답니다.
그 때는 이미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던 친구랑 같이 갔었는데 이번에도! 호객꾼이 다가오더라구요.
'이번에도 갈비집이면 명동 두번 다신 안 와!' 하고 있는데 건네받은 것은 전단지가 아니라 작은 명함이었어요.
겨울연가 배용준의 얼굴이 그려진 명함이었는데 이름 석자만 달랑 써 있길래 이건 도대체 어떤 가게를 선전하는 거지?? 하고 있는데 호객꾼이 귀에다 살짝 속삭이더라구요.

 

호빠예요.

 

저는 처음에 이 말을 못 알아듣고 "무슨 오빠요?" 하고 되물었는데 옆에서 친구가 팔을 잡아 끌면서 복화술로 "호스트바라고! 그냥 빨리 가자." 하길래 황급히 벗어났답니다.

아놔~ 이거야 원... 갈비집에서 호스트바로 바뀐 건 울 일이야, 웃을 일이야...바람났어

 

이렇게 세 가지 에피소드가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제 뇌리에 남아있는 서울의 기억이랍니다. ㅋㅋㅋ
여러분 재밌게 보셨나요?
혹시 믿지 못하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지만 위의 에피소드들은 100% 레알 실제 경험담임을 밝힙니다.
실화가 아니었더라면, 아니 제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의 실화였더라면! 참 좋았을 걸 그랬어요..............
즐거운 설 연휴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