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어머니와 뜨겁고도 차가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아마 공감하는 딸들이 많을 것 같은데 애증관계라고 할까요?
불효녀는 아니지만 효녀라고도 말할 수 없는 그저 평범한 딸이지만 어머니와 대화도 잘 통하고 친구처럼 잘 지내는 편입니다.
그런데 당~최 어머니를 이해하기 힘든 순간들이 있답니다.
바로 이럴 때죠!
1. 뭘 먹길래 살이 안 빠지냐구요?
저희 어머니는 손이 크신 걸로 유명하십니다.
음식을 할 때도 항상 대량으로 하셔서 먹고 먹고 또 먹고, 과일도 청과물 시장에서 박스 채로 사셔서 먹고 먹고 또 먹고 주전부리도 종류별로 차고 넘칠만큼 사셔서 먹고 먹고 또 먹죠.
어머니 손이 크시기도 하지만 식구들 먹성도 좋아서 비.극.적.으.로. 합이 잘 맞은 거죠.
어제는 어머니가 이걸 사오셨어요.
한 눈에 보기에도 지나치게 많다 싶은 모짜렐라 치즈
업소도 아닌데 2.26kg짜리
1/4컵 정량을 무려 80번이나 먹을 수 있는...!
그래서 저는 정체모를 음식을 만들었어요.
어머니께서 "딸내미는 뭘 먹길래 살이 안 빠질까~?" 하고 물으시면,
뭘 먹긴요... 엄마가 사오시는 걸 먹죠.
대체 뭘까? 내 체중의 1/3쯤 엄마 탓으로 돌리고 싶은 이 비겁함은?
2. 시대를 앞서간 여인
어머니께서 요리를 하시고 제가 보조 역할을 맡을 때가 있습니다.
가끔 완성된 요리가 마음에 안 드시면 제게 맛을 보라고 하시며 이렇게 물으시죠.
"어때? 조금 싱겁게 된 것 같지?"
이럴 때 저는 어머니 입맛이 정확하시겠지 싶어 그냥 수긍합니다.
"응, 조금 싱겁네."
그런데!!! 어머니의 다음 말은,
"아냐, 이 정도면 딱 맞아."
어느 때는 외출하시기 전에 이 옷 저 옷 입어보시다가 제게 또 물으십니다.
"이 바지에 이 블라우스는 조금 튀는 것 같지?"
이럴 때도 저는 어머니의 안목이 옳다는 뜻으로 대답합니다.
"응, 조금 튀긴 하네."
그러면!!! 어머니의 대답은,
"아냐, 그래도 이렇게 입어야 화사해."
이것이 말로만 듣던 여자어(語)보다 더 이해하기 힘든 우리 엄마어인가?!!
근래 한국에는 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는 대답만 하면 된다는 답정너라는 농담이 있더군요.
1952년생 박OO여사는 진정으로 시대를 앞서간 답정너시랍니다!
대체 뭘까? 엄마에게 자꾸 뒷통수 맞는 것 같은 이 기분은?
3. 병 주는 딸과 약 주는 아들
정체를 밝힐 수 없는 1952년생 박OO 여사는 막내딸 같은 성격을 가지셨습니다. (실제로는 아니시지만요.)
평소에 애교도 많으시고 어리광(?)도 있으셔서 식구들에게도 여기 저기 아프다는 말씀을 자주 하십니다.
지금까지 자가진단으로 "걸린 것 같다"고 하신 주요 질병만 열 가지 이상 되실 정도로요.
흥할 인간 말이, 저희 어머니는 불사신이실지도 모른대요!!
그런데 참으로 신기하고 오묘한 것은...
멀쩡하시다가도 제 얼굴만 보면 어디가 아프다 하시고, 또 그렇게 아프다 하시다가도 흥할 인간을 보면 다시 멀쩡해지시는 겁니다.
아프다 하셔서 약을 가져다 드려도 시들~하시고 병원에 가시자 해도 시들~하신데 흥할 인간이 "엄마, 어디가 편찮으세요?" 하고 몇 마디 아는 척만 하면 화타가 약이라도 지어준 것 마냥 금세 괜찮아지십니다.
저만 보면 어디가 아프고 뭐가 힘들다며 하소연을 늘어놓으시다가도 흥할 인간이 나타나면 인생의 고단함이 다 사라지기라도 하는 건지 아니면 아들이 걱정하는 게 싫으신 건지 얼굴이 확 피시는 게... 바로 눈 앞에서 벌어지는 신통방통한 Magic이랍니다.
아들 편애하는 불치병이 있는 우리 엄마, 태어난 순간부터 줄곧 2순위 자식으로 살아온 까닭에 어릴 때는 치열하게 투쟁도 했지만 이제는 약 주는 아들이 있으니 망정이지 병 주는 딸만 있었으면 엄마는 어찌 사셨을까 싶어 쓰게 웃고 맙니다.
하.지.만.
대체 뭘까? 지나가는 흥할 인간의 뒷통수에 슬리퍼를 명중시키고 싶은 이 충동은?
알쏭달쏭~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는 순간들이랍니다.
여러분은 어머니와 어떻게 지내시나요?
'Anything & Everything'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근본 없는 요리] 미국 이민 14년 만에 처음으로 직접 요리한 추수감사절 만찬 (100) | 2013.11.30 |
---|---|
덜렁대다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지! (52) | 2013.11.17 |
[유럽여행]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 직접 본 그 날을 잊지 못해 (41) | 2013.10.22 |
[유럽여행] 베니스에서 길을 잃은 여행자는 기념품을 샀다. 응?! (23) | 2013.10.14 |
[유럽여행] 베니스의 두 얼굴: 닭둘기떼와 노래하는 곤돌리에 (53) | 2013.10.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