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산 세월이 어느덧 15년입니다. 처음에는 낯설게만 느껴지던 미국인들이지만 지금은 친구, 지인, 동료, 이웃까지 제 주변 대부분이 미국인들이네요. 마음 편하게 느릿느릿 흘러가는 지역에서 살아서 그런지 지금껏 주변 사람들과 큰 다툼이나 마찰없이 잘 지내왔지만 가끔씩 '가까이 있어도 멀~게만 느껴지는' 순간들을 맞이하게 된답니다. 일상의 소소한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이질감 때문에 말이죠. 쓰려고 한다면야 수십가지는 댈 수 있겠지만 오늘의 주제는 바로 이겁니다.
나한테 아무것도 옮기지 마!
일찍부터 먹고 살 만해진 나라 사람들이라 미국인들은 위생관념이 철두철미합니다. 제가 느낀 바를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세균공포증 + 병 염려증]이 지나쳐 강박증세를 보이는 것 같을 때도 있으니까요. 기침이나 재채기를 할 때 주변인들로부터 되도록 멀리 떨어져서 고개를 돌리고 손으로 입을 막은 뒤 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아는 사람끼리도 신체접촉은 절.대. 함부로 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물론 Personal Space를 침범하는 행위가 '무례'의 범주에 속하기 때문이기도 하죠.)
타인의 신체를 소중히 대하고, 위생에 신경을 쓰는 것이야 물론 바람직한 일입니다마는... 한국적 정서를 간직하고 있는 저는 가끔 이들이 인간미 없이 군다고 느낄 때가 있답니다. 이런 순간에 말이죠.
첫번째 - 아프다고? 그럼 학교/회사 나오지 마!
얼마 전 인터넷 뉴스를 보니 한국의 직장인들은 아파도 기를 쓰고 회사에 나간다고 하더군요. 그 이유는 일이 많아서 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눈치가 보이기 때문이라구요. 그런데 미국의 학생들이나 직장인들은 아프면 학교/직장에 나가지 않는 것이 보통입니다. 상사도 아픈 직원이 회사에 나오는 걸 반기지 않구요. 아픈 사람이 걱정되어 집에서 쉬라는 것보다도,
혹시라도 다른 사람에게 옮길까 봐 싫어하지요.
감기로 아픈 직원이 회사에 나왔다가 동료에게 옮기기라도 하면 그게 더 큰일이거든요.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옮겨서 그들마저 아프게 되면 업무에 더 큰 차질이 생길 뿐더러, 아픈 직원이 회사에 나오면 자기들에게 옮길까 봐 걱정하는 나머지 직원의 불만이 장난 아니랍니다. 최악의 경우 (미국이기 때문에 가능한 시나리오지만) 회사에서 병을 얻어간 직원이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걸 수도 있지요. 그래서 미국 회사에서 가장 잘 먹히는(?) 조퇴/결근 이유는 "아파서"랍니다. 특히 "전염성"이라는 말이 앞에 붙으면
그~거~슨~
FREE PASS인 것입니다!
사실 저도 며칠 전에 두통 때문에 오후 근무 시간에 비실거린 적이 있는데, 제 상사가 저의 메롱한 얼굴을 보고 말씀하시길
"몸이 안 좋아? 혹시 감기 같아? 그러면 집에 가!"
혹시라도 제가 바이러스를 퍼트리면 머리 아파지는 건 제 상사이기 때문에 서둘러 집에 보내려고 한 거죠. 아플 때 상사 눈치 볼 것 없이 자유롭게 조퇴/결근할 수 있는 건 무척 좋지만 가끔 서운해질 때도 있답니다. 한국에서는 동료가 아프다고 하면 우선은 "어디가 어떻게 아파요? 괜찮아요?" 등등 아픈 사람 걱정을 먼저 해 주는데 여기는 누군가 아프다고 하면 이런 반응이...
"아프다고? 그러면 집에 가야지.
혹시라도 다른 사람한테 옮길 수도 있으니까"
그냥 얼굴만 아는 동료의 그런 반응은 개의치 않지만 나름 친한 동료마저 "워~ 워~ 나한테 옮기지 마~" (물론 농담조로 말하지만 그 안에는 분명 진심이 들어 있습니다. ^^;;) 할 때는 내심 서운하기도 하더라구요. 솔직히 저는 감기 정도는 다들 옮기고 옮으면서, 앓고 낫는 병이라 생각하는데 이 사람들은 회사에서 누가 기침이라도 하면 감기 옮을까 봐 전전긍긍해요.
아~주 그냥 감기 잡귀 물러가라고
난리굿이라도 하지 그러시오들~
두번째 - 고마운데 사양할게~
미국인들이 음식을 잘 나눠먹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미 언급한 적이 있고, 또 여러분들도 익히 아실 것 같은데요. 이들은 함께 식사를 하러 가도 자기 음식에 집중해서 먹곤 합니다. 여럿이 시킨 이 음식, 저 음식을 돌아가며 먹어보거나 하는 일이 일반적이지는 않죠. (물론 가족이나 친한 친구끼리는 나눠먹습니다만.) 또한 학교/회사에서도 자기 음식은 자기만 먹는 사람들이 더 흔한 것 같아요. 처음에는 이런 것도 개인주의 문화 때문인 줄 알았는데 쭈~욱~ 지켜보니 또 다른 이유가 있더라구요.
뭐가 들었는지, 어떻게 만들었는지도 모르는 음식은 사양할게~
이 정도로 민감한 미국인들이 실제로 있더군요. 저희 회사에서 potluck을 할 때도 자주 보곤 하는데 평소 위생관념이 철저하지 못한 동료가
단지 위생 뿐만 아니라 식재료 앨러지도 문제입니다. 혹시 다른 사람이 가져온 음식에 자신이 먹지 못하는 재료가 들어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평소 잘 아는 사이가 아니라면 다른 사람이 가져온 음식을 덥썩 먹지 않는답니다.
음식을 가져온 사람도 조심스럽기는 매한가지죠. 함부로 음식을 권했다가 먹은 사람이 탈이라도 나면 이만저만 골치아파지는 게 아니거든요. 운이 나쁘면 소송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의 음식을 남에게 나눠주는 것을 꺼리는 사람들도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도 회사에서 potluck을 할 때마다 조심스럽더라구요. 실제로 potluck 음식 나눠먹기 싫다며 아예 참여하지 않는 직원들도 있거든요. 이렇게 유난스럽다고 느낄 정도로 예민한 미국인들이 많은 건 결코 아니지만 또 없는 것도 아니라서 저는 가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곤 한답니다.
다음 주에도 potluck 일정이 있는데 그 때는 또 무엇을 어떻게 깨.끗.이. 만들어 가야 하나 고민중...
이거나 말거나 오늘은 삽겹살 구워먹었지요~
여러분 신나는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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