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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ything & Everything

[근본 없는 요리] 생애 처음으로 직접 구운 칠면조 요리! (스압 주의)

by 이방인 씨 2012. 11. 23.

어제 말입니다....
한밤중에~ 목이 말라~ 냉장고를 열어보니~ ♬♪♩


똬앗~~!

 

어머니는~ 칠면조를~ 구워주려 하셨나보다~ ♩♪♬

그렇습니다!
추수감사절이 돌아왔습니다~ 빰빠라밤~~
미국 최대의 명절 추수감사절에 대해서는 다음 글을 참고해주세요.

2011/11/03 - [I'm a stranger/캘리 이야기] - 미국 최고의 명절 Thanksgiving의 유래는?


신나서 노래 부르고 있는데 어머님이 폭탄을 투하하시네요.

 

이거 집에서 니가 구워놔

 

더 큰 똬앗~~!!!

 

이걸 내가 어떻게 구워?!!! 난 해본 적도 없는데?

 

칠면조 간장구이라는 레서피 하나 달랑 던져주시곤,
사랑하는 어머님은 갔습니다.
그러나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 하였습니다.... ㅠ_ㅠ

생애 처음으로 맡아버린 중책에 부담을 느낀 것도 잠시, 저는 또 특유의 회복력으로 부활했습니다.
요상하게도 추수감사절은 내일인데 왜 오늘 구우라고 하셨는지 잘 이해가 안 갔습니다만 어쨌든 맡은 일을 시작했죠.

 

그래! 엄마가 날 얼마나 믿으시면 이런 중요한 일을 나에게 맡기셨을까?
부모님께 이토록 신뢰받는 기분이라니... 좋구나야~~!

 

그리하여 당장 칠면조 굽기에 착수했습니다.


 

먼저 칠면조를 차가운 소금물에 1시간 정도 담궈 깨끗하게 해줍니다.


이렇게 보니 칠면조가 얼마나 큰 새인지 잘 가늠이 안되지만 우리가 먹는 보통 사이즈 닭과 비교하면 이렇습니다.

이건 각종 조류의 비교사진인데 11번이 우리가 먹는 닭이고, 1번이 칠면조랍니다.
차이가 엄청 나죠?

 

이건 제가 요리한 칠면조의 이예요.
어른이 밥 먹는 커다란 숟가락과 비교했는데 저 정도 크기랍니다.

 

저는 그나마 어머님이 중간 사이즈를 투척하고 사라지셨기 때문에 거대한 것까지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요리하는 내내 버겁긴 했답니다.
소금물에 담가놓고 1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칠면조 속에 채워넣을 간단한 야채를 준비합니다.
원래 레서피에는 양파, 샐러리, 밤을 썰어 소금과 후추를 넣고 살짝 볶은 뒤 넣으라고 하는군요.

 

하지만 샐러리는 내가 싫어하고 (퉷 퉷!) 밤은 깎기 귀찮으니까 생략~!
양파밖에 안 넣으면 속을 채운다는 의미가 없으니까 부피가 제일 큰 감자로 결정!

 

 아직도 1시간이 안되었으니 이제 칠면조를 구울 비닐백과 그릇을 준비합니다.
오븐에서 3시간 이상을 굽느니만큼 그냥 구우면 육즙이 날아가서 퍼석거리게 되기 때문에
이렇게 전용 비닐 백 안에 넣어서 구워야 맛있답니다.

 

 중요한 것은, 비닐에 이렇게 밀가루를 한 스푼 정도 넣고 흔들어서 밀가루를 골고루 묻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오븐에서 구워지다가 비닐이 뻥~! 하고 터질 수가 있어요.

 

다음으로는 일회용 오븐 트레이가 필요합니다.
물론 집에 대형 칠면조가 들어갈만한 오븐 트레이가 있으면 사용하면 되지만
칠면조를 잘 먹지 않는 집에서는 이렇게 1년에 한번씩 일회용을 쓰는 것이 더 편하답니다.

자, 이제 얼추 1시간이 지났네요.
사실 5분 남았지만 귀찮아서 그냥 꺼냅니다.

 

소금물에서 건져 다시 한번 씻고 물기를 닦아주고 있는데 말입니다....

 

아니 이건?! 이 녀석의 은밀한 구멍에서 무언가 황색의 덩어리가 보이는 게 아닙니까?!!
헉! 설마... 이 곳에서 나올만한 황색 덩어리라면....???
내가 상상하는 무서운 그것 말고 또 있을까?!!!
깜짝 놀라서 조심스레 꺼내보니.... 휴우~~~

 

 황색 비닐에 모래주머니랑 간 비슷한 것을 따로 넣어둔 것이더라구요.
아니 그걸 왜 사람 놀라게 거기다 집어넣은 건지...
게다가 비닐 색은 또 왜 저런건지... 쳇~!마

어쨌든 다시 평정을 되찾고 작업에 몰두했습니다.

 

안의 뼈까지 훤~히 들여다볼 수 있을만큼 복강이 넓더라구요.

 

그래서 오븐에서 구워지는 동안 칠면조도 배고프지 말라고 꽉꽉 사식 넣어주었어요.
삼계탕 속을 채울 때는 빠져나오지 말라고 실로 묶거나 하지만
칠면조는 그릇에 넣은 그대로 움직이지 않고 구워지기 때문에 대충 이쑤시개로 여몄습니다. ^^;;

 

그리고는 반질반질 기름을 잔뜩 발라주었지요.
원래 미국식으로는 버터를 바르지만 어머님은 버터구이가 싫다고 하셨어~
그래서 난 올리브 기름을 발라드렸어~~

 

그리고는 다 된 것 같길래 아까 준비해두었던 비닐에 넣고 트레이에 담았지요.

그런데.... 아무래도 어딘가 이상한데...???

헉어머니가 주고 가신 레서피는 분명이 칠면조 간장구이였는데,
난 지금까지 간장을 한번도 쓰지 않았잖아!!!

이게 무슨 나다운 일이래...???

 

여몄던 비닐 다시 곱게 벗깁니다.

 

주섬주섬 간장 바릅니다.

 

드디어 오븐에 안착했습니다.
375도에서 2시간 30분을 구운 뒤, 온도를 낮춰 350도에서 1시간 더 구워줍니다.

그리고 3시간 반 후...

 

오오옷~~
믿을 수 없게도 뭔가 그럴 듯해 보이잖아요!!

 

살며시 비닐을 걷어내보니 더더욱 입에 넣을 수 있을 것 같아 보입니다!!

 

아직 먹어보진 않았지만 생애 첫 칠면조 구이를 나름대로 완성했다는 생각에 들떠 있을 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오고 저는 오늘 제게 이 중요한 칠면조 굽기라는 미션이 내려진 배경에는 거대한 음모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사연인 즉, 원래 어머님은 우리집에서 추수감사절 저녁식사를 할 예정이었으나 갑작스런 계획변경으로 우리 식구는 모두 내일 샌프란시스코 댁에 있는 큰 삼촌 댁에서 저녁식사를 하게 된 것입니다!
큰 삼촌 댁에서 Large 사이즈 칠면조를 준비하기로 하셨으니 이제 우리집에 있는 Medium 따위는 우리끼리 대충 먹으면 되는 거였지요.
그러니 갑자기 귀찮아지신 어머니는...

 

어차피 대충 먹을 거니까 맛이 어떻게 되든 그냥 딸내미한테 미뤄버리자꾸나~~

 

이리하여 본방에는 데뷔도 못할 운명인 엑스트라 칠면조는 예고도 없이 제게로 날아왔고, 저는 아무것도 모르는 채 어머님의 무한신뢰를 받았다고 착각하여 하루죙~일 이 고도비만 조류와 씨름을 했던 것이죠.
하지만 내일 몇 시에 올거냐는 전화 한통으로 음모는 낱낱이 밝혀졌고, 어머니께 확인 전화를 했더니 어머니는 so so cool~ 하게 엄마 아빠는 내일 삼촌댁가서 먹을 거니까 니들끼리 먹고 치우라고 하시네요.

 

허~어~얼~~~~ 엄마 레알 헐~~~


 

허탈해진 저는 칠면조를 아름답게 장식할 의욕도 잃은 채 옆에서 침을 리터 단위로 흘리고 있던 오빠에게 넘겨줘버렸습니다.
그리하여 원래 계획대로라면 이렇게 보기 좋게 장식되었어야할 제 생애 첫 칠면조 구이는

 

 

오빠에게 찢어발겨졌다고 밖에 말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엉엉

 

얼마나 급하게 거칠게 중앙부터 뜯어버리셨는지...
안에 넣은 감자가 벌써 모습을 드러냅니다.

 

날개 한 쪽만 담았는데 집에 있는 큰 접시가 벌써 차더라구요.
오븐에서 막 나온 뜨거운 감자가 맛있었습니다. ^-^

 사실 이 날개는 굽기 전 모습을 보면

 

정말로 날아갈 수 있을 것만큼 크답니다.

 

날 공격해올 것만 같은 이 거대한 다리


보통 칠면조 요리는 Gravy 라고 하는 갈색 소스를 뿌려 먹습니다.

 

맛을 뭐랄까 돈가스 소스 비슷해요. ㅋㅋㅋ

그런데 저는 이 날 굽는 것만으로 피곤해서 소스는 만들지 않았습니다.
사실 저는 그냥 케첩만 찍어도 잘만 먹거든요.
그레이비를 좋아하는 오빠는 옆에서 자꾸만 소스가 있어야된다고 툴툴 거렸지만
저는 접시에 코 박고 못 들은 척 했어요.
어차피 내일 제대로 된 거 먹을텐데 뭘... ㅎㅎㅎ

 

그런데 먹다보니 이상한 것이 시행착오를 겪은 뒤이긴 해도 분명히 간장을 발랐는데 왜! 양념 맛이 하나도 안 나는걸까??
제 사진들을 순서대로 보신 분들이라면 정답을 아실 수 있습니다.
한번 맞춰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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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올리브 기름을 다 바르고 난 뒤 간장을 빼먹었다는 것을 깨달은 저는 황급히 다시 간장을 발랐으나!
기름이 먼저 발라진 상태인데 수용성인 간장이 먹힐리 없었죠.......
이게 무슨 나다운 일이래...??? 의 슬픈 결말.... ㅠ_ㅠ

어쨌든 오빠가 무자비하게 뜯어버리고, 꿈과 희망을 잃은 저도 동조하여 대~충 먹어버리고난 후에야 집에 돌아오신 엄마는 슬쩍 한번 눈길만 주시더니 "그래 잘 구워먹었으면 됐지 뭐. 하하하 호호호~" 하고 드시지 않으셨습니다.
지난번 제 도자기 처녀작을 보셨을 때와 비슷한 가족의 행태(?) 라고 할 수 있겠죠.
그리고 이럴 때 부르라고 저 유명한 명곡이 나왔나봅니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집... 집... ㅠ.ㅠ 이런...집...

 

다행히 얼굴이 너무 닮아 친 부모님과 친 형제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없이 오늘도 견뎌 봅니다.
여러분도 모두 즐거운 집에서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여러분이 이 글을 읽고 계실 쯤에는 저는 아마 삼촌댁에서 열심히 칠면조 뜯어먹고, 호박 파이 먹고 있겠죠. ㅎㅎㅎ


* 원래 미국식 칠면조 구이는 겉에 버터를 잔뜩 바르고, 안은 채우는 사람도 있고 비워두는 사람도 있고 다양합니다. 취향에 따라서 마늘이나 허브로 풍미를 더하기도 하구요. 복잡한 요리가 아니라 그저 "굽는" 것일 뿐이라서 엄청나게 큰 구운 통닭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닭보다 맛은 없습니다. 덩치가 크다보니 퍽퍽한 살이 닭보다 훨씬 많고 살도 더 질긴 편입니다. 다만 희한한 건 닭보다 비린 맛은 적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