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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ything & Everything

[유럽여행] 베니스의 두 얼굴: 닭둘기떼와 노래하는 곤돌리에

by 이방인 씨 2013. 10. 11.

베니스, 베네치아... 말만 들어도 운치있는 수상도시의 전경이 눈 앞에 나타나고 어디선가 곤돌리에들의 노래도 들리는 듯 합니다.
직접 가 보니 상상하던 모든 것을 현실로 보여주는 곳이 베니스였습니다.
지체말고 함께 가실까요?

피렌체로부터 기차를 타고 베네치아에 도착하긴 했지만 기차역을 벗어나면 그 후부터는 육로를 이용하는 교통수단은 더 이상 없습니다.
숙소까지 가기 위해 '바포레토'라고 하는 수상버스를 타고 베네치아의 운하와 처음으로 마주했답니다.

 

 물 위에 떠 있는 곤돌라와 수상버스들이 참 많더라구요.
베네치아에서는 이런 크고 작은 배들이 자동차, 버스, 택시 등과 같은 거겠죠.

 

수상버스를 타고 도착한 숙소에 짐을 맡긴 뒤, 곧바로 베네치아의 중심지인 산 마르코 광장으로 향했습니다.
베네치아의 명소는 모두 이 광장에 모여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우선은 대성당부터 봐야겠죠.
로마에 산 피에트로 대성당, 피렌체에 두오모가 있다면 베네치아에는 산 마르코 대성당이 있습니다.
바닷길을 따라 이슬람 세계와의 교류가 가장 활발했던 베네치아의 대성당은 그 동안 보아왔던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축물들과 다르게 비잔틴 양식을 더한 독특한 매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니지만 예쁘긴 가장 예쁘죠? ^^

 

성당의 정면 중앙에는 날개 달린 황금사자가 장식되어 있는데 이는 베니스의 수호성인인 St. Marco의 상징으로 베니스 곳곳에서 날개 달린 사자를 볼 수 있습니다.

 


(thepassionists.org)

 

이 날개 달린 사자가 어째서 베니스의 상징이 되었는지 간략하게 말씀드릴게요.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하나였던 마르코는 예수님이 하늘로 돌아가신 후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 교회를 세우고 예수님의 말씀을 전하며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천사가 나타나 이렇게 말했습니다.


Pax Tibi Marce Evangelista Meus
(Peace be upon you Mark, my Evangelist.)
복음을 전하는 자 마르코, 네게 평화가 있으라.


사자가 앞발로 누르고 있는 책에 써 있는 문구가 바로 이것입니다. 이어 천사는 "베네치아가 너의 영원한 안식처가 되리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후에 마르코는 이집트의 전통신앙을 믿는 반기독교주의자들에게 죽임을 당했는데 알렉산드리아에 묻혀 있던 그의 시신을 이집트를 방문한 베네치아 상인들이 몰래 베네치아로 빼내왔습니다. 그리고 그의 유해를 안치시키기 위해 대성당을 세우는데 그것이 바로 산 마르코 대성당인 것이죠. 그 때부터 St. Marco를 뜻하는 날개 달린 사자는 베네치아의 대표상징이 되었답니다.


산 마르코 대성당 옆에는 베네치아아 공화국이던 시절 청사로 쓰였던 두깔레 궁 (Palazzo Ducale)이 있습니다.
궁이라기보다는 커다란 집무실 같은 외관인데 정부 건물이지만 분홍색이라 귀엽기도 합니다.

 

(commons.wikipedia.org)

이 역시 이탈리아 내륙의 궁들과 다른 스타일이죠?

 

두깔레 궁 안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유화인 틴토레토의 Paradiso가 있습니다.
22.6미터 X 9.1미터에 이르는 이 그림은 캔버스에 그린 작품으로서는 현존 최대 크기입니다.
크기 뿐만 아니라 작품성도 뛰어나 틴토레토 최고의 역작으로 평가받고 있죠.

 

(en.wikipedia.org)

화사한 꽃밭에서 미카엘님이 식스팩 자랑하는 천국을 상상하는 제게
이 그림은 다소 우중충(?)해 보입니다만 정부 청사에 걸릴 그림으로는 제격이네요.

 

두깔레 궁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100미터 높이의 종루가 있습니다.
이 곳에 올라가면 베네치아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죠.

 

종루에도 어김없이 날개 달린 사자가 장식되어 있죠?

여러분은 피렌체에서 85미터의 종탑을 오르며 허무주의자가 됐었던 저를 기억하실 겁니다.
그게 바로 그제의 일이라 허벅지에 고통의 잔상이 남아있었기에
100미터 짜리에는 도저히 올라갈 엄두가 안 나서 포기했는데
그건 정말 멍.청.한. 짓.이었습니다.

중에 가이드북을 봤더니

여긴 엘리베이터로 올라간대요.
여긴 엘리베이터로 올라간대요.
여긴 엘리베이터로 올라간대요.


느낌표

참... 내가 하는 일 답다.

 

종루에 이어 빠트릴 수 없는 마지막 구경거리는 플로리안 카페입니다.
1720년에 개업한 이래 바이런, 괴테, 바그너가 단골손님이었다는 이 카페는 한 눈에 봐도 범상치 않습니다.

 


(veneziacafes.com)

고풍스러움이 어마어마하죠?

 


(crossingitaly.net)

이렇게 산 마르코 광장 한 켠으로 야외 테이블까지 쫘~악 내다놓으니
성수기에는 손님들이 엄청납니다.

 

하지만 저라면 이 야외 테이블을 별로 즐기지 않을 거예요.
왜냐하면... 산 마르코 광장에는 인간들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는 주인이 따로 있거든요.

 


(www.smh.com.au)

 


(flickriver.com)

 그 유명한 베니스의 비둘기떼죠.

 

비둘기를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곳에서 여유롭게 식사할 엄두도 못 내겠죠?
베니스의 비둘기들은 절~대 NEVER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두려워하기는 커녕 오히려 사람 머리나 몸 위에 마구 앉거나 공격을 해서 Pigeon Attack in Venice라고 검색하면 새를 무서워하는 사람에게는 왠만한 공포영화보다 더 무서운 사진들도 볼 수 있답니다.
게다가 수많은 관광객들 덕분에 먹을 게 많아서 얼마나들 살이 올랐는지 비둘기가 아니라 닭둘기죠.

베니스에서 목격한 닭둘기떼는 단언컨대 제가 이제껏 본 중에 가장 압도적인 수였어요.
제가 찍은 사진을 보면 인터넷에서 구한 사진들처럼 심하지 않은데도, 그 날처럼 대단한 비둘기떼는 본 적이 없습니다.
평소 비둘기를 무서워하지 않는 저도 베니스에서는 속된 말로 '쫄' 수 밖에 없었죠.
그도 그럴 것이 앉아 있는 곳마다 떼로 몰려와서 먹을 것을 내놓으라고 공격을 하더라구요.
P 양과 함께 피자를 사서 먹고 있을 때 제게 달려든 닭둘기들은 제가 그때껏 본 중에 최고로 전투적인 놈들이었습니다.
지금도 그 닭둘기떼를 떠올리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게 되네요.

산 마르코 광장의 MUST SEE 네 가지와 굳이 원하지 않았던 비둘기떼까지 모두 다 봤으니 이제는 여유를 가지고 베네치아를 즐겨야 하겠죠.
그러려면 이것보다 더한 호사가 없습니다.

 

 베니스에서는 곤돌라죠!

베네치아 전통의 교통수단이었던 곤돌라는 그 역사가 1094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본래 소유주의 개성을 나타낼 수 있도록 저마다 화려한 색상과 장식을 자랑했지만
돈 있는 귀족 집안들의 곤돌라 과시가 심해지자
16세기 베네치아 공화국 시절에 '공화국 시민들의 사치'를 막기 위해
곤돌라의 선체를 검은색으로 통일하라는 법령이 내려졌습니다.

부자들의 사치 경쟁을 제한한 것은 잘한 일이기는 하지만
그 덕분에 지금 우리는 화려한 곤돌라 구경을 못 하고 있는 셈이네요.

 

곤돌라를 타는데 드는 비용은 곤돌리에와 흥정하기 나름인데 인원수에 따라 돈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한 번 타는데 얼마라는 식이기 때문에 빠듯한 예산의 배낭여행객이라면 주변의 여행객들을 찾아 네 명 정도로 팀을 이뤄 같이 타는 것도 좋습니다.
저와 P 양은 둘이서 탔는데 둘이 합쳐 50유로를 지불하고 두 명의 곤돌리에들과 함께 약 40분간 운하를 유람했습니다.

 뭐여, 2:2 곤돌라 미팅이여~~??!!

 

 저희가 탄 곤돌라는 초록색 내부에 황금 독수리가 장식되어 있었어요.
곤돌라에 타고 있던 제가 배 앞머리를 찍은 사진입니다.

 

 이건 P 양이 찍은 사진인데 초록색 방석이 깔려있는 작은 의자가 보이죠?
곤돌라 안에는 걸터 앉을 수 있는 좌석도 있지만 이런 붙박이 의자도 있더라구요.
그리고 사진에는 안 보이지만 저희가 앉아 있는 쪽은 화려한 등받이 장식이 있는 소파예요.

 

곤돌리에들은 배를 저으면서 멋들어진 칸초네를 선사하는데, 히야~ 곤돌리에들이 모두 명가수라는 말은 들었지만 정말 노래솜씨가 보통이 아니더라구요.

 

(www.classicfm.com)

모든 곤돌리에들이 다 그렇게 노래를 잘하냐고 물었더니

"우리 일에는 노래도 포함되어 있으니까요."

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알아듣지도 못하는 이탈리아어 노래를 들으며 베니스 운하 사이 사이를 누비니 아무리 검은색으로 칠해진 곤돌라라고 해도 제 인생에 '이만한 사치'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였답니다.

 

곤돌라를 타고 가다 P 양이 찍은 사진인데 저보다 감수성이 풍부한 친구답게
이런(?) 사진도 있네요.
P 양이 적어준 사진 설명에는 "난간이 너무 예뻐서" 라는 이유가 붙어있었습니다.

 

운하를 구경하다보면 수많은 다리를 만나게 되는데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베네치아 대운하에서 폭이 가장 좁은 곳을 골라 지었다는 리알토 다리입니다.

 

(commons.wikipedia.org)

원래는 목조 다리였는데 16세기 말에 석조로 재건했고
배들이 쉽게 지나갈 수 있도록 가운데를 아치형으로 높였다고 합니다.

 

팔자 좋~았던 곤돌라 유람을 끝내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또 하나의 다리에 들렀습니다.
'탄식의 다리'라는 어쩐지 애달픈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요.

 

탄식의 다리는 두깔레 궁의 총독 관저와 지하감옥 사이를 잇는 다리였는데
두깔레 궁에서 판결을 받은 죄수들이 이 다리를 통해 감옥으로 걸어갔다고 합니다.
어두컴컴한 지하감옥으로 들어가던 죄수들이 이 다리에서 마지막 햇빛을 보며
탄식을 내뱉었다고 해서 탄식의 다리라는 이름이 붙었다는군요.

이 다리에 얽힌 매우 재밌는 야사가 하나 더 있는데요.
탄식의 다리를 건너 지하감옥으로 수감된 죄수들 중 유일하게
다시 바깥 세상의 햇빛을 본 사람이 한 명 있는데

그는 바로...

바람둥이의 대명사 '카사노바'였다고 전해집니다.

 

길게도 써내려온 베니스 여행기,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다음편에서는 '베니스의 상인'들에게서 산 기념품들과 유리공예로 유명한 무라노 섬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여러분,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