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Anything & Everything

[유럽여행] 베니스에서 길을 잃은 여행자는 기념품을 샀다. 응?!

by 이방인 씨 2013. 10. 14.

날개가 있는 닭둘기들에게는 천국인 베니스도 길눈이 어두운 여행객에게는 미로 지옥이나 다름 없습니다.
이 도시의 육로는 수천 개의 작은 골목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죠.

 


(commons.wikipedia.org)

부족한 육지를 알뜰하게도 쪼개 썼죠?

 

안 그래도 힘든 베니스 길찾기의 어려움을 배가시키는 건 상식을 따르지 않는 이정표들입니다.

 

 왼쪽으로 가도, 오른쪽으로 가도 같은 곳에 닿게 된다니 이런 마음 편한 갈림길을 봤나!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나가면 결국 산 마르코에 도착하겠구나.

그렇다면 혼돈을 줄이기 위해 각 목적지당 이정표 한 개만 붙이는 게 어떨까?

해서 한 개만 붙였다.

(virtualtourists.com)

그랬더니 양방향 화살표가 등장했다.

게다가 한 쪽 화살표는 분명히 나중에 덧칠한 것 같고.
이러면 결국 이정표 두 개 붙이는 거나 다름없는 건데...

뭐지??? 이 집요함은???

베니스의 모든 골목은 어디로 나가도 결국 관광명소로 통하게 되어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은
도시개발자의 자존심인가?

 

이렇게 모든 방향으로 통한다는 이정표와는 달리 베니스의 골목은 좁고 끝없는 미로 같아서 '조금만 걸어봐야지.' 했다가도 길을 따라 가다 보면 한참을 헤매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저보다 훨씬 길을 잘 찾는 P 양도 헤매다 헤매다 기어이 이 곳에 도착해서 기념사진을 찍었더라구요.

 

막다른 골목이예요!!

헤메다 찾아간 곳이 결국 꽉 막힌 여기...

P 양, 너도 별 수 없었구나.

 

골목길에는 아기자기한 상점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는데 구매욕을 자극하는 물건들이 많더라구요.
게다가 자꾸 골목에 갇히는 바람에 상점들만 만나게 되니 베니스에서는 지갑을 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베니스 전에 머물렀던 로마에는 그다지 특이할 만한 기념품이 없었고, 중세시대부터 피혁제품으로 유명했던 피렌체에는 탐나는 가죽 아이템들이 많은데 수공예 작품들이기 때문에 20대 배낭여행객이라면 큰 맘 먹지 않고서는 살 수가 없는 가격이랍니다.)

베니스의 미로 골목에서 제가 산 물건들, 대단치고 않고 많지도 않지만 재미로 소개해 볼까요?

 

 베니스의 기념품하면 떠오르는 가면인데요.
실제로 사람 얼굴에 쓸 수 있는 정 사이즈 가면들도 많지만 그런 것을 사려면
여행 경비를 다 쏟아붓고 바로 귀국해야 합니다.
박스에 넣어 국제우편으로 집으로 보내는 것은 물론이구요.
저는 미니어쳐를 골랐는데 이 작은 것도 우격다짐 여행짐 속에 무사히 가지고 오는 게 고역이었답니다.

 

 노점상에서 파는 가면들은 중국산이기 때문에 사기에 주의하셔야 한다고 합니다.
미니어쳐라도 상점 안에 들어가셔서 반드시 라벨을 확인하시고 구매하시는 게 좋다고 하네요.

 

고급 가면 상점에 조심스레 들어가 구경한 베니스의 가면들은 너무 화려하고 정교해서 쳐다보고 있자니 무서울 지경이었습니다.

 

(commons.wikipedia.org)

구경하는 상점마다 어마어마한 가격의 가면들을 몇 개쯤 진열해 놓고 있었는데
만 유로 단위가 넘어가는 가면들도 있었습니다.
너무 고가의 가면들이 있어서 사진 찍을 엄두도 못 냈죠.

걸어놓기만 해도 조금 무서웠는데 베니스 카니발을 보면 더 무섭습니다.

 

 

가면이라는 게 모양이 아무리 다양해도 사람의 진짜 표정을 알 수 없어서 무서운 것 같아요.

 

또 다른 기념품은 파파 할아버지가 계시던 정겹고 고풍스러운 상점에서 산 wax seal stamp입니다.
서양 사극에 자주 나오는 왁스 도장이죠.

 

(stamptitude.com)

이런 거 말입니다.

 

저는 가장 기본형으로 제 이니셜이 새겨진 도장을 샀어요.
그런데 도장만 사면 소용이 없고 녹여서 찍을 왁스도 사야 쓸 수가 있죠!

 

이 왁스들 중 보라색은 베니스에서 도장과 함께 산 것이고
나머지는 미국에서 구매했습니다.

 

왁스를 녹이기 위한 스푼도 있구요.

 

(pinkromantic.com)

이렇게 스푼에 왁스를 잘라넣고 촛불이나 램프 불에 녹이는 거죠.
왁스가 다 녹으면 도장을 찍고 싶은 위치에 부은 뒤 도장을 꾹 눌러주면 됩니다.

 

(aliexpress.com)

이렇게 예전 방법으로 하지 않아도 요즘엔 글루건처럼 왁스건이 있어서 손쉽게 할 수 있지만
왠지 그러면 기분이 안 난단 말이죠.

전 핑크빛 소녀감성을 지녔으니까요!

(핑크빛 감성의 롤러코스터 타는 정신상태)


이 도장 찍는 게 엄~청 재밌어서 한동안 푹 빠져지냈었답니다.
편지를 쓸 때도, 봉투를 봉할 때도, 선물을 포장할 때도 전부 다 찍어보냈었죠.
그러다 보니 도장도 몇 개 더 모으게 됐구요.

 

 

근데 한 1-2년 신나게 했더니 어느 순간 싫증나서 상자에 넣어두고 지내다가
포스팅하면서 8년 만에 다시 꺼내보았네요.

 

베니스 이야기하다가 너무 도장 삼천포로 샜죠?
다시 본 주제로 집중해 보도록 하죠.

미로 지옥의 뜨거움을 맛보고 자잘한 기념품 쇼핑까지 즐긴 뒤에는 베니스 주변의 작은 섬들 중 하나인 무라노 섬으로 갔습니다.
보통 여행객들은 리도, 무라노, 부라노 3 개의 섬 중에 하나를 골라 방문하게 되는데 리도는 베니스 영화제가 열리는 곳이고, 무라노는 유리 공예, 부라노는 레이스 공예를 특산으로 하는 곳입니다.
저희가 방문했을 당시는 영화제 시즌도 아니었고, 둘 다 여성스러운 성격도 아니라 레이스 공예는 배제하다보니 자연히 무라노 섬으로 가게 되었죠.
982년에 최초의 유리 공장에 들어선 이래 무라노는 유리 공예 기술을 외부에 유출시키지 않으며 세계적 유리 공예 산지로 명성을 날리게 됩니다.
수상버스를 타고 섬에 도착하여 내리면 발에 채이는 게 유리 공예상점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랍니다.

 

(tripwow.traveladvisor.com)

포장을 벗겨 먹고 싶어지는 유리 사탕들도 있구요.

 

(123rf.com)

유리 공예 꽃밭도 있구요.

 

(muranoimports.com)

이런 어마어마한 샹들리에도 많고

 

(homylicious.com)

 공개전시된 유리 공예 작품들도 있지만

 

(123rf.com)

가장 흔한 건 역시 고객들이 부담없이 살 수 있는 장신구들입니다.

 

(reviews.costco.com)

워낙 유명하다보니 Murano glass는 미국에도 많이 수입됩니다.
이것들은 코스트코에서 팔았던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이네요.

 

이왕 무라노까지 간김에 저도 작은 유리 공예품 두 점을 샀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나비 모양 하나와

 

역시 제가 좋아하는 계란 반숙을 하나 샀지요.

 

무라노 섬에는 직접 유리 공예 체험을 할 수 있는 공장들도 여럿 있는데 누누히 말씀드렸다시피 저희는 여행 내내 폭염과 사투를 벌었기 때문에 평상시에도 기본 온도가 50도에 육박한다는 공장 내에는 들어갈 생각이 전~혀 없었기에 So So Cool하게 생략했습니다.

베니스 본 섬보다 관광객의 발길이 뜸한 곳이라 인파에 시달리지 않고 여유롭게 산책을 할 수 있는 이점도 있는데 돌아다니다가 진정 한가로운 모습을 포착했지 뭐예요.

 

사진 맨 아래 오른쪽을 한 번 보세요.
하얀색 고양이가 유리 공예상점 유리창을 배경삼아 쭉~ 늘어져 낮잠을 자고 있더라구요.
어찌나 귀엽던지요!

 

좋아하는 고양이도 보고 나름대로 즐거운 무라노 섬이었다고 당.시.에.는. 만족했지만 나중에 또 아뿔사! 후회하게 되었으니...
저희가 레이스 공예에는 관심없다고 냉정히 잘라버린 부라노섬은 이런 비쥬얼을 자랑하는 곳이었습니다.

 

 (123rf.com)

(123rf.com)

이런, 뭐가 중요한지도 모르는 가이드북 같으니라구...
레이스 공예가 문제가 아니라 이런 집들이 있는 섬이라고 알려줬어야지!

 

혹시라도 베니스 근방의 섬들을 여행하실 분이라면 참고하세요~

 

베니스 여행은 작은 후회를 남긴 덕분에 언젠가 꼭 다시 가보리라는 결심과 함께 막을 내렸답니다.
무라노 섬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저는 숨가쁘게 밀라노행 열차에 올랐습니다.
제가 밀라노에서 감동의 눈물을 흘렸던 이유가 궁금하시다면 다음편을 기대해 주세요!

여러분, 즐거운 월요일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