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쿡인들의 특징이라고 한다면 제가 지금껏 언급한 유머감각, 자신감, 휴머니즘, 비만함, 무지함, 기타 등등 외에도 다양한 단어를 머리속에 떠올릴 수 있을 텐데요. 제가 오늘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그들의 두려움 없는 도전 정신입니다.
한국인의 국민성 혹은 민족성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찬사가 "불굴의 의지"죠? "의지의 한국인"이라는 말도 있을 정도니까요. 한국인들의 '투혼'처럼, 어느 민족에게나 본받을 점은 있기 마련이니 미국인들의 국민적 성향 중 하나만 칭찬해 보라고 한다면 저는 "실패를 겁내지 않는 용기"라 말하겠습니다.
제 개인적 의견일 수 있으나, 한국인들은 목표를 세우고 끝까지 해내려는 투지가 무척 강하지만 그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을 때 지나치게 좌절하거나 심지어 비탄에 잠기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하면 된다"는 진리를 몸소 실천하지만 '했는데 안됐을 때'는 무너져버리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개인의 성향 탓도 있겠지만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highly-demanding, hard-to-please (요구하는 것은 많고, 만족시키기 어려운) 사회라 그런 것 같습니다.
반면 미국인들은 "죽기 살기로 한다"는 의지는 없지만 어떤 결과든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가 있더라구요. 이 역시 개인적 성향과 더불어 실패에 크~게 개의치 않는 전반적 분위기 덕분인 것 같습니다. 실패해도 심리적 타격을 받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라 살다 보면 실패하는 건 당.연.지.사.니 그다지 좌절할 거리가 못 된다고 생각한다는 거죠.
제가 대학 다닐 때, 한 교수님께 Shelf of Shame (수치의 책장)이란 게 있었어요. 교수님께 pass 점수를 받지 못한 시험지나 과제물을 놓아두는 곳이었는데 자신의 과제물이 거기 꽂혀 있으면 낙제점을 받았다는 뜻이죠.
"아니, pass하지 못한 것도 통탄할 일인데 "수치의 책장"이라니 너무한 거 아니야?!!"
라고, 여러분 방금 생각하셨죠?
그런데 그 강의를 듣는 학생들 중 Shelf of Shame에 불만을 품은 사람은 없었답니다. 오히려 순간 순간마다 교수님과 학생들 사이의 유머의 소재가 되었죠. 강의 첫 날, 교수님이 Shelf of Shame을 설명하시면서 하신 말씀이 아직도 기억나네요.
내가 작년까지는 상냥하게 "Shelf of Rejection" (거부의 책장)을 사용했는데
이번 학기부터는 "Shelf of Shame"이라 부르기로 했어요.
여러분들 얼굴 보니까 이쯤은 가~뿐히 넘기겠구만.
We are tough people here. (여기 우리는 강한 사람들이니까~!)
"tough people"이란 단어를 말씀하시면서 양손 주먹을 꽉 쥐고 흔드시는데 학생들 모두 웃음이 빵 터졌죠. 교수님의 격려(?) 덕분인지 학생들은 자신들의 시험지나 과제를 "수치의 책장"에서 발견할 때도 실망하기보다는 '아~ 다음 시험 잘 봐야겠다.' 정도로 넘어가곤 했답니다. 저도 마찬가지였구요.
교수님께서 Shame(수치)보다 상냥하다고 말씀하신 Rejection(거부)이라는 단어를 보니 이 사람의 이야기도 생각나네요.
브래드 피트가 14살, 그러니까 중학생 꼬꼬마였을 때 말입니다. 그는 미주리 Springfield의 Cherokee 중학교의 농구부에 들어가고 싶어했는데 실력이 부족해서 똑! 떨어지고 말았대요. 그래서 어떻게 했냐구요?
떨어진 친구들을 모아서 Rejects (거부당한 녀석들)이라는 농구팀을 만들었지 뭐예요!
가운데 앉아 있는 청순한 금발 단발머리의 브래드 피트가
탈락한 친구들을 모아 팀을 꾸리고 직접 Rejects라는 팀명을 지었을 뿐만 아니라
본인의 아버지인 Bill Pitt에게 코치직을 부탁했다는군요.
아버지는 Pitt 가족이 다니던 교회에서 이 팀을 연습시키고 지역 소년 농구대회에도 출전시키곤 했대요.
많은 것을 느끼게 하는 일화 아닌가요?
이 글을 읽는 독자들 중에는 팀 선발전에서 탈락했으면 더 악착같이 연습해서 다음 번에 뽑힐 생각을 해야지 떨어진 것들끼리 모여서 팀을 결성하고 만족하다니 그게 무슨 한심한 소리냐고 생각하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으나 제가 살아 보니 이게 미국이고 미국인들이더라구요.
실패해도 괜찮아~ 다시 시도하면 되지. 다시 해도 안되면...?
모든 걸 잘하는 사람은 세상에 없어.
농구를 못해도 축구를 잘할 수도 있고, 축구도 못하면 공부를 잘할지도 모르잖아?
제가 언젠가 미국 연준의장 버냉키가 20대 대학생들에게 강연한 내용을 포스트한 적이 있죠? 다 주옥같은 조언들이었지만 그 중 가장 뚜렷하게 남아 있는 것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당신의 유니폼이 더러워지지 않았다면 경기에 출전하지도 않았다는 뜻이니까요.
이방인 씨는 경기에 나간 기억이 도통 없는데 유니폼은 왜 이리 너덜너덜한지 모르겠어요. ^^;;
여러분, 신~나는 월요일 유후~!
※ 이 글은 십 수년간 미국에서 살아온 개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쓰여졌을 뿐, 미국/미국인 혹은 한국/한국인을 일반화할 수 없음을 밝힙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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