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흔히 "서양식" 하면 떠올리는 선입견 대로 미국에서는 더치페이가 흔합니다. 참고로 더치페이를 미국식 표현으로 하면 Dutch Treat 이지만 이 말은 자주 쓰이지 않습니다. 대신 Let's split the bill (각자 쪼개서 계산하자) 라고 간단히 말하더라구요. 누가 낸다고 말하지 않은 경우라면 각자 내는 것이 당연시 되는 분위기입니다.
제가 식당 아르바이트를 한 경험에 비춰 보면 일행이 같이 와서 한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고도 계산서에서 자기 몫을 각각 계산해서 지불하거나 아예 처음 주문할 때 계산서를 각자 달라고 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물론 누군가 한 사람이 사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럴 때 한국과 미국의 반응이 좀 다르더군요. 한국에서 여러명이 식사를 하고 일어설 무렵 한 사람이 "오늘은 내가 낼게" 하면 아마 보통 나머지 사람들이 "잘 먹었어. 다음엔 내가 살게." 이런 식의 대답을 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미국에서는 "오늘 내가 살게" 하면 상대방은 이렇게 물어볼 가능성이 큽니다.
진짜 그래도 되겠어?
Are you sure?
진짜 오늘은 내가 사도 괜찮다고 확실히 말해주면 그제서야 "Thank you" 하고 감사를 표합니다. 미리 결정된 사항이 아니면
또 한 가지 제가 정말 흥미롭게 관찰한 것은 바로 부부간의 더치페이였습니다. 식당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지 며칠 되지 않았을 때 한 백인 부부가 와서 다정히 식사를 마쳤습니다. 그리고 계산를 하려고 하길래 당연히 저는 합산된 금액을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남편이 그렇게 비쌀 리가 없다고 다시 한 번 확인을 해달라기에 계산서를 직접 보여 주었죠.
"아, 따로 계산해 주세요."
한국식 계산에 익숙했던 저는 치졸한 남편이라 생각하면서 따로 계산을 해 줬는데 그 부인은 아무렇지도 않게 역시 자기 먹은 것만 계산하고 둘이 또 다정하게 걸어 나가더라구요.
으잉~?!! 돈 낼 때만 남남이고 지갑 닫으면 다시 부부가 되는 겁니까요?
하지만 그 후로도 많은 부부들이 각자 계산하는 것을 보면서 이것은 그저 미국 문화의 하나일 뿐이란 걸 깨달았답니다. 더 충격적이었던 건 노모를 모시고 온 딸이나 대학생 아들을 데리고 온 어머니 등등 부모자식 사이에도 각자 계산하는 것을 많이 봤다는 사실이죠. 한번은 6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할아버지와 그 딸 그리고 손녀까지 3대가 함께 온 적이 있었는데 식사를 마치고 따로 계산을 한 뒤 식당을 나가기 전에 손녀딸이 캔 음료수를 먹고 싶다고 해서 할아버지가 지갑을 꺼내들자 그 딸이 말하더라구요.
"아빠, 쟤는 내 딸이니까 아빠가 사줄 필요 없어요."
물론 아버지 돈을 아껴드렸다는 점에서는 좋은 일이지만 저 표현이... 말입니다. "내 딸이니까 아빠는 안 사줘도 된다"니 우리식으로 생각하면 지나치게 철저한 것 같기도 하죠? 이런 보편적 더치페이 문화 덕분에 미국에는 얻어먹는 것이 취미인 '빈대'도, 반대로 늘 사주는 역할만 하는 '물주'도 찾아보기 어렵답니다. 가까운 사이끼리 돈 몇 푼에 얼굴 붉히거나 마음 상하는 일이 없어서 홀가분하긴 하지만 간혹 어쩐지 쓸쓸한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네요.
아, 모든 미국인들이 이렇게 더치페이를 하는 것은 아니니 오해는 금물입니다. 미국에서도 한국처럼 온 가족이 식사하고 아버지가 폼 나게 계산하기도 하고 친구끼리 몰려와서 기분 좋은 친구가 한 턱 쏘기도 하고 부모님께 식사 대접하는 자녀들도 많이 있습니다. ^^ 다만 한국보다 더치페이의 빈도가 높고 그걸 자연스레 받아들이는 문화가 있다는 것 뿐입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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