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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come to California

금식기간이 끝났다! 고기를 먹자! 오늘은 바베큐~

by 이방인 씨 2013. 4. 1.

평소 저의 식충이 본능을 아시는 독자분이라면 제목을 보시곤 고개를 갸우뚱 하셨을 것 같습니다.

퍽이나 금식했겠다! 웃기시네

 

그렇죠! 제 이야기가 아닙니다. ㅋㅋㅋ
하지만 저의 친구, 이웃, 그리고 지역사회 구성원들의 이야기죠.

이 곳 날짜로 오늘은 3월 31일 일요일, Easter Sunday (부활절) 랍니다.
한국에서도 교회 다니는 분이시라면 부활절 예배도 보셨을 것이고 달걀에 그림 그리는 놀이도 하시지 않았을까 하는데요.
기독교에서는 비교적 약식으로 치뤄지는 행사지만 미국의 히스패닉 카톨릭들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종교적 의미를 지니는 날이죠.
현재 멕시코 인구의 83%가 Roman Catholic 신자이고 미국의 히스패닉들도 거의 예외 없이 카톨릭입니다.
히스패닉들 중에는 굉장히 독실한 신자들이 많아서 그들이 가공할 만한 '번식력'을 자랑하는 이유도 피임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하더라구요.

이렇게 본능과 신의 말씀에 '동시에' 충실한 천주님의 어린 양들이 식욕에만큼은 충실하지 못하는 기간이 있으니 바로 Lent 라고 불리는 약 40일간의 기간입니다.
뭔가 빌려준다는 뜻의 영어가 아니라 '사순절'이라고 하는, 천주교에서 예수님의 고행을 기리는 기간이죠.

여러분, 예수님이 언제 십자가에 못 박히셨는지 혹시 알고 계십니까?
저도 정확한 날짜는 모르지만 그 날은 분명 금요일이었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날을 영어권에서 Good Friday 라고 하는데, 아니 그 분이 돌아가셨는데 Good이라니 어쩐지 이상하죠?
너무 오래전부터 그렇게 불러왔기 때문에 정확한 유래를 밝히긴 어렵지만 돌아가시면서 인류를 구원하셨기에 성스럽고 좋은 날이라 하여 Good Friday라고 부르게 됐다는 설이 가장 신빙성있다고 하네요.

여러분 중 교회 다니는 분들이라면 '사도신경' 참 많이도 읊어 보셨을텐데요.
사도신경에는 "장사한 지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라는 대목이 있죠?
예수님께서 Good Friday에 땅에 묻히시고 일요일에 다시 부활하셨기 때문에 생긴 구절이죠.
그리고 그 부활하신 일요일이 바로 Easter Sunday인 것입니다.

Easter Sunday를 기념하기 위해 예수님의 고행을 기리는 기간이 바로 Lent인데 부활절로부터 46일전인 수요일에 시작됩니다.
사순절이 시작되는 수요일을 Ash Wednesday (재의 수요일) 라고 하는데 이마에 재로 십자가를 그리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습니다.

 

제가 사는 곳에서는 Ash Wednesday에 이렇게 이마에 재를 묻히고 다니는 히스패닉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재' 는 금새 사라져 버리는 '인간의 유한함' 과 신에 대한 '회개' 를 뜻한다고 하네요.

 

재의 수요일이 부활절로부터 46일 전에 시작되는 데에도 깊은 뜻이 있습니다.
성경에 따르면 (마태, 마가, 누가복음) 예수님이 이 세계에 계실 때 사탄의 유혹과 싸우시면서 사막에서 40일간 금식을 하며 견디셨다고 합니다.
그것을 기리기 위해 신도들도 40일간 금식하는 것인데, 아시다시피 천주교에서 일요일은 휴식해야 하는 날이라 금식일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6주에서 6번의 일요일은 빼고 다른 요일로 대체해야 하니까 전체 사순절 기간이 46일이 되는 것이죠.

천주교 초·중기 때만해도 사제들 뿐만 아니라 평신도들도 이 금식을 비교적 엄격하게 지켰다고 합니다.
그러나 근대부터 그렇게까지 잘 지키는 사람은 드물고 대신 이 기간 동안 육식을 하지 않는 형태로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또 현대인들에게 46일간 고기를 끊는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이겠습니까.
제가 아는 보통의 히스패닉들은 Lent가 시작되는 재의 수요일과 7번의 금요일에만 고기를 피하고 나머지 날에는 다 고기 먹더라구요. ㅋㅋㅋ
하지만 간혹 독실한 신자들은 46일간 철저히 육식을 금할 뿐만 아니라 사순절 기간이 아닌 평소에도 늘 예수님이 고난을 당하신 금요일에는 고기를 입에 대지 않는다는군요.

저는 카톨릭 신자는 아니지만 인구 2명당 1명은 히스패닉인 캘리포니아에 살다 보니 자연스레 Lent에 익숙해졌답니다.
이 기간에는 히스패닉 친구들에게 함부로 고기 먹자는 말도 안 하고, 그 앞에서 고기를 우적우적 씹어 먹기도 미안하죠. ^^;;
본의 아니게 눈치 보는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육식충이 (괴...굉장한 포스가 느껴지는 단어다!) 의 봉인해제를 하는 Easter Sunday가 바로 오늘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고기 먹을 예정입니다. 우흠하하하하하하  고고씽


사실 저야 카톨릭이 아니라 언제든지 먹을 수 있지만 핑계 김에 또 먹는 거죠. ^^;;
새벽부터 일어나서 밖에 나갈 때도 안 하는 머리 손질까지 하고 기다리는데 나머지 식구들은 일요일이라고 늦잠자고 있네요. -.-^
동창이 밝기도 전에 선수쳐서 노고지리를 잡아 먹어야 할 판인데 늦장을 부리고 있으니 에휴~ 제가 이런 가족들과 DNA가 일치한다는 사실을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받아들이기 힘들 때가 종종 있습니다. ㅠ_ㅠ

언제쯤 일어나려나~ 대학 합격 발표를 기다릴 때도 이렇게 초조하지 않았건만...배고파


제가 손톱 물어 뜯으며 기다리는 지금, 여러분은 월요일 새벽을 맞이하고 계시겠네요.
상쾌한 한 주 시작하시길 빕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