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열 살 무렵에 이모에게 선물 받은 동화책 한 권이 서른이 넘은 지금까지도 저의 All Time Favorite Book이랍니다.
그 후로 20년 간 많은 명작들을 읽었지만 그 책만큼 좋아진 작품이 없으니 아마 제가 죽을 때까지 Favorite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책이냐면요...
<라스무스와 방랑자>
'말괄량이 삐삐'로 유명한 스웨덴의 동화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랜의 작품입니다.
읽자 마자 이야기에 쏘~옥~ 빠져들어서 이렇게 결심했죠.
"그래, 난 방랑자가 되겠어!!! 주머니에는 항상 캐러멜을 잔뜩 넣고 다니는!!!"
(이 책에서 캐러멜이 참 중요합니다.)
미국에 와서 이 책의 영문 빈티지판을 구하느라 이베이를 헤매다 손에 넣었죠!
제 책장에 고이 모셔져 있는 1968년 인쇄판입니다.
당시 가격은 50센트! 라고 쓰여 있네요.
요즘은 초판 하드 커버가 경매에 나와서 지켜보는 중이랍니다.
한동안 방랑자에 빙의되었다가 초등학교 4학년 때는 TV에서 틀어준 <인디애나 존스: 최후의 성전>을 보고 나서 외쳤습니다.
"그래, 난 인디애나 존스가 되겠어!!!"
그 뒤에 트로이 유적을 발굴한 슐레이만의 전기를 읽고 푹 빠져서 또 한 번 다짐했죠.
"그래, 난 고고학자가 되겠어!!!"
.
.
.
.
.
.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되어 지금의 저는
방랑자도, 인디애나 존스도, 고고학자도 아닌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만,
돌이켜 생각하니 저는 한 곳에 머무르는 걸 몹시도 싫어하는 아이였던 것 같습니다.
방랑자가 되어 세상을 유람하거나 인디애나 존스처럼 모험을 떠나거나 슐레이만처럼 잃어버린 도시를 찾아나서고 싶어했던 걸 보면요.
지금도 여전히 낯선 곳으로 떠나고만 싶습니다.
이제까지 본 적 없는 풍경과 얼굴이 있는 어딘가로요.
그리고 그 후에는 또 다음 장소로, 또 다른 곳으로...!
잊고 있었지만 22살 때 제 꿈은... 객사하는 것이었답니다.
웃지 마세요.
22세의 이방인 씨는 진지했거든요. ^^;;
(진지해서 웃긴 거야, 풉!)
지금은 자다가 호상(好喪) 치르는 게 꿈입니다.
블로그를 시작할 때 망설임도 없이 손가락이 저절로 '이방인'이라는 이름을 선택한 건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단순히 국적이나 문화권을 떠나서, 육체든 영혼이든 저는 그 어디에도 속하고 싶지 않거든요.
어디에도 속하지 않음으로써 그 어디로든 떠날 수 있으니까요.
아직 인생의 쓴맛을 덜 봤거나 혹은 철이 안 들어 그럴 수도 있지만 그게 좋아요.
휩쓸리듯 유영하듯, 그게 좋아요.
방랑하는 하루, 유후~
※ 감염된 건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인데 저는 왜 중2병에 걸린 걸까요? 허세글 쓰고 났더니 감기는 다 떨어질 것 같네요. 낄낄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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